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주의 운동가를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몬 광복절 경축사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정부 비판자들을 ‘공산전체주의’의 맹목적 추종자로 싸잡아 지칭했다. 그는 이날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위대한 국민, 자유를 향한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며 공산전체주의라는 생소한 개념어를 6차례나 사용했다.
그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도 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언사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듣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1950~1960년대 북한의 남침 규탄대회에서나 할 법한 연설을 듣노라면 지금이 2023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윤 대통령이 사전에도 없는 ‘공산전체주의’라는 말을 정확히 무슨 의미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이란 말로 미뤄 ‘공산전체주의’는 북한 체제의 성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라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차분히 설명하며 동의를 구하면 족할 것이다. 북한의 간첩 활동을 경계하자는 취지라면 정보기관의 역할을 강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연설 전반을 선동적 표현에 할애하며 국내 정치에 관해 말한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공산전체주의’에 민주주의·인권·진보를 덧씌워 건전한 정부 비판자들의 목소리까지 위축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 자체를 모독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설득하려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연설로 보기 어렵다. 드러내놓고 편을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는 분열의 언어이지, 통합의 언어가 아니다. 대통령의 연설은 국가 지도자로서 국론 통합을 이끌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 경축사 아닌가. 1987년 개헌 이후 매년 광복절 경축사에 나온 평화통일 언급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단순하고 평면적인 국제 정세 인식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는 이날 “북한의 남침” 위협에 대응해 “굳건한 한·미 동맹” “한·미·일 안보 협력”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며 “압도적 힘으로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적 실효성이 없는 유엔사령부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뭉쳐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북한이 미·중 전략 경쟁 구도를 활용해 앞장서서 동북아의 신냉전적 구도를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한국마저 북한의 행동을 똑같은 방식으로 추종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인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경축사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보통 시민들조차 공감할 수 없는 실망스러운 연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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