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대신 돈·권력에 눈먼 ‘무속 정치’의 끝은

고명섭 2023. 8.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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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의 카이로스][고명섭의 카이로스]

몽환 상태에서 접신자는 자신의 몸이 해체돼 합쳐지는 절단 체험을 하고 신령과 함께 천상과 지옥을 다녀온 뒤에야 깨어난다. 신병이라는 시험 속에서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겪고 ‘속(俗)의 인간’에서 ‘성(聖)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신에게서 특별한 능력을 받은 샤먼은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의 혼을 저승으로 안내하고 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린다.

몽골 샤먼. 샤먼은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겪고 ‘속(俗)의 인간’에서 ‘성(聖)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말년의 자서전 첫 문장에서 자신의 일생을 한마디로 규정했다. “내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융은 스승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무의식 해석을 놓고 견해가 갈려 결별했다. 융이 본 무의식의 심층엔 집단무의식이 있었다. 그 집단무의식의 핵을 이루는 것이 인류의 원형적 자아인 ‘자기’다. 표면의 자아가 집단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자기와 만나 합일하는 것을 두고 융은 ‘자기실현’이라고 불렀다. 융의 분석심리학을 떠받치는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융은 그 자서전에서 대학 3학년 때 겪은 일을 소개한다. 가까운 외가 사람들이 15살쯤 된 소녀를 영매로 삼아 여는 강령술 모임에 융을 초대했다는 얘기다. 그 모임에서 융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벽이나 탁자를 두들기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영매가 혼령의 목소리로 전하는 기이한 말을 듣기도 했다. 강령술 모임은 2년쯤 이어졌는데 융은 거기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관찰해 뒤에 의학박사 학위 논문(‘이른바 신비주의 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에 관하여’)으로 제출했다.

융은 자서전에서 그 일을 아주 간략히 소개하고 영매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기술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영매는 융과 가깝게 지내던 여섯살 아래 외사촌 여동생 헬레네 프라이스베르크였다. 강령술 모임도 융이 대학에 들어가던 해에 시작돼 대학 시절 내내 계속됐다. 융은 그 모임의 핵심 참여자였다. 강령술 모임이 열릴 때마다 헬레네는 망아 상태에서 죽은 할아버지(융의 외할아버지) 자무엘 프라이스베르크의 목소리로 말했다. 히브리어 학자였던 할아버지처럼 히브리어를 쓰기도 했다. 브라질로 이민 간 언니가 피부가 검은 아이를 낳는 환상을 보기도 했는데, 이 환상은 나중에 사실로 확인됐다. 다른 언니가 곧 기형아를 낳을 것인데 아기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도 했다. 영매 말대로 두달 뒤 언니가 기형아를 낳았고 아기는 곧 죽었다.

혼령을 만나는 일은 융의 외가에서 흔한 일이었다. 융의 어머니 에밀리도 자주 혼령과 대화했고 여동생 트루디도 가끔 헬레네를 대신해 영매 노릇을 했다. 헬레네는 집안 여성들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영매였을 뿐이다. 프라이스베르크 집안에 ‘영매 전통’을 끌어들인 사람은 융의 외할머니 구스텔레였다. 18살 때 구스텔레는 성홍열을 앓던 오빠를 간호하다가 기이한 일을 겪었다. 당시 성홍열은 전염력이 강한 치명적인 병이었다. 구스텔레는 오빠를 돌보던 중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 왕진 온 의사는 구스텔레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집안사람들은 구스텔레가 죽었다고 생각해 관에 넣고 장례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머니가 뜨거운 인두로 목덜미를 지져대자 관 속에 누워 있던 딸이 눈을 떴다. 죽을 뻔하다 되살아난 것인데, 그때부터 구스텔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래의 일을 예언했다. 융은 영매 헬레네의 사례만이 아니라 외할머니에게서 시작된 집안의 모든 ‘신비 현상’을 자료로 삼아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개인의 의식 심층에 자리 잡은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이 박사 학위 논문의 원천이 된, 융 집안의 특이한 경험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융 집안의 이 ‘신비 현상’은 더 넓은 종교사의 시야에서 보면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다. 20세기 종교학의 거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샤머니즘 연구서에서 샤머니즘의 핵심을 엑스터시, 곧 망아 상태에서 겪는 ‘접신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샤머니즘 현상은 유라시아·남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를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발견된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도 접신 체험의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최소 2만5000년 전 구석기시대에 샤머니즘 전통이 확립됐음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샤머니즘이 가장 강력하게 그리고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일대다. 샤먼이라는 말도 이 시베리아 퉁구스족의 ‘강신무’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

