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흉물, '힙한 버거집' 됐네 [로+네상스]
스타트업으로 마을살리기
칠곡 매원마을의 핫플레이스
웨이팅 있는 므므흐스 부엉이버거
축산업 골칫거리 뒷다릿살 활용
둥근 베이컨 개발해 원가 낮춰
미나리 활용해 천연 방부제 추출
지역 관광지 활성화 마케팅까지
지역경제 혁신 나선 수제버거집
# 우리 지방은 소멸 중이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줄줄이 떠난 탓이다. 인프라가 사라지면서 지역을 이탈하는 시민도 늘어났다. 정부와 지자체는 공공기관 이전, 대기업 유치 등의 정책을 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 답은 이제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지역 밀착형 스타트업이 해답을 줄 수 있다. 로컬 혁신 전문가 이준호 부회장과 함께 '로컬 르네상스'를 꿈꾸는 스타트업을 발굴해보자. '이준호의 로+네상스' 1편이다.
지방이 사라진다. 아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은 지 오래. 그나마 남은 청년 몇몇은 더 좋은 '간판'을 만들기 위해 수도권으로 떠난다. 인구가 줄자 학교, 은행, 병원 같은 핵심 인프라가 문을 닫는다. 지방에 머물 이유가 사라지는 요즘, 지방소멸은 이제 누구나 입에 올리는 말이 됐다.
실제로 가임기 여성이 노인 인구보다 크게 부족한 소멸위험 지역은 118곳(행정안전부 2021년 기준)으로 전체 228개 시군구의 과반이다. 지방소멸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역대 정부가 펼쳐온 다양한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위기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단 점이다.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보니 지역 청년은 상경하길 꿈꾼다. 원인이 뚜렷하니 해법도 간단하다.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있다면 소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각 지자체가 '대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대기업은 시큰둥하다. 기업 경영에 필요한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지방이 사라지는 걸 손 놓고 봐야만 하는 걸까. 사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건 대기업만이 아니다. 한국에선 스타트업 역시 청년 일자리 창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령, 지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현지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 내 다른 경제주체와 협업하면서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면 지방소멸을 늦출 수 있다.
필자가 속한 지역혁신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은 이런 움직임을 독려하는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다. 대기업, 공공기관, 학계 등 민관협이 머리를 맞대고 스타트업의 지역경제 혁신사례를 공유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 사례 중 경북 칠곡군 작은 시골마을에서 창업한 버거집의 성장기를 소개하려 한다.
■시골 버거집의 웨이팅 = 칠곡군은 정부가 지정한 인구소멸 위기지역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곳에 위험요인이 없다는 건 아니다. 칠곡군의 인구수는 올 7월 기준 11만1372명. 한편에서 시 승격을 거론할 만큼 발전하는 도시였지만, 인구수가 2016년 정점(12만3199명)을 찍고 줄면서 쇠퇴기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칠곡군 왜관면 '매원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두번밖에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다. 그런데 이 동네가 최근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엔 서울 핫플레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웨이팅'이 벌어지는 버거집 '므므흐스 부엉이버거'가 있다. '모든 날 매순간 행복한 사람들'의 초성을 따서 이름을 만든 이 버거집이 일군 성과는 놀랍다.
관광지에 있는 것도 아닌데, 한해 방문객은 8만명에 이른다. 지난해엔 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월평균 6300개의 버거를 판매한 결과다. 손님이 많다 보니 주말 평균 대기시간은 70분이나 된다. 더 놀라운 건 고객의 평균 재방문율이 32%에 달한다는 점이다. 호기심에 한번 들렀다가 다시 안 가는 '뜨내기 가게'가 아니란 얘기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의 흥행 비결은 뛰어난 품질과 적극적인 마케팅이다. 건강한 식재료를 활용한 버거와 초성게임 이벤트 등 고객 친화 마케팅은 이 가게에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비결은 또 있다. 지역경제와의 '밀착 스킨십'이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하는 식재료를 원료로 활용하는 로컬 스타트업은 숱하지만, 므므흐스 부엉이버거는 여기에 '특별함'을 입혔다.
버거의 주요 재료인 패티와 베이컨, 소시지를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경영 문제까지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특별한 비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많은 수제버거집이 원가를 낮추기 위해 패티나 베이컨을 수입산에 의존한다. 하지만 므므흐스 부엉이버거는 칠곡산 돼지고기의 '뒷다릿살(후지)'를 원료로 사용해 원가 상승을 억제했다.
이 부위는 국내 축산농가의 골칫거리 중 하나다. 앞다릿살(전지)보다 식감이 좋지 않아 재고가 쌓일 때가 숱하다. 돼지의 육중한 몸을 지탱하는 게 뒷다리인 만큼, 근육량이 많기 때문이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는 이 뒷다릿살을 개량해 식감이 뛰어난 '둥근 베이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원가부담뿐만 아니라 지역 축산업계의 재고 부담도 한번에 해소했다.
실제로 므므흐스 부엉이버거는 전문 F&B 기업 못지않게 연구ㆍ개발(R&D)에 진심이다. 매장 오른편에 R&D 연구소를 별도로 구축했다. 이곳에선 재료별 숙성도 테스트, 조리법에 따른 관능검사 등을 실시한다. 메뉴 개발, 식자재 관리, 농가 서포트를 담당하는 로컬연구팀도 따로 조직했다.
칠곡에서 생산한 미나리로 방부제를 대체한 것도 신의 한수로 작용했다. 보통의 가공육엔 인공적으로 만든 아질산염 첨가물(일종의 방부제)을 사용하는데, 므므흐스 부엉이버거에선 미나리에서 추출한 천연 소재를 활용한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가 '소화가 잘되는 수제버거'를 주요 콘셉트로 내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칠곡과 '밀착 스킨십'을 꾀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가 자리 잡은 부지에도 남다른 의미를 담았다. 이 가게가 둥지를 튼 곳은 원래 '마늘공장'이었다. 폐쇄한 지 한참이 흘러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흉물' 취급했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는 이곳에 매장과 연구시설을 만들면서 흉물을 '핫플레이스'로 바꿔 놨다. 가게 입장에서도 임대료를 낮춰 초기 투자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는 또다른 관광지인 '매원 한옥마을'을 잇는 접점 역할도 하고 있다. 매원 한옥마을에서 방문 인증 스탬프를 받아오면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식의 지역 밀착 이벤트다.
므므흐스 부엉이버거 측은 "지역의 공간과 지역농가에서 받는 식재료에 우리만의 R&D 역량을 더해 특별한 버거를 만들었다"면서 "2030년까지 지방 50여곳에 매장을 새롭게 열고 연 매출 400억원을 달성하는 게 중장기 목표"라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부엉이버거를 '2022년 로컬페스타' 최우수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했다. 지역의 장점을 경영에 접목해 성공가도에 진입한 므므흐스 부엉이버거의 성장기는 지자체가 벤치마킹할 점이 많다. 지역에서 혁신형 스타트업의 창업을 준비 중인 청년에게도 좋은 교본이 될 것이다.
이준호 지역혁신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부회장
junho65@naver.com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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