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種 달라도 시간을 들여 애정하고 바라보면 그게 가족”
"한국사회 심각한 양극화, 동물권을 이야기할 때도 그대로 적용
사람이고 동물이고… 생명과 생명으로 소통한다면 되는 일"
동생의 유기견 함께 찾는 화자 예빈의 성장 서사
갑자기 가족이 된 자매가 마음을 나누는 과정 그려
인간중심적 사고 벗어나 ‘생명’에 대한 탐색 시도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들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거의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더구나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낮과 밤을 뒤집어 사는 그였다. 끼니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산책 같은 것도 역시. 우울하고 칙칙한 삶이 이어졌다.
머릿속이 바밤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원고를 써야 했다. 다른 이야기보다 지금 가장 깊이 생각하는 일에, 존재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한번 내세워 써보자.
“동물이 나오는 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도 써본 적은 있긴 한데, 거의 조연처럼 나온다든가 주변에 나오는 식이었어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발표해본 적이 없어요. 이 정도의 분량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해 동물을 주인공으로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었죠.”
“내가 책상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면 별나는 내 발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려놓았다. 그 자세로 잠이 들었다. 내 발가락 사이사이를 핥거나 나 자신의 장난감을 내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원래 알고 있었어?’ 내가 채빈에게 물었다. ‘뭘?’ ‘이런 마음을.’ ‘그럼.’ ‘왜 나한텐 안 알려줬어?’ 별나의 눈곱을 떼어주며 내가 물었다. 채빈이 웃었다. 채빈과 나는 비로소 자매가 되어갔다. 삐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채빈이 엄마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그때처럼.”(78쪽)
소설과 시의 두 전선에서 분투를 이어온 임솔아는 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모색한 이야기를 들고 와야 했을까. 그가 바라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임 작가를 지난 2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예빈과 채빈, 엄마 외에도 유기견 유나와 별나가 주인공인데.
“실제 모델이나 인물이 있진 않다. 특별한 케이스가 있다기보다는 7~8년 동안 지켜본 것들이 쌓여서 들어가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탄핵도 미투도 있었는데, 커뮤니티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걸 많이 봤다. 그런데 동물을 두고서도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더라. 이전에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싸우는 이야기를 각각 마이크를 줘서 쓰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만,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쌓인 게 많아서 이번에 술술 나오게 됐다.”
―동물권과 관련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극과 극에 있다는 느낌이다. 어디에 가면 동물권에 대해 잘 알고 그런 분들이 모여 있지만, 정반대 스펙트럼 역시 너무 넓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골고루 퍼지는 게 아니라 한쪽으로만 쏠리고 반대쪽으론 전혀 안 퍼져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같다. 동물권에 대해서도 안 퍼지면 결국 작은 집단 안에서만 반복될 것이다.”
―예빈과 채빈 두 자매 관계도 기우뚱하면서 바뀌는데.
“요즘 누구나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자신은 상황을 잘 보고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예빈 역시 처음에는 자기만 보고 자기 생각만 하다가 나중에 채빈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말을 한다. 피로 이어지면 기본적으로 가족이지만, 피로만 이어졌다고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같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그건 가족이 아닌 상태다. 반면 동물들은 인간과 피도 안 섞이고 심지어 종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서로 들으려고 노력하고 서로 시간을 들여 애정하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예빈과 채빈, 별나가 하나가 됐던 ‘그 마음’은 무엇인가.
“예빈은 그전에 동물하고 같이 살았어도 나는 인간이고 동물은 그냥 개, 새, 동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바뀐다. 소설 속에서 그 마음이란 나는 인간이고 쟤는 동물이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 생명과 생명으로 소통했을 때 생기는 어떤 마음, 진정한 사랑을 느끼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아무래도 몇 페이지씩 장면이 줄줄이 달리는 기쁨이 있다. 시를 쓸 때는 소설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말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시에서는 죽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소설에선 직접적으로 말한다기보다는 다른 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잔 뒤, 낮 12시쯤 일어난다. 강아지 바밤바의 쉬를 시키러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밥을 챙겨주고 그도 밥을 냠냠. 낮에는 책을 읽거나 은행에 가거나 강의를 준비하거나. 해질 무렵 바밤바와 산책을 한 뒤 저녁을 먹고 빠르면 밤 8시, 보통은 밤 10시, 늦으면 밤 12시부터 글을 쓴다. 보통 새벽 4시가 돼야 자고, 마감이 있을 땐 밤을 새운다. 그래도 많이 빨라졌다고. 바밤바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고. 참, 오래 별러온 모션 데스크도 샀다고. 작가 임솔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바밤바와, 소설과, 시를 따라서. 천천히.
엄청 긴장되네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엔 또 다음처럼 말했다. 잘 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터뷰 내내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조차 했다. 생각이 깊어서였을까. 말 역시 느리고 차분했다. 삶과 그 마음 따라서. 천천히.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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