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대결적 인식의 확장·종합판 된 광복절 경축사
윤석열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는 그간 밝혀온 역사관과 국가관, 안보관의 확장·종합판으로 풀이된다. ‘자유’를 핵심 가치로 두되 뚜렷한 피아 구분, 선명한 대결적 인식을 강화했다. ‘반국가세력’과 ‘공산전체주의 세력’ 등 한국 정치사에서 ‘색깔론’과 엮여 악용돼온 용어들이 대통령 연설을 통해 되살아났다. 극단화한 사회를 보듬는 메시지 대신 적대적 어휘들이 경축사를 채우면서 통합의 리더십은 멀어졌다.
윤 대통령은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 독립운동부터 현재 분단 상황 진단,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안보 협력 방안과 향후 국정운영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짚었다. 분량은 3776자로 취임사(3303자)보다 길었다. 집권 1년 3개월여간 국정운영을 통해 구체화한 역사·국가·안보관과 이에 기반한 정책 기조 등을 전체적으로 제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부분은 반국가·공산전체주의 세력과의 대결이란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다. 그간 윤 대통령이 보수 관변단체나 국민의힘 행사 등에서 일부 언급한 내용들이 대통령 주요 연설로 꼽히는 광복절 경축사에 키워드로 등장했다. 광복절 경축사는 독립의 의미를 돌아보고 평화와 통일, 통합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는 연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연설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주요 과제로 ‘반국가세력 척결’을 제시한 것으로 읽힌다.
어조는 한층 강경하고, 표현은 과격해졌다.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며 ‘야비’ ‘패륜적 공작’ 등 적대적 표현을 동원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을 묶어 언급한 데는 이들을 상당한 규모로 존재하는 실질적 위협으로 판단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민주주의·인권·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 세력이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부터 문재인 정부를 유사한 어조로 비판해온 데 비춰 전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2022년 2월 유세에서 “민주당 정권은 한물간 좌파사회 혁명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이들이 마치 민주주의를 위장하고 민주인사인 것처럼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발언들에는 현재의 야당 등 일부 정치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반국가세력을 언급했다. 대통령실은 이를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헌법 66조와 연관지어 ‘국가의 계속성’ 수호 의무에 따른 일반적 발언이라고 설명해 왔다.
집권 2년차 들어서는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 축사에선 “허위 선동과 조작,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면서 “반국가 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말했다. 당시 종전선언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읽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며 “이분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국가 계속성의 요체요, 핵심”이라고 말했다. 경축식 주제도 ‘위대한 국민, 자유를 향한 여정’으로 잡았다. 대통령실은 “자유의 나라를 만든 선열을 기억하면서 광복 이후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위대한 국민과 함께 더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통합의 메시지는 사실상 실종됐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16차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우리’로 호명했지만 대결적 인식이 도드라지면서 ‘우리’에 대한 확장적 인식은 보이지 못했다. 이념 전쟁을 활용하는 대결 정치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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