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영화 '오펜하이머'에 담긴 과학사
[EBS 뉴스]
서현아 앵커
원자폭탄 개발자의 삶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가 오늘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원자폭탄 개발과 투하 직후인 1940년대와 50년대를 관통하고 있는데요.
오늘 뉴스브릿지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담긴 과학사를 들여다봅니다.
이효종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영화가 오늘 개봉을 했습니다.
이 영화 보러 가기 전에 먼저 이 원자폭탄과 핵폭탄의 원리를 알고 가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게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거죠?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네 맞습니다.
핵 속의 에너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크게 저희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두 개의 다른 핵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핵융합, 다른 하나는 큰 핵이 서로 다른 2개의 핵으로 쪼개지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핵분열 반응입니다.
핵융합은 자연계에 비교적 가벼운 원소가 합쳐져서 더 무거운 원소가 되는 그런 반응이고요.
주로 별에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그런 반응이 핵융합 반응입니다.
핵 분열은 자연계의 무거운 원소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핵이 외부 충격이나 아니면 내부의 불안정성 이런 것들에 의해서 쪼개지면서 나타나는 반응을 저희가 핵분열 반응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런데 원자핵을 인위적으로 합치거나 쪼개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던데 왜 그런 겁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왜냐하면 원자 핵이 굉장히 작고 전기적으로 둘 다 플러스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극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반발하는 여지가 굉장히 큽니다.
서로 다른 원자의 핵을 저희가 인위적으로 융합하거나 또는 분열하는 것이 사실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원자폭탄의 아이디어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었을 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조차도 이게 과연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인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굉장히 컸다고 합니다.
아이슈타인조차도 당시에 회의적인 생각에 동의를 했던 과학자 중에 한 명인데요.
1932년에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라는라고 하는 존재를 발견하고 난 뒤로부터는 이것이 학계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 공로를 통해서 바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중성자'는 그럼 어떤 물질입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 중에 전하를 띠고 있지는 않지만 양성자와 질량이 똑같은 그런 핵자가 있습니다.
이걸 우리가 중성자라고 하는데요, 전하가 없기 때문에 반발력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손쉽게 다른 물질의 핵으로 중성자는 침투하기가 쉽습니다.
채드윅의 중성자 발견에 관심을 보인 과학자들 중에서 독일의 오토 한이라고 하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과학자는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의 동위원소에 중성자를 넣어주면 우라늄이 그보다 가벼운 원소인 하나는 바륨, 하나는 크립톤으로 분열하는 것을 알아냈고요.
정말 놀라운 것은 미미하지만 거기에서 열이 또 발생한다는 것까지 알아낸 것입니다.
그의 연구를 분석한 당시에 또 과학자 중 한 명인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프리시는 이 현상에 대해서 '핵분열'이라고 하는 용어를 최초로 학술적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때 바로 이 '핵분열'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을 한 건데 그렇다면 이제 핵분열 과정에서 이 중성자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얻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습니다.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굉장히 중요한 기술입니다.
우라늄 원자핵을 이용하면 원자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하는 그 가능성이 제기된 와중에 독일을 기점으로 2차 세계대전이 당시에 발발했고 때문에 연합군이 한시라도 빨리 독일군보다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엄중한 사명감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쇄 반응이 본격적으로 이제 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 1939년에 본격적으로 밝혀졌는데요.
몇몇 원소들 중에서는 핵분열 반응이 진행되는 동안에 자기만 쪼개지는 게 아니라 주변에다가 중성자 파편을 방출해서 다른 핵종에 중성자를 넣어주는 원소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우라늄 235번이라고 하는 동위원소죠, 그것과 이제 플루토늄이라고 하는 가공원소입니다.
하나는 자연계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굉장히 작은 양만 존재하기 때문에 대량의 우라늄 확보를 위해서 이 우라늄을 정제하는 그런 기술이 매우 필요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일부러 플라토늄을 만들어야지만 할 수 있는 그런 인공원소이기 때문에 만드는 공정이 또 필요했겠죠.
서현아 앵커
이 우라늄은 자연계에 이미 있는 원소이고, 플루토늄은 인공 원소로 분류가 됩니다.
이 양이 얼마나 돼야 의미가 있는 겁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굉장히 의미 있는 숫자일 텐데요.
이 물이 100℃에 도달한 순간 확 끌어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핵분열 반응도 모이면 순식간에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게 될 텐데 그 질량을 저희가 임계질량이라고 합니다.
