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통계학 개척 …'굴하지 않는 원칙' 강조

박윤균 기자(gyun@mk.co.kr) 2023. 8. 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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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기중 교수 생애는
연세대 경제학과 석사 졸업후
1호 국비장학생 선발돼 日유학
원칙 중시 자유주의 경제학자

15일 별세한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원칙주의자'의 삶을 살아온 인물로 평가된다. 아들인 윤석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중시하게 된 것도 아버지인 윤 명예교수의 성품과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윤 명예교수는 1931년 충남 공주 탄천면 삼각리에서 태어났다. 파평 윤씨 문정공파 12대손인 그는 파평 윤씨 집성촌이 위치한 논산 노성면 등에 거주하기도 하면서 공주농업고등학교(현재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연세대 상경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윤 명예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직후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1966~1968년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다.

윤 명예교수는 박사 학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또한 그의 '원칙주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윤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지만, 일본 문과계 대학원에서는 뚜렷한 학문적 업적이 없는 이상 박사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관행이 존재해 박사 학위를 따지 못했다.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이도 소수였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는 한양대 경제학과 전임강사가 됐다. 이후 연세대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에는 박사 학위 없이 교수가 된 교수들이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제(舊制) 박사' 제도가 있었지만, 윤 명예교수는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윤 명예교수는 경제통계 분야의 개척자 역할을 해왔는데, 소득과 부의 분배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1999년 3·1문화상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 자유주의 경제의 기본 취지와 원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학문에 있어서도 원칙을 중시했던 셈이다.

제자들에게도 '원리원칙'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학가에는 학점을 후하게 부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의 수업은 달랐던 것으로 졸업생들이 회고했다. 결석이 많은 학생은 예외 없이 낙제점인 F학점을 받았다. 자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원칙주의자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버지 또한 원칙을 중요시하는 분이었다. 대학 다닐 때도 아버지에게 맞았다. 술 먹고 밤늦게 돌아다니다 혼도 많이 났다"고 전했다.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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