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콘서트로 본 대한민국 엔터의 위기대응 능력[스경연예연구소]

강주일 기자 2023. 8. 1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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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잼버리 콘서트에 참여해 무대를 펼치고 있는 그룹 아이브(위)와 공연장을 찾은 스카우트 대원들. 연합뉴스



정부가 실패한 국가행사의 구원투수로 K-팝 아이돌을 앞세웠다. 아니 아이돌만을 바라봤다. K-팝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K팝 슈퍼 라이브’ 가 열리던 지난 11일 금요일 오후 6시, 5살 아이의 하원을 위해 상암동에 위치한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아이는 그곳에 홀로 남아있었다. 낮부터 4만 여명의 잼버리 대원들을 태운 천대가 넘는 버스가 한꺼번에 상암동 일대로 몰려들었고, 이 모습에 겁 먹은 학부형들이 조기 퇴근해 아이들을 서둘러 집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한 교사는 내게 “너무 진기한 풍경이라 모두 사진을 찍어 남겼을 정도”라고 했다.

잼버리 대원들을 태우고 온 버스가 11일 마포구 상암동 일대 도로에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집에 도착해 TV를 켜니 콘서트 라이브 방송이 한창이었다. 아이돌들은 급조한 무대 위에서 제대로 된 리허설도 못했지만, 프로정신을 발휘해 미소로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특히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무대 위에서도 다친 이 없이 대형 무대를 마쳤다. KBS 중계 화면에 비친 세계 각국 4만 여명의 청소년들은 그간의 고생은 잊은 듯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물론 K팝에 전혀 관심 없는 듯한 대원도 종종 눈에 띄었다.

다행이다. 아이돌과 관객들이 별 탈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무사히 마쳤으니 이 행사는 잘 한 걸까?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행사는 결단코 위험한 행사였다. 태풍을 핑계로 대원들을 논란의 야영지에서 떠나게 했으나, 태풍의 한 가운데서 K팝 콘서트가 강행됐다. 실제로 이날 콘서트가 열리기 단 몇 시간 전까지 이 지역엔 앞이 보이지 않아 운전을 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공연 스태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아이돌을 위험에 몰아넣는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잼버리 콘서트는 당초 6일 잼버리대회가 열리고 있는 새만금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위생, 안전 논란 등이 일자 태풍을 이유로 날짜와 장소를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 K리그1 경기 운영에 ‘민폐’를 끼쳤다.

■ 전광석화로 집결한 K-팝 아이돌

지난 8일, 콘서트 일정은 최종적으로 11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으로 확정됐다. 콘서트 라이브 방송으로 인해 이날 KBS 음악방송 ‘뮤직뱅크’는 취소됐고, ‘뮤직뱅크’ 출연 예정인 가수들이 라인업에 포함됐다. 3~6개월치 스케줄이 빼곡한 아이돌들이 국가의 ‘부름’에 신속하게 모여드는 모습에 아이돌 팬들은 정부가 각 가수들을 사실상 ‘강제동원’한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몇몇 누리꾼들은 “여기가 북한인 줄 알았다”는 의견을 냈을 정도다. 특히 소속사가 여러 곳으로 찢어져 각자 활동 중이던 그룹 마마무가 완전체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들리자 누리꾼들은 “이 어려운걸 잼버리가 해낸다”며 자조섞인 반응을 보였다.

마마무 완전체 무대 성사에 당사자인 솔라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당초 6일 공연에 출연 예정으로 11일 공연에는 불참할 것으로 보였던 걸그룹 아이브도 뒤늦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연 전날 “아이브가 6일 출연 약속을 지키고자 다른 일정을 조정해 자발적으로 케이팝 콘서트에 출연하기로 한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체부는 “출연진 섭외는 KBS에서 주관하고 있다”며 “정부가 특정 출연진을 요청하거나 섭외를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제 동원 의혹을 부인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우리도 방송사 눈치를 보는 입장”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JTBC캡처



이 초대형 무대의 준비는 최종 장소 공식 발표 후 단 3일 만에 이뤄졌다. BTS소속사 하이브는 8억어치 BTS 포토카드를, 카카오는 10억어치 ‘굿즈’를 잼버리 대원들을 위해 내놓았다. 문체부는 두 회사의 자발적인 참여라고 밝혔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8일 사실상 파행을 맞은 잼버리에 대해 브리핑하며 “오히려 위기 대응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이라 생각한다”고 발언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김 장관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대한민국 가요계의 뛰어난 위기대응 능력을 전세계에 보여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이브가 잼버리 콘서트에 제공한 포토카드.



■뭐가 문제냐고? 尹정부만 빼고 다 알아

가요계만 들쑤신것이 아니었다.

이날 산업은행과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 직원 1000여 명이 콘서트 지원을 위해 ‘동원’됐고, 금융산업노조는 “협조 요청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거의 전시 강제징용 수준”이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심지어 마포구 녹색어머니회도 협조 공문을 받았다. 맘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공유된 공문에는 “방학이고 휴가철이라 어렵겠지만 각 학교당 최소 15명씩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마포구 맘카페에는 “하다하다 녹색어머니회까지 소환한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에서 그룹 더 보이즈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의 평가는 곱지 않았다.

AFP는 지난 12일 ‘K팝이 구출? 한국, 스카우트 잼버리 폐막 콘서트에 올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정부가 재앙이 된 행사를 수습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비상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K팝 팬들부터 공공 부문 직원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가 나서 방탄소년단 무대를 꾸려야 한다고 말해 비판을 받은 사례와 함께 최이삭 대중음악평론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가가 K팝을 소유한다는 끔찍한 전체주의적 사상”이라고 지적한 사례도 덧붙였다.

또 “아이돌 팬들은 그들의 우상이 끌려나온 것에 눈물을 흘렸고 축구 팬들은 잔디가 짓밟힌 것에 눈물을 흘렸다”며 “이 잼버리 콘서트에서 정확히 누가 혜택을 받느냐”고 반문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K팝 콘서트로 달래지 못한 대원들도 있었다. 해외 각국 잼버리 관련 커뮤니티에는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를 비판하는 갖가지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한 참가자는 한 노인이 쓸쓸히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과 함께 “K팝 공연 내내 이렇게 앉아 있었다”며 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이는 한 아이가 울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K팝 공연이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사실을 내가 알았을 때”란 문구를 덧붙였다.

인스타그램 캡처



우리 정부의 대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인들은 조금이라도 쓴 건 손에 안대고 달콤한 것만 손을 댄다”고 적은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앞모습은 멀쩡한 정장 차림이지만 뒷모습은 속옷이 노출된 사진을 올리며 “한국 정부와 언론이 잼버리 대회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적은 게시물도 눈길을 끌었다.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 마지막 행사인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는 지난 11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잼버리 대원 4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아이브, 뉴진스, NCT 드림 등 총 19개팀이 출연해 무대를 펼쳤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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