“너 T야?” MBTI에서 T가 문제적 문자된 까닭은

한겨레21 2023. 8. 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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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봄비][MBTI 밈 놀이] 토착화한 ‘K-MBTI’에서 T가 문제적 특성 된 이유
성격 유형 검사 MBTI 중 T 성향일 경우 배척받는다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 유튜브 채널 <주둥이방송> 갈무리

“너 티(T)야?” 요즘 번화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맥줏집 옆 테이블에서, 귀갓길 버스 안에서 들리는 말이다. 이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의 정확한 뜻은 “너 엠비티아이(MBTI·성격 유형 검사)가 티(Thinking·사고형의 줄임)야?”로, MBTI 유행의 새로운 버전이다. 일상뿐 아니라 요즘 유행어들의 종착지라는 지상파방송까지 진출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이 밈의 시작은 유튜브 숏코미디 채널 <밈고리즘>의 ‘폭스클럽’ 시리즈 속 대사다. 이런 식이다. ‘폭스’가 되고 싶은 세 인물 김지유·한지원·허미진이 남자를 꼬실 계획으로 헌팅 포차나 한강 등지에 모인다. 에프(Feeling·감정형) 성향인 김지유와 한지원이 기대에 들떠 헌팅 계획을 세우며 “셋 다 훈남이면 진짜 베스트인데”라고 떠들면, T 성향인 허미진이 “근데 잘생긴 사람 세 명이 우리한테 올 리는 없지”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그러면 F들은 정색하며 말한다. “T야?”

MBTI ‘대중화’ 지나 ‘토착화’

이때 손가락이나 화장품 등 주변 사물을 활용해 알파벳 T 모양으로 교차해 만들어 보이는 것이 포인트다(그 사물이 터무니없을수록 웃기는데, 최근 ‘가평빠지’ 편에서는 마늘 세 쪽으로 T를 만들었다). 또 “너 T야?”라는 대사 자체도 변화구가 다양하다. “너 T발 C야”라며 ‘서순’으로 말하거나(순서를 뒤집은 말로 거꾸로 말하는 것을 뜻함) “큐T 프리T 더T 싼T” “아모르파T”처럼 T 발음 단어를 소환하는 식이다. ‘벚꽃헌팅’ 편에선 헌팅할 남자와 벚꽃도 없이 찬 바람만 휘날리는 한강을 원망하는 의미로 T 성향을 한강에 적용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MBTI는 ‘과몰입’ 단계를 넘어 성격 공용어로서 ‘토착화’됐다. 마치 마라탕이 수입 초기에 외국 음식 메뉴 중 하나였다가, 마요네즈나 케첩처럼 기본 향신료로 자리잡아 볶음밥·과자 등 온갖 음식에 곁들이게 된 것처럼. “너 T야?” 밈을 통해 MBTI는 각종 한국어와 버무려지고(아이스T·아모르파T 등), 일상 사물에 끼얹어지고(손가락·틴트·마늘 등) 있다.

MBTI는 수입 초창기인 2010년대에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잠깐 소개되는 정도의 특수 지식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즈음 희극인 강유미의 ‘유미의 MBTI들’이라는 유튜브 시리즈가 히트하며 본격적인 ‘대중화’ 시기를 맞이했다. MBTI는 과자 허니버터칩처럼 일부 마니아층만 남고 지날 유행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MBTI 중에서도 특정 성향 T 하나로 밈이 생기고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되면서 ‘토착화’ 시기로 접어들었다.

“너 T야?” 밈을 쓸 때 주변 사물을 활용해 알파벳 T 모양을 만드는 장면. 유튜브 채널 <밈고리즘> 갈무리

지금 대중은 MBTI의 8가지 성향(I-내향/E-외향, N-직관/S-감각, F-감정/T-사고, J-판단/P-인식)과 16가지 유형을 유연하게 변형하며 논다. 몇 가지 향신료의 조합과 계량 조절로 다양한 맛의 요리가 가능한 것처럼. 외향형 중에서도 특히 외향형이면 ‘대문자 이(E)’라는 별칭을 붙이는가 하면, 엄청난 친화력으로 대세 예능인 자리를 꿰찬 김호영은 스스로를 ‘EEEE’ 유형으로 정의했다. 폭스클럽에서도 F 성향 김지유가 평소처럼 공감을 잘하지 않으면 “너 오늘 T가 69%다?” “너 요즘 자꾸 T끼가 올라와” “이 언니 T언니한테 옮았나봐”라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규정한다.

8가지 성향 중 T가 특히 대두한 이유

아예 따로 ‘T 성향 테스트’까지 등장할 정도로 T와 F가 부상한 이유는 뭘까? ‘K-MBTI’의 핵심은 T와 F 성향의 의미가 미묘하게 변했다는 거다. 이들 성향의 기본 설명은 의사결정 방식을 기준으로 T는 결과를, F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 상담을 요청받으면 T 성향일수록 해결책을 찾는 데, F 성향일수록 마음을 나누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T와 F 성향은 오직 ‘공감 여부’로만 이야기된다.

사실상 “너 T야?” 밈에는 해당 성향의 사람을 향한 부정적 뉘앙스가 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우리나라 밈을 한인 방송처럼 소개하는 ‘실전 한국어’ 시리즈에서도 “너 T야?”가 나오는데, 영어로 “What’s wrong with you?”라고 번역한다. 그러니까 ‘공감 안 함=문제(wrong)’라는 뜻이다.

“너 T야” 밈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대답법’이 뜬다. 주로 ‘T 성향’인 사람들이 지인들에게 이 밈을 듣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다. ‘T혐(오)’이라는 말이나, 청소년 사이에서 ‘T 성향이면 왕따’라는 호소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 밈에는, 그만큼 공감하지 않는 것 자체로 타격 입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피로감이 읽힌다. 보통 MBTI의 장점으로 ‘스몰토크’를 할 때 나이·직업·결혼유무 같은 민감한 주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꼽혔는데, 어느새 MBTI 성향을 거짓으로 말하거나 아예 대화를 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추앙과 절망 사이

“너 T야” 밈의 시초인 ‘폭스클럽’ 시리즈의 맥락을 다시 살피자. 김지유·한지원·허미진은 헌팅뿐 아니라 우정여행, 생일파티, 쇼핑, 왁싱, 다이어트 등 주제는 달라져도 모두 ‘높은 기대 – 실패’라는 서사구조를 반복한다. 멋진 남자, 여행지의 근사한 숙소, 기념일을 성대히 챙겨주는 관계, 마른 몸에만 맞는 XS 사이즈를 기대하지만 매번 처참한 실패를 맛본다.

여기서 ‘T 언니(누나)’의 역할은 기대치 낮추기다. 친구들의 외모를 ‘하타치’(평균 이하)라고 타박하는 것도 “눈을 낮춰야지 우리가 헌팅이 된다”거나 “하룻밤용”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이유다. 그러니까 폭스클럽의 F와 T는 각각 ‘높은 기대 – 낮은 기대’라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하는 양가적 마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T 성향을 맡은 허미진은 극중 ‘빌런’이면서도 매력녀로 부상했다. T 성향과 잘 엮이는 ‘프로불편러’나 ‘진지충’ ‘팩폭러’도 꼭 필요한 역할이라는 점도 “너 T야?” 밈에 실려 확산되면 좋겠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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