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은 척결 대상? 광복절 경축사에 해묵은 ‘멸공’ 왜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두번째 광복절 경축사는 현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반국가 세력”이라 못박고 이들에게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격한 표현으로 가득 찼다. 윤 대통령은 15분가량 이어진 연설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며 해묵은 반공·멸공 프레임을 꺼내 드는 등 퇴행적·극우적 인식을 또 한차례 고스란히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결코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며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해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왔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이라고도 했다. 한국 사회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로 갈라진 분열적 상태로 바라보면서, 사실상 진보적 시민사회와 야권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낙인찍은 것이다. 하지만 ‘공작’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런 광복절 경축사에 윤 대통령이 처음 정치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의도,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열쇠가 담겨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되는 걸 타파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확장된 자유 개념을 말한 것”이라며 “소위 위장하고 탈을 쓴 인권운동가도 있으니까 경각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치권이 말도 안 되는 내용들로 허위 선동을 하고 그걸 언론과 시민사회가 확산시키는 행태를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척결 대상’으로 삼겠다는 윤 대통령의 태도는 갈수록 강고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원외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며 ‘반국가 세력’이란 단어를 입에 처음 올렸다. 이어 지난 6월 한국자유총연맹 행사에선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이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말해 협치의 대상인 야당, 종전선언을 주장했던 전임 정부를 저격한 것이란 논란을 불렀다.
정치학자들과 원로들은 이날 경축사가 사회 갈등 해소과 통합, 분단 해결의 책무를 지닌 국가원수의 발언으로 보기 어려운 편향되고 극우적인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가진 자유주의, 헌정주의적 정신을 극우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경축사를 통해 반국가 세력을 언급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닌,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도 “통상 남북, 한-일 관계, 국민 통합을 얘기하는 광복절에 편 가르기와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라며 “통합에 기여하는 메시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 외교·안보 분야 원로 인사는 “온 국민의 뜻을 한데 모아도 모자랄 판에 ‘공산전체주의 맹종 반국가 세력’ 운운하며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1950년대 냉전 적대 질서로 되돌아가려 하면 평화와 번영의 길을 어떻게 열 수 있겠나”라고 걱정했다.
정치권의 평가도 극단으로 갈렸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과거의 아픔과 역사를 이용하는 세력,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자유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반면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오늘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없었다. 극우 유튜버나 아스팔트 우파 같은 독백만 있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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