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의행복줍기] 태풍을 이기는 법

2023. 8. 1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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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는 며칠 전 갑자기 심장이 쥐어짜듯 아파서 동네 심장내과를 갔다.

골든타임이 30분 이내니까 혹시 쓰러지더라도 응급실 안에서 쓰러져야 안전하고 밤 12시까지 수치가 올라가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도 된다며, 밤 12시를 거듭 강조했다.

"이 나이에 응급실 신데렐라가 됐네 떨어트릴 유리구두도 없는데." 이 선배의 말에 남편은 웃었고 차 안 공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 선배가 고난을 이기는 법은 유머와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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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는 며칠 전 갑자기 심장이 쥐어짜듯 아파서 동네 심장내과를 갔다. 여러 검사를 했는데 바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밤 12시까지 응급실에서 계속 혈액검사를 하며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든타임이 30분 이내니까 혹시 쓰러지더라도 응급실 안에서 쓰러져야 안전하고 밤 12시까지 수치가 올라가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도 된다며, 밤 12시를 거듭 강조했다.

병원으로 달리는 차 안 공기는 무겁고 침울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긴장된 남편의 얼굴을 보니 유언이라도 남겨야 하나 하는 마음이 쑥 들어갔다. 순간 이 선배는 밤 12시 ‘땡’ 하면 요술이 풀려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신데렐라가 떠올랐다. “이 나이에 응급실 신데렐라가 됐네… 떨어트릴 유리구두도 없는데.” 이 선배의 말에 남편은 웃었고 차 안 공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 선배는 삼십대 중반에 암 진단과 동시에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온 뒤 아직 어린 두 아이가 눈에 아른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고 병원 앞 레코드 가게에서는 아다모의 ‘눈이 나리네’가 흘러나왔다. 함박눈, 아다모의 눈이 나리네, 그리고 시한부 인생. “평범한 주부가 아름다운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됐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괴롭고 절망적인 기분이 말랑말랑해지면서 숨통이 트였다.

이 선배가 고난을 이기는 법은 유머와 낭만이다. 우리의 삶은 늘 화사한 봄날일 수만은 없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우산 없이 그대로 맞아야만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스스로 우산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방송작가 후배 정희의 예고 없는 소낙비를 막아내는 우산은 달콤한 티라미수 한 조각과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다. 정희는 코미디프로의 한 코너를 맡았는데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그 코너가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바로 실직한 셈이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방송국 긴 복도를 걸어나가는 정희의 뒷모습이 마음 아파서 오래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정희는 새로운 기획안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티라미수 한 조각과 아메리카노로 충분히 위로받은 덕분이다. 우리는 티라미수와 아메리카노로 기분을 전환시킬 줄 아는 정희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정희의 설명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상하게 인생이 평탄치 않았다. 크고 작은 걸림돌이 계속 나타나 휘청거렸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신한테 위로가 필요했다. 시간과 돈이 없으니 여행을 간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거창한 위로는 애초부터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손쉽게 할 수 있는 티라미수와 아메리카노를 택했고, 그것들을 먹고 마시며 스스로 힘을 내고 위로받으려고 애쓰다 보니 정말 힘이 되고 위로가 됐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수없이 만난다. 신앙심으로, 짧은 기차여행으로, 영화 한 편으로, 유머와 낭만으로, 티라미수와 아메리카노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해내려고 애쓴다. 자기만의 방법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강하고 행복하다.

조연경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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