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상의 파괴자 됐다”... ‘오펜하이머’ 알고 보면 재밌을 7가지
‘원자폭탄의 아버지’와 ‘군축(軍縮)의 아버지’라는 정반대의 두 별명을 가지고 있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傳記) 영화 ‘오펜하이머’가 15일 국내에서 개봉했다. 거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첫 전기 영화로 주목받은 이 작품은 미국 등에선 지난달 이미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세계 최초로 원폭 개발에 성공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영웅인 동시에 인류에 통제하지 못할 무기를 안긴 문제적 인물이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는다. 앞서 영화가 개봉한 영미권에선 오펜하이머 재조명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관람 전 알고 가면 좋은 ‘오펜하이머 지식’을 소개한다.
◇과학에 앞서 언어 천재였다
1904년 4월 22일 유복한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신동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광석 세트를 계기로 7살 때부터 결정(結晶) 구조와 빛의 편광(偏光) 간의 상호작용 등에 관심을 갖고 빠져들었다. 12세 땐 오펜하이머가 어린이인 줄 모르고 서한을 주고받던 뉴욕 광물학 클럽 회원이 그를 세미나 연사로 초대하기에 이른다. 오펜하이머는 지적 호기심이 매우 커 영어 외에도 그리스어·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네덜란드어·산스크리트어까지 총 7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詩) 쓰기를 즐기기도 했다.
◇노벨상 후보만 세 번…수상은 못해
오펜하이머는 역사가 인정하는 최고의 물리학자였지만 정작 노벨상을 받진 못했다. 노벨물리학상 후보에만 1945년·1951년·1967년 세 번 올랐지만 선정되진 못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선 통상 한 가지 분야를 집중해서 연구하고 그 분야에서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오펜하이머는 여러 분야에서 나온 성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종합해 또 다른 결과를 내놓는 일에 천재적인 인물이었기에 ‘노벨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그와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 중 18명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담배로 살고 담배로 죽었다
오펜하이머는 엄청난 애연가로 유명했다. 그의 사진이 대부분 담배를 물고 있을 정도다. 맨해튼 프로젝트 진행할 당시 그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몸무게가 50㎏(키 178cm)까지 빠졌는데 이 시기에도 담배만큼은 숨 쉬듯 피워댔다고 한다. 하루에 담배 100개비를 피웠다는 증언도 있다. 그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 ‘체스터필드’는 오펜하이머의 상징이 됐다. 그는 결국 인후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가 유명해진 후엔 그를 따라 담배를 피우는 것이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배우 킬리언 머피는 촬영 때 니코틴이 없는 허브 담배를 피웠다. 아울러 아몬드만 먹는 극단적 다이어트도 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과 비슷하지만 다른 길
오펜하이머는 전(前) 세대 물리학계의 최고 거장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1920년대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할 때 만났다.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나치 독일보다 빨리 원폭을 개발해야 한다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두 사람은 대부분의 사안에 견해를 같이했지만 말년에 닥친 매카시즘(반공산주의 운동) 광풍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정치적 공세에 당하기만 했던 오펜하이머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이에 반발하는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보였다.
◇힌두교에 매료된 유대인
오펜하이머는 유대인이긴 했지만 유대교를 맹종하는 신자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산스크리트어와 힌두교에 심취해 힌두교와 인도 문학에 대한 경외심을 자주 표현했다. 원폭 실험에 성공한 후 그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며 자책했다고 하는데, 이 문구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어구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대 학부생 시절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면서 힌두교 철학에 빠져들었다. 그가 전공한 물리학 분야인 양자역학과 우주 창조와 기원을 고찰하는 힌두교와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도 있다.
◇뉴욕보단 뉴멕시코를 좋아했다
뉴욕 출신인 오펜하이머는 생전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로 물리학과 뉴멕시코주(州)를 꼽았다. 유년 시절 여행한 뉴멕시코의 황량하고도 광활한 풍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뉴멕시코주에 ‘본부’를 꾸린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란 이름은 미국의 2차 대전 참전 후 기반시설 건설 및 무기 생산 시설 구축 등을 위해 과학·공학자들을 대거 모은 육군 공병대의 연구 시설 중 상당수가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대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맨해튼에서 개발 자체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계획 초기에 맨해튼에서 초기 연구가 이뤄져 이후에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이 사용됐다.
◇전에도 영화 나왔지만 ‘혹평’
오펜하이머의 일기를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최소 두 편의 영화가 오펜하이머를 다뤘다. 롤랑 조페 감독의 ‘멸망의 창조’(1989년), 드라마 다큐인 ‘시작과 끝’(1947) 등이다. 컴퓨터 그래픽 등이 발달하기 전에 만들어진 두 영화는 원폭과 관련한 어설픈 묘사와 역사적 고증 부족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반면 1980년대 BBC가 방영한 7부작 드라마 ‘오펜하이머’는 골든글로브·에미상 등 주요 드라마상 후보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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