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유엔사 일본 기지 7곳, 북 남침 억제” 이례적 언급
“한일 유사동맹, 군사개입 길 터” 비판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한 광복절 78돌 경축사에서 한국의 안보와 경제 차원에서 일본이 필수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반면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강점 36년의 과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궤가 전혀 다른 낯선 광복절 경축사가 지난해에 이어 고착화했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이며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이는 지난해 광복절 77돌 경축사에서 일본을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칭한 것보다 격상된 표현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을, 올해 3·1절 경축사에선 일본이 과거에 “군국주의 침략자”임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경축사에선 이런 표현이 모두 빠졌다. 일본에 ‘역사 직시’의 엄중함을 재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취임 뒤 여섯차례의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봉합하고,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로 한 채 한-일 협력 강화를 추구해온 지난 1년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북한 위협을 들어 거침없이 한-일 안보 협력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며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돼 있으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돼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안보에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의 ‘군사적 기여’가 가장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한껏 부각한 것이다. 이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발언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후방기지 7곳’은 일본 본토의 요코스카(해군), 요코타(공군), 사세보(해군), 캠프 자마(육군) 등 4곳과 오키나와섬의 가데나(공군), 후텐마(해병대), 화이트비치(해군) 등 3곳의 주일미군기지를 일컫는다. 이곳은 ‘한반도 유사시’ 전략자산·병력 신속 전개와 한국 체류 미국인 철수 임무를 맡고 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일본과의 북한 핵·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간의 긴밀한 정찰자산 협력과 북한 핵·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3국 간 북한 핵·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는 오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3국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다. 한·미·일의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는 지난해 11월13일 한·미·일 정상이 공동 발표한 ‘프놈펜 성명’에 적시된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추어올렸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는 “미국의 우산 아래 한-일 유사 동맹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의 범위를 동북아를 넘어 ‘대서양과 유럽’으로 넓히겠다는 뜻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안보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대서양과 유럽의 안보, 글로벌 안보와 같은 축선상에 놓여 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겨냥한 안보 전략을 펴겠다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대만해협 분쟁에 휘말릴 우려를 배제하기 어렵다.
김종대 교수는 “중국이 가장 주목하는 게 한·미·일 군사 일체화 움직임인데 윤 대통령은 진영 블록화에 앞장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완성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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