퉁구스족·브리야트족·야쿠트족 같은 부족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샤머니즘은 ‘죽음과 재생의 입문 의례(initiation cult)’를 핵심으로 한다. 강신무, 곧 샤먼이 될 사람은 청소년기를 전후해 심대한 정신적·육체적 위기를 겪는다. 요컨대 지독한 신병(무병)을 앓는다. 환영을 보고 숲과 들을 헤매고 히스테리와 정신착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앓아눕게 된다. 신에게 선택당한 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시험이고 시련이다. 신이 들린 자는 짧으면 사흘, 길면 아흐레 동안 죽음과 같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아예 숨을 쉬지 않아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

그 몽환 상태에서 접신자는 자신의 몸이 해체돼 합쳐지는 절단 체험을 하고 신령과 함께 천상과 지옥을 다녀온 뒤에야 깨어난다. 신병이라는 시험 속에서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겪고 ‘속(俗)의 인간’에서 ‘성(聖)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신에게서 특별한 능력을 받은 샤먼은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의 혼을 저승으로 안내하고 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린다. 샤먼은 신과 인간 사이 중개자가 된다. 엘리아데는 그렇게 태어난 샤먼이 공동체의 통합을 이끄는 구심점 노릇을 하며 죽음·질병·불모·흉사에 맞서 생명·건강·다산·풍요를 지킨다고 말한다.

한반도의 무교는 이 고대 샤머니즘의 변형이다. 무당이라고 부르는 무속인이 바로 옛 샤머니즘의 유구한 전통을 잇는 오늘의 샤먼이다. 무속인들 사이에 전해 오는 ‘바리데기 신화’는 ‘시련-죽음-재생’의 고전적인 샤머니즘 드라마를 보여준다.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려진 바리는 열다섯살이 돼 부모를 만나고, 저승세계로 가 온갖 고난을 겪고 생명수를 구해 돌아와 죽을병 걸린 부모를 살려낸다. 바리데기 신화는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샤머니즘 신화의 변형이다. 타타르족의 ‘용감한 소녀 쿠바이코’는 괴물에게 목이 베인 동생의 머리를 찾아 지옥으로 간다. 지옥의 왕 앞에 선 쿠바이코는 왕이 내린 시험을 이겨내고 동생의 머리를 되찾아 돌아온다.

흔히 무속 신앙을 두고 ‘윤리성’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순전한 기복 신앙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고도로 조직된 윤리적 체계가 없을 뿐 무속에도 엄연히 윤리학이 있다. 바리데기 신화에서 부모를 살려낸 바리는 오구대왕에게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아니면 재산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말을 듣는다. 바리는 부와 권력을 뿌리치고 “믿었던 부모와 세상에 크게 실망했으니 상처 입은 영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치료자의 삶을 살겠다”고 답한다. 세속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영혼을 구제하는 만신 곧 무당이 된다는 결말이야말로 이 신화의 윤리성을 보여준다.

우리 샤머니즘의 원류인 ‘풍류’도 마찬가지다. 신라 말기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고 쓴 뒤, 이 풍류가 “유·불·선 3교의 가르침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이 풍류의 가르침으로 민중을 교화한다”고 했다. 유교·불교·도교의 고등한 윤리적 체계가 들어오기 전에도 풍류의 도가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적 기둥 노릇을 했다는 얘기다. 우리 시대의 만신 김금화(1931~2019)는 생전에 낸 자서전을 “만신이 된다는 것은 뭇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고통을 숱하게 참아내는 것이다”는 말로 시작했다. 김금화는 이런 말도 했다. “사람도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듯이 무당도 좋은 무당과 나쁜 무당이 있다.” “큰무당이 되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가슴 속의 아픔, 시련, 연민을 내버리고 다른 이의 고통을 살피고 위로하는 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김금화는 자신의 삶을 후려친 고통과 고난의 기억을 삭여 뭇사람의 상처를 돌보았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실향민으로 산 김금화는 분단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여겨 북녘땅이 내다보이는 임진각에서 통일맞이굿을 하기도 했다.

무속 정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종교가 정치에 관심을 두듯 무속도 정치에 관심을 둘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심의 내용이다. 다른 종교가 그렇듯이 무속은 사람의 얼을 정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혼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150명이 넘는 목숨이 원령이 된 이태원참사를 두고 ‘한국 외교에 큰 기회가 왔다’고 말하는 무속인은 얼을 살리는 무속인이라고 할 수 없다. 무속 정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돈과 권력에 눈이 먼 무속 정치가 문제다. 정치에 기웃거리는 무속이 사람을 돌보지 않고 재물을 돌보면 나라를 망친다.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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