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단어조차 사라진 광복절 경축사…尹의 확고한 철학

박종진 기자 2023. 8. 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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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과 밀착하고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맞선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국정방향은 이렇게 요약된다.

'공산전체주의'라는 표현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여섯 번이나 등장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을 설명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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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3.08.15. *재판매 및 DB 금지

한미일과 밀착하고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맞선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국정방향은 이렇게 요약된다.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를 18일 한미일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공고히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북한 핵 위협, 북한·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의 블록화에 맞선다는 취지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와 비슷한 분량(3700여자)에 '자유'가 27번(작년 33번)이나 언급된 점 등은 비슷했지만 대통령이 강조한 구도는 보다 선명해졌다. 보편적 가치를 연결고리로 미국은 동맹, 일본은 파트너라는 점을 역설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내세웠다. 반면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추종 세력에 대해서는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힘을 줬다.

'공산전체주의'라는 표현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여섯 번이나 등장했다. 이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을 겨냥해서는 활개, 준동, 패륜적 공작 등 거침없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이념으로서 좌파나 진보가 아닌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벌써 실패가 증명된 현실 공산권 혹은 권위주의 국가체제를 뜻한다.

우리의 독립운동 역시 공산전체주의의 대척점에 뒀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며 "과거의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다.

공산전체주의라는 '악'(惡)에 맞서기 위한 협력이 절실해지면서 일본에 과거사를 따지는 문구는 사라졌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있었던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와 같은 표현조차도 올해 경축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상징되는 일련의 한일관계 개선 속에서 과거사 문제가 이미 일단락됐다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실은 역대 일본 정부가 일왕과 총리를 포함해 50여 차례 사과를 한 적이 있다며 또 한 번 사과를 받는 것보다 미래지향적 협력을 통한 국익 확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오성규, 김영관 애국지사 등과 동반입장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3.08.15. *재판매 및 DB 금지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는 대신 일본과 군사안보협력의 중요성을 말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을 설명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곳에 북한의 남침을 억제해줄 유엔군의 육해공 전략이 비축돼 있는 점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구도는 명쾌하지만 숙제도 만만치 않다. 한미일 협력이 가져올 안보 강화와 첨단 기술, 공급망 등 경제 협력 효과는 분명해 보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려면 대내외적 소통과 설득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당장 이날 일본 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은 A급 전쟁범죄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도 자칫 이분법적 인식을 확산시켜 국민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아울러 이날 경축사를 포함해 관련 공개 발언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언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날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들 국가에 대한 다층적인 외교전략과 대화 창구를 만들어가기 위한 물밑 협의도 난제로 지목된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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