우라늄이랑 플루토늄이 정확하게 이렇게 얼마가 모여야 되는지 과학자들이 계산을 해봤는데요.
폭탄으로 쓰기 위해서는 이 계산이 1940년 3월, 오토 프리슈와 루돌프 파이얼스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그들의 계산 결과가 매우 놀라운 수치였죠.
서현아 앵커
어떤 결과였습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5kg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5kg만 모으면 지금껏 그 어떤 물질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폭탄이 만들어진다라고 하는 내용이 밝혀진 것이죠.
이것이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G.P 톰슨, 제임스 채드윅 등으로 이루어진 원자폭탄 제조위원회, 'MAUD'로 전달되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영국이 '튜브 합금'이라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명목 하에 비밀리에 원자폭탄의 핵심 재료들 중 하나인 우라늄의 동위원소를 분리해내는 기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서현아 앵커
그런데 이 전쟁 상황 속에서 유럽이 이 연구를 감당하기에는 리스크도 너무 크고 비용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습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맞습니다.
그래서 MAUD의 일원이었던 과학자 중에 한 명인 마크 올리펀트라고 하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분을 그다음 해인 1941년에 당시 군비로 막대한 부을 쌓아가고 있었던 미국에다가 원자폭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걸 요청합니다.
사실 미국은 그보다 한 2년 전쯤에 1939년이죠, 그때 이미 연쇄 반응을 예측했던 물리학자들 중 하나인 실라르드 레오 그리고 나치를 피해서 망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필서를 통해서 이미 한 차례 원자폭탄을 개발해 필요성 요청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1941년 12월 6일에 잇따른 요구 끝에 미국이 드디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원 하에 원자폭탄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 입니다.
서현아 앵커
이제 재정의 수혈이 된 건데 그렇다면 연구는 어떻게 진척이 됐습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때부터 원자폭탄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양쪽으로 양분해서 이원화되기 시작했는데요.
하나는테네시의 오크리지 지역을 기반으로 우라늄의 동위원소를 추출해서 제작하는 다른 하나는 워싱턴 핸포드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이 우라늄을 변화시켜서 플루토늄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이게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원자폭탄 제작 프로젝트인 맨하탄 프로젝트의 최초의 시작을 알리는 프로젝트였죠.
서현아 앵커
네 이 핵무기로 쓰이는 원자 폭탄은 바로 이 맨하탄 프로젝트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과학자들을 이끌었던 리더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입니까?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네 맞습니다.
오펜하이머가 비록 학문적인 성취나 성과로 오늘날의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그런 과학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미국 과학자 그리고 미국 물리학계에서는 굉장히 지도적인 인물로 평가가 되고 있던 사람입니다.
당국의 명을 받은 과학자들의 지도자로서 이 과학자들 특유의 어떤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잖아요, 내 연구는 내가 하겠다라고 하는, 그런데 그것이 이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좀 방해 요인이 될 거라고 그는 좀 여겼던 거죠.
신속한 프로젝트 성과를 위해서는 좀 이제 군 체계적인 질서정연하게 뭔가 프로젝트가 진행해야 되는 관리 스타일이 좀 필요하다는 것을 오펜하이머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창의성을 발현할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었던 아주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였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그렇습니다.
이 매네트 프로젝트의 13만 명의 인력과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아주 대규모 프로젝트였는데 정작 이 뉴멕시코 사막에서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 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또 자신이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이런 생각이 굉장히 우울했다고요?
이효종 / 과학커뮤니케이터
맞습니다.
1945년 7월 16일이죠 뉴멕시코 앨라모고도(Alamogordo)의 사막에서 플루토늄 폭탄이 최초로 시험대에 올랐고요.
플루토늄 폭탄의 메인 설계에 참여했던 당시에 말씀드렸던 파이에를스, MAUD에 소속돼 있었던 과학자였죠.
그를 포함해서 영국의 물리학자들이 이 새로운 설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 반 그리고 핵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폭탄을 만든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위험한 폭탄을 만드는 것인가 라고 하는 걱정 반의 심경으로 폭발 실험을 함께 지켜봤다고 합니다.
당연히 오펜하이머도 있었죠.
그걸 본 당시에 그의 심정은 힌두교의 서사시인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심경을 좀 표현을 했는데요.
'나는 죽음,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나치를 견제하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든 무기가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세상을 정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하는 그들의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좀 여실히 나타나는 그런 역사의 한 장면에 오펜하이머가 좀 이렇게 서서 그것들을 다 지켜본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장면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영화가 또 어쩌면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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