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하자소송 감정인 재량권 남용 등 모순투성이… 바로 잡겠다"
실무자도 막연히 문제점 인식정도… 구체적 문제·개선책은 대부분 잘 몰라
'철근누락' 설계도면에 없다면 안전진단부터… "소규모공사 피해 힘 되고파"
국내에서 전문분야 법무법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1997년 8월 설립된 법무법인 화인도 이 그중 하나다. 건설업종에 특화된 화인은 특히 건설분쟁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보유한 업계 대표 법무법인이기도 하다.
법무법인 화인이 전문 분야를 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화인을 이끌고 있는 정홍식(66·사진) 대표가 2002년 처음으로 아파트 하자소송을 맡아 변론을 하다가 깨달은 것. 전문분야를 선점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정 대표의 그 다음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정 대표는 첫 하자소송을 맡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단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니 몇 차례 준비서면과 의견서 등을 준비하면 되는 사건으로만 판단했던 것이다.
정 대표는 "우선 용어부터 생소했다. 회사에서 마련한 기술자 설명 자리에서는 알 듯 했는데, 돌아서면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서 곧바로 다시 전화해 물어보곤 할 정도였다"며 "사건이 진행되면서 오기 비슷한 것이 생겨서 작심하고 하자소송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기억을 꺼냈다.
해당 사건 후에는 가급적이면 식사 시간마다 건설엔지니어들과 만났다. 관련 서적은 물론 재판 기록들도 구해서 정밀분석까지 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인지 화인이 맡기 시작한 하자소송은 점점 늘어났고 회사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 화인 소속의 변호사는 10여명이지만, 건설엔지니어(30여명)와 보조 직원까지 60여명의 대식구 체제로 꾸준히 성장 중이다.
화인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정 대표는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건설사 내에 우수한 엔지니어가 많이 있지만 소송이나 조정이라는 업무를 실무적으로 다뤄본 경험이 없다보니 보조적인 역할만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다, 화인과 같은 시스템을 갖춘 변호사나 로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건설 분쟁은 변호사와 실무엔지니어의 협업이 있어야만 소송이든 조정이든 가능하다"며 "실무엔지니어의 현황 파악과 자료 정리 없이 변호사 단독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독자적으로 소송이나 조정을 지원해주는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많이 있지만, 협의할 날짜와 시간을 정하기가 어려워 일정 지체는 부지기수다. 소송 준비 과정에서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기 힘든 주된 배경이다. 게다가 판결 결과에 대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는 부분점도 정 대표는 건설소송 준비의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인지했다.
법무법인 산하에 엔지니어링 업체를 만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화인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에이앤티(ANT)엔지니어링에는 건축시공기술사, 특급기술자 및 건축기사 등 20여명 이상의 전문 기술자들이 상주해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에이앤티엔지니어링은 약 2000여 건 이상의 소송을 공동으로 수행했고, 수 백 건 이상의 공사관리 경험을 토대로 계속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산하 엔지니어링 업체의 역할에 대해 정 대표는 "건설 분쟁은 물론 하자 분쟁과 공사대금 분쟁, 추가공사대금 분쟁 등 모든 건설 분쟁에는 감정이 실시되고 이 감정 결과에 따라 대부분 판결이 선고된다"면서도 "감정 결과를 분석하고 분석 여하에 따라 보완감정신청이나 사실조회, 재감정신청 등을 통해 결과를 보완하거나 다시 감정을 해야하는데 이때 변호사는 실무엔지니어가 준비해주는 자료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재차 강조했다.
최근에는 건설소송 관련 포럼도 개최했다. 국내 하자소송은 감정인들 재량권 남용으로 인한 과잉 감정의 문제와 서울중앙지방법원 건설감정실무 연구회에서 정립해 시행하는 '건설감정실무기준'이 판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데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다.
정 대표는 "해당 기준이 건설사에 재직하면서 하자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도 막연히 문제점이 있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여부와 어떤 제도적인 개선책은 없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모른다"며 "포럼을 통해 많은 이들과 구체적인 문제를 공유하고자 했다"고 개최 취지를 밝혔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철근 누락이나 새 아파트 누수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 부실공사 관련 이슈에 대한 진단도 내놨다. 일단 설계도면에 있는데 철근을 뺀 경우와 설계도면상 누락은 물론 시공도 되지 않은 경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소송을 많이 해본 경험상 어느 경우나 전문가인 구조기술자의 안전진단이 선행돼야한다"며 "전문가의 진단 결과, 구조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면 누락한 철근의 금액과 시공비 상당액을 물어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조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보수·보강으로 할 것인지, 철거 후 재시공으로 할 것인지는 구조안전진단을 한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서 결정하면 될 것"이라면서도 "우리 대법원은 더 저렴한 보수·보강 공법이 있다면 그에 따른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린바 있다"고 덧붙였다.
새아파트 누수 문제와 관련 "시공기술자 등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야겠지만 통상적으로 일부 부실시공의 결과로 판명된다면 그 부분 보수로 충분하다"며 "누수 결과로 가구나 옷 등 집기 비품이 훼손됐다면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대주택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그는 "임대주택 입주예정자는 보수·보강 등을 요구를 할 수 있어도 보수·보강에 갈음하는 손해배상 청구권은 없다고 봐야한다"며 "보수·보강에 갈음하는 손해배상 청구는 소유자인 입주자에게만 인정되는 권리"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2000년경부터 많은 건설 분쟁 사건들을 다루면서 정말 심각한 하자는 소규모 공사에 더 많다는 것을 알게돼 이런 피해를 당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서울 등 대도시 대로변 뒤의 골목의 1층 주택을 헐고 4~5층으로 신축해 땅주인이 꼭대기층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임대로 돌려 노후를 보내려는 케이스를 예로 들었다.
정 대표는 "공사 중에 추가공사대금 분쟁 등으로 심한 경우에는 땅이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며 "화인이 이런 소규모 공사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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