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용산 인내심 시험하는 전직 문재인

2023. 8. 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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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논설실장

'인간 문재인'이 멋있게 보였던 때가 있었다. 2008년 2월 노무현 정부 임기가 끝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그에게 뭘 하고 싶냐며 묻자, 전국을 유람하고 싶다며 쌍용차 렉스턴의 운전석에 앉아 떠날 때였다. 소탈한 그의 언행과 미소는 새로 바른 문풍지처럼 순실해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 재직 5년에 전직 1년여 '전직' 세월을 지나며 거대한 사저를 짓고 짓는 미소는 흔한 말로 썩은 미소다. 국가와 경제에 그가 던진 횡액을 돌아보면 음습하기까지 하다. 퇴임 후 잊히고 싶다고 했으면서도 악착같이 잊히지 않으려 행동하는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 던지는 그의 돌출 발언이 풍파를 일으킨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에 잼버리를 놓고 한 말은 유별나다. 그는 지난 13일 소셜미디어에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습니다.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마치 이 일과 상관없는 심판관인 양 말한다.

사실 잼버리 준비 부실의 책임은 국정의 총책임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져야 한다. 잼버리는 보통 6~7년 전에 차기 대회장소를 결정한다. 대규모 행사여서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간 준비기간 6년 중 5년은 전 정부, 1년은 현 정부가 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현 정부에 가중치를 둔다고 해도 책임은 반반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본인의 책임 하에 했어야 할 일을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라며 사돈 남말 하듯 했다.

잼버리 부실과 파행의 최대 원인은 잘못된 부지 선정이다. 새만금으로 야영장 부지가 최종 선정된 시기는 2017년 8월이다. 당시 거기는 갯벌이었다. 백번 양보해 매립하면 된다고 하지만, 매립 공사는 2020년 뒤늦게 시작돼 허술하게나마 완공된 게 2022년 12월 말이다. 늑장 공사의 책임은 명백히 문 정부와 전라북도가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최종 책임자는 당시 대통령 문재인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유치 당시의 대통령'이라는 교묘한 말로 자기는 유치에만 관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단연 유체이탈 화법이다. 정확히는 '유치와 준비를 담당했던 대통령'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 객관화를 못하는 '환자'요 염치 빵점인 무뢰한이라 해도 너무 심하다.

누가 봐도 전 정부에서 준비를 제대로 못한 행사를 현 정부가 소방수로 나서 대실패로 끝날 것을 무난하게 치른 셈이다. 양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현 정부와 정부 요청에 쾌히 나서준 기업, 종교단체, 전국의 지자체 등에 감사를 표해야 했다. 그걸 모른다면 적어도 잠자코 있어야지 적반하장 궤변으로 염장을 질러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간혹 전 정부의 정책 실패 사례를 들며 아쉬움을 표하긴 해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을 피해왔다. 이번 발언을 듣고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그러잖아도 윤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쓰고 싶어도 문 정부에서 국가 빚을 400조나 늘려놔 엄두를 못내고 있다.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것도 결국 문 정부의 오도된 소위 '소득주도성장정책'과 기업 법인세 부담 가중, 탈원전 등 이념에 갇힌 실책 탓이 크다. 경제까지 덤터기 쓰고 있는 마당에 잼버리 부실까지 떠안았으니 속이 끓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계속 수사 또는 재수사 대상이 될 불법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 비서진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탈원전을 합리화하기 위한 조작 보고서 작성을 강요한 데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 가족의 취업 대가로 부적격 인물을 주요 기관장에 앉히고 공천까지 이르게 한 일 등은 하나같이 규명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의 취업 대가로 특정 인물을 기관장에 앉혔다면 뇌물죄에 해당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기됐던 '제3자 뇌물죄'(최종 무죄)보다 열 배 스무 배 죄 값이 무겁다. 문 전 대통령은 용산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기 바란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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