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種 달라도 시간을 들여 애정하고 바라보면 그게 가족”

김용출 2023. 8.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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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짐승처럼’ 출간한 임솔아 작가
"한국사회 심각한 양극화, 동물권을 이야기할 때도 그대로 적용
사람이고 동물이고… 생명과 생명으로 소통한다면 되는 일"
동생의 유기견 함께 찾는 화자 예빈의 성장 서사
갑자기 가족이 된 자매가 마음을 나누는 과정 그려
인간중심적 사고 벗어나 ‘생명’에 대한 탐색 시도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들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거의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더구나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낮과 밤을 뒤집어 사는 그였다. 끼니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산책 같은 것도 역시. 우울하고 칙칙한 삶이 이어졌다.

거의 집 안에만 머물고 있던 2021년 여름, 소설가 임솔아는 집에 유기견 강아지 바밤바를 입양했다. 이전에도 동물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나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 계속 미뤄야 했다. 이제 시간적 여유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과 시를 함께 쓰는 임솔아 작가가 중편소설 ‘짐승처럼’을 들고 돌아왔다. 임 작가는 ”이번엔 비극적으로 끝나는 얘기를 죽어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동안 쓰던 것과는 좀 다른 시도, 다른 길, 새로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강아지를 입양한 이후 바밤바의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야 했다. 자연스럽게 바밤바에게 밥을 줄 때 함께 밥을 먹었고, 산책시키며 함께 걸었다. 바밤바를 돌보며 오히려 생활이 안정돼 갔다.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견딜 만했다. 대신 머릿속에는 온통 바밤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머릿속이 바밤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원고를 써야 했다. 다른 이야기보다 지금 가장 깊이 생각하는 일에, 존재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한번 내세워 써보자.

“동물이 나오는 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도 써본 적은 있긴 한데, 거의 조연처럼 나온다든가 주변에 나오는 식이었어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발표해본 적이 없어요. 이 정도의 분량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해 동물을 주인공으로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었죠.”

2022년 여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략 한 달에 걸쳐 원고지 300매, 중편 한 편을 뚝딱 써냈다. 보통은 80매짜리 단편 한 편을 쓰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는데, 매수로 따지면 단편 서너 편 분량을 한 달 만에 쓴 셈이다. 그냥 술술 썼다고, 뚝딱 썼다고 말할밖에. 오랫동안 단절된 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자매가 도망간 유기견을 찾아 나서며 화해를 모색하는 중편소설을 ‘현대문학’ 9월호에 발표했다.
소설과 시를 동시에 쓰는 임솔아 작가가 지난해 발표한 중편을 다시 다듬고 퇴고해 ‘짐승처럼’(현대문학·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소설의 화자 예빈은 엄마의 갑작스스러운 고백으로 동생 채빈을 가족으로 맞지만, 길에서 만난 동물과 아이들을 집으로 계속 끌어들이는 채빈의 기행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느 날 엄마가 갑작스럽게 죽고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한 채빈 역시 아무 설명 없이 집을 떠난다. 예빈은 엄마가 죽은 지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채빈과 함께 살게 되고, 유기견 유나를 찾아 나서면서 진정한 가족이 돼 간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동물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보는 어떤 마음의 탐색을 시도한다.

“내가 책상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면 별나는 내 발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려놓았다. 그 자세로 잠이 들었다. 내 발가락 사이사이를 핥거나 나 자신의 장난감을 내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원래 알고 있었어?’ 내가 채빈에게 물었다. ‘뭘?’ ‘이런 마음을.’ ‘그럼.’ ‘왜 나한텐 안 알려줬어?’ 별나의 눈곱을 떼어주며 내가 물었다. 채빈이 웃었다. 채빈과 나는 비로소 자매가 되어갔다. 삐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채빈이 엄마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그때처럼.”(78쪽)

소설과 시의 두 전선에서 분투를 이어온 임솔아는 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모색한 이야기를 들고 와야 했을까. 그가 바라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임 작가를 지난 2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예빈과 채빈, 엄마 외에도 유기견 유나와 별나가 주인공인데.

“동물에 대해 쓰는 것도 어려웠다. 별나는 왜 밥을 먹지 않는지 등 별나가 말을 할 수 없어서, 발언권 스피커를 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유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어디서 뭘 하고 있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쓰는 사람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말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장면으로만 보여줘야 했다. 결국 예빈과 채빈의 언어로 나와 있는 거고. 미안한 감정 같은 것도 섞이더라.”
―소설 속 유기견 보호소장의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 모델이나 인물이 있진 않다. 특별한 케이스가 있다기보다는 7~8년 동안 지켜본 것들이 쌓여서 들어가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탄핵도 미투도 있었는데, 커뮤니티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걸 많이 봤다. 그런데 동물을 두고서도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더라. 이전에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싸우는 이야기를 각각 마이크를 줘서 쓰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만,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쌓인 게 많아서 이번에 술술 나오게 됐다.”

―동물권과 관련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극과 극에 있다는 느낌이다. 어디에 가면 동물권에 대해 잘 알고 그런 분들이 모여 있지만, 정반대 스펙트럼 역시 너무 넓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골고루 퍼지는 게 아니라 한쪽으로만 쏠리고 반대쪽으론 전혀 안 퍼져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같다. 동물권에 대해서도 안 퍼지면 결국 작은 집단 안에서만 반복될 것이다.”

―예빈과 채빈 두 자매 관계도 기우뚱하면서 바뀌는데.

“요즘 누구나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자신은 상황을 잘 보고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예빈 역시 처음에는 자기만 보고 자기 생각만 하다가 나중에 채빈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말을 한다. 피로 이어지면 기본적으로 가족이지만, 피로만 이어졌다고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같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그건 가족이 아닌 상태다. 반면 동물들은 인간과 피도 안 섞이고 심지어 종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서로 들으려고 노력하고 서로 시간을 들여 애정하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예빈과 채빈, 별나가 하나가 됐던 ‘그 마음’은 무엇인가.

“예빈은 그전에 동물하고 같이 살았어도 나는 인간이고 동물은 그냥 개, 새, 동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바뀐다. 소설 속에서 그 마음이란 나는 인간이고 쟤는 동물이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 생명과 생명으로 소통했을 때 생기는 어떤 마음, 진정한 사랑을 느끼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1987년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임솔아는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에 각각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를,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와 소설을 함께 쓰는 얼마 되지 않는 작가인데. 시와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소설은 아무래도 몇 페이지씩 장면이 줄줄이 달리는 기쁨이 있다. 시를 쓸 때는 소설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말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시에서는 죽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소설에선 직접적으로 말한다기보다는 다른 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잔 뒤, 낮 12시쯤 일어난다. 강아지 바밤바의 쉬를 시키러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밥을 챙겨주고 그도 밥을 냠냠. 낮에는 책을 읽거나 은행에 가거나 강의를 준비하거나. 해질 무렵 바밤바와 산책을 한 뒤 저녁을 먹고 빠르면 밤 8시, 보통은 밤 10시, 늦으면 밤 12시부터 글을 쓴다. 보통 새벽 4시가 돼야 자고, 마감이 있을 땐 밤을 새운다. 그래도 많이 빨라졌다고. 바밤바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고. 참, 오래 별러온 모션 데스크도 샀다고. 작가 임솔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바밤바와, 소설과, 시를 따라서. 천천히.

엄청 긴장되네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엔 또 다음처럼 말했다. 잘 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터뷰 내내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조차 했다. 생각이 깊어서였을까. 말 역시 느리고 차분했다. 삶과 그 마음 따라서. 천천히.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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