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구분 짓기 일상인 사회, 평범함이 만들어낸 잔혹함
[리뷰] 이병헌, 박보영 주연 '콘크리트 유토피아'
공고해 보였던 '구분 짓기' 영화 진행되며 충돌하고 얽혀
사람들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유토피아… '평범한' 한국은?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스포일러 주의. 본 리뷰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힌 유토피아의 사전적 정의다. '완전한 사회'이지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이란 단서가 달린다.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이상향 기준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전한 사회는 무엇일까. 영화가 던지는 물음이다.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에서 홀로 우뚝 선 '황궁아파트'. 아파트 주민들은 재난을 피해 아파트로 찾아온 외부인들과 갈등이 벌어지자 바둑돌 투표(흰 돌 추방, 검은 돌 수용)를 통해 외부인들을 쫓아낸다. 그리고 이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얼어 죽는 외부인들을 보며 얻는 승리감은 덤이다. 주민들의 기저엔 피해의식이 있다. 황궁아파트 사람들은 추방을 결정한 주민회의에서 황궁아파트 옆 “'드림팰리스' 사람들이 단지에 발도 못 붙이게 하고 학군도 섞이지 못하게 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아파트 안과 밖, 황궁아파트와 드림팰리스, 아파트 주민과 바퀴벌레, 흰 돌과 검은 돌. 영화는 내내 '구분 짓기'를 통해 이분법적 구도를 만든다. 그 구도는 계급, 혐오, 차별 등의 단어로도 읽힌다. 통조림을 꺼내기 위해 소파 밑으로 손을 넣었다가 바퀴벌레가 쏟아지자 기겁하는 김민성의 모습. 아파트로 숨어든 외부인들을 혐오하며 연장을 들어 방역하는 모습. 이 두 장면은 오버랩되며 관객들에게 공고한 차이를 인식시킨다.
공고해 보이는 '구분 짓기'는 영화 말미에 서로 충돌하며 얽힌다. 외부인들이 아파트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고 내부인을 내쫓아 '주민' 개념이 바뀌고, 아파트 내에서 리더 역할을 하던 '가짜 김영탁'(모세범)은 바퀴벌레로 판명난다. 황궁아파트를 무시하던 드림팰리스 사람들도 재난 이후 황궁아파트를 부러워하게 됐고, 외부인들을 쫓겨나게 했던 '흰 돌'이 도로 모세범을 추방시키는 데 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상에 드러난 모든 '구분 짓기'가 한 번씩은 뒤바뀌는 셈이다.
단단하게 딛고 있다고 생각한 땅이 사실은 '허상'임이 드러날 때가 많다. 주민 대부분이 자신하던 '구분 짓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잔치를 벌이고 축제를 즐기며 자신들의 위치를 '축하'했지만 그것이 허상임이 드러나자 그들이 혐오하던 '바퀴벌레'가 돼 어둠으로 숨어버렸다.
여기서 이 허상을 일찍부터 간파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짜 김영탁' 모세범이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구분 짓기'가 뒤바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큰 소리로 사람들을 이끌었고 아파트에 몸을 바쳤다. '구분 짓기'의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아파트를 매수하려다 사기를 당하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아파트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신앙과도 같은 '집착'을 보인다. 이는 내면의 불안함으로 '구분 짓기'에 빠진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얼핏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내용처럼 '허상'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구분 짓기'를 기반으로 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렇게 무너졌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사람들 생각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2023년 한국의 유토피아는 무엇일까. 우리는 누구를 구분 짓고 있고 그 구분은 얼마나 단단할까. 지금의 유토피아를 만든 건 나일까 아니면 사회일까.
명화는 영화 마지막에 황궁아파트 사람들이 소문대로 '사람을 잡아먹냐'는 질문에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라고 답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평범한 유토피아였다는 뜻이다. 그 평범함이 130분 동안의 섬뜩함을 만들어냈다.
'모세범'은 실제 모세가 되지 못하고 주저 앉았지만 '명화'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을 받으며 구원받는 것처럼 묘사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명화에게 음식을 주고 숙소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등장이 마치 새로운 '유토피아'를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분 짓기'가 일상인 사람들 속 유일하게 사람을 구분하지 않던 명화가 구원받는 상황이 감독이 내고자 했던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화의 마지막 거처는 90도로 눕혀진 신식 아파트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90도로 뒤틀어야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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