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영국서도 교사들이 무너진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적 죽음 소식은 한동안 마음을 참 무겁게 했다. 최근 들어 교사를 향한 폭행, 학부모의 무리한 요구와 갑질, 악의적인 민원 사례 등 교권침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교권침해 사례들이 종종 목격된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망치나 칼 등 흉기를 사용해 공격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학생·학부모와의 갈등도 자주 등장하는 사례다. 교권침해와 더불어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한 교사의 스트레스, 정신건강의 악화 문제 역시 최근 들어 다뤄지는 큰 문제다. 올 5월에는 업무 과다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로 초등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영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초등학교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 위험이 전 인구 평균보다 42%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선 교권을 법으로 보호한다. 1996년 교육법, 2006년 교육 및 학교 감독법을 근거로 법적으로 금지된 체벌을 제외한 근신, 압수, 정학, 퇴학 수준의 훈육적 지도 권한이 교사와 교장에게 보장돼 있다. 교육부에서 교육법을 기반으로 만든 ‘교사 기준(Teachers’ Standards)’은 교사의 책임과 권한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 기준은 학생·동료·학부모와의 관계를 포함한 교사 행동의 다양한 측면, 예컨대 규율 유지, 갈등 처리, 직업적 청렴성 유지를 위한 지침이 포함돼 있다.
이런 법적 보호에도 영국 교사의 직업만족도는 매년 낮아지고 있다. 지난 몇년간 이뤄진 교사 파업도 교권 약화, 과도한 업무 부담 등으로 교사들의 직업만족도가 낮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영국의 전국교사노조는 올 7월 파업을 앞두고 지나친 업무량, 불필요한 민원 행정 업무 처리, 정신건강 문제 등을 주요 의제로 내걸었다. 매년 끊이지 않는 교사 파업으로 학부모·보호자들이 불편함과 피로를 호소할 법도 하지만 다수는 파업에 지지를 표했다. 전국교사노조의 파업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부모의 60%가 파업을 지지했다. 영국 최대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인 ‘Mumsnet’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62%가 교사 파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학부모들도 교사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추모 열기와 교권 회복 관련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학생인권조례를 교권약화의 주원인으로 보고 난데없이 ‘인권조례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다수의 교사들이 지적하듯,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문제는 한쪽의 약화가 다른 쪽의 강화를 이끄는 제로섬 게임의 영역이 아니다. 정부는 교사의 목소리를 더욱 주의 깊게 듣고, 학생 인권과 교권의 공존을 위한 법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교원노조법에 묶여 파업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최근의 사례처럼 교권이 침해당하거나 처우 개선을 요구해야 할 상황이 있을 때, 파업권을 갖지 못하는 교사들은 한목소리를 낼 수 없다.
앞으로 교사들에게도 파업권이 주어져 권리 회복과 필요한 개혁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학부모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교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었으면 한다. 교사를 외롭게 만들지 말자. 정부·학부모·학생들이 외면하는 순간 교육 현장의 마지막 보루인 교사는 또다시 무너진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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