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산소마을은 매일매일이 ‘태극기 거는 날’
집집마다 4m 높이 국기게양대 55개도 직접 만들어
해남 땅끝마을·영신마을, 완도 소안도 이어 명소로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산소마을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걸린 태극기 55개를 모두 교체하느라 분주했다. 지난 4월부터 게양했던 태극기가 거친 바닷바람에 낡고 해지자 마을기금으로 새 태극기를 구입해 바꾸어 단 것이다.
이 마을은 마을회관과 버스정류장은 물론 주민들이 사는 모든 집에서도 1년 내내 태극기가 펄럭이는 ‘태극기마을’이다. 이 마을 태극기는 대문 옆 벽에 설치된 작은 게양대가 아니라 기다랗고 탄탄한 파이프에 게양돼 있다. 주민들이 집집마다 국기게양대를 설치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산소마을은 2021년 한 단체에서 태극기를 기증받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게양해 왔다. 하지만 대문 옆 작은 게양대에 꽂아둔 태극기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떨어져 골목에 나뒹굴기 일쑤였다. 바닷가인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바람이 자주 부는 데다 강도도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산소마을이 ‘2022 해남군 으뜸마을’ 사업에서 우수마을로 선정되자 주민들이 나섰다. 사업비로 500만원을 받은 주민들은 마을 회의에서 ‘국기게양대 설치’를 결정했다.
김행수 산소마을 이장(70)은 15일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지만 마을 사업비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태극기 게양대를 제대로 만들자’는 말씀들을 하셨다”면서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가 땅바닥에 자주 떨어지는 것을 보며 다들 안타까운 마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사업비에 주민들은 직접 게양대를 만들었다. 염분이 많은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녹이 잘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파이프부터 샀다. 이 파이프를 4m 길이로 자르고 기둥 한쪽에 ‘무궁화 봉’을 용접했다. 태극기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롤러’도 설치했다.
이렇게 제작한 게양대를 주민들은 사흘에 걸쳐 마을 모든 집 앞에 설치했다. 태극기 벽화를 그리고 마을 입구에 ‘태극기마을 안내문’도 제작했다. 김 이장은 “500만원으로 게양대를 설치하려면 손수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용접 기술이 있는 청년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태극기를 온전한 형태로 365일 게양하려면 3개월 내지 4개월에 한 번씩, 1년에 3번 정도는 교체해야 한다. 산소마을 태극기를 1번 교체할 때마다 총 25만원가량이 든다.
김 이장은 “비용부담이 있지만 주민들에게 태극기 게양은 이제 자부심이 됐다”면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만 태극기를 흔들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평소에도 태극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에는 산소마을 외에도 ‘태극기마을’이 더 있다. 한반도 땅끝인 해남 송지면 땅끝마을은 ‘땅끝 전망대’에 오르는 1.6㎞ 구간에 태극기를 상시 게양하고 있다. 해남 옥천면 영신마을에 있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양한묵 선생의 생가에도 연중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완도 소안도도 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섬에서만 독립유공자 20명을 비롯해 애국지사 88명이 나왔다. 전국 면 단위로는 가장 많은 규모다.
후손들은 이 뜻을 기려 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섬 1300가구는 물론 식당·관공서까지 빼놓지 않고 태극기가 1년 내내 펄럭인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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