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년만에 일본 땅 밟은 조선통신사 사신
조선통신사 재현한 선박
이달 1일 日 쓰시마섬 입항
정 교수가 정사 역할 수행
"통신사 외교로 260년 평화
세계사적으로 드문 사례"
지난 1일 부산항에서 출항한 후 일본 쓰시마(對馬·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에 정박해 있던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에서 지난 6일 사신의 우두머리인 정사(正使)가 내렸다. 배 앞으로 노란 옷에, 노란 모자를 쓴 취타대가 모여들었다. 조선시대 왕과 관리들의 공식적인 행차에 뒤따르는 행진 음악 '무령지곡(武寧之曲)'이 울려 퍼졌다.
국가 외교문서인 국서 교환의 과제를 부여받은 정사 역할을 연기한 건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72·사진)다. 정 교수는 수염을 붙이고,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입던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한 채 배에서 내린 후 가마에 올라타 축제의 대미인 1.8㎞ 행진의 중심에 섰다. 그는 지난 13일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이 같은 행사를 개최한 건 유례가 없다"며 "쓰시마 입항은 단절된 항해 역사를 잇는 것"이라고 평했다.
통신사는 임진왜란 후 들어선 일본 에도 막부 때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조선에서 일본으로 12차례 파견된 외교사절단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18년 진수한 통신사선은 4년의 기다림 끝에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통신사선은 2019년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반일 정책을 표방한 당시 정부가 이를 막았다. 코로나19까지 겹쳐 세 번이나 발이 묶였다. 이번 행차로 마침내 212년 만에 열세 번째 바닷길이 열렸다.
정 교수는 한국의 주최 측인 부산문화재단의 정사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일관계사학회 회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간사 등을 역임한 한일관계사의 권위자다. 역사교육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에서 활동했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도 지냈다. 특히 한일 공동으로 정리한 통신사 기록 111건 333점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공동추진위원장으로 참여해 큰 공로를 세웠다.
정 교수가 30여 년 전부터 통신사 역사 연구에 매진해 온 건 통신사가 갖는 역사적 의의가 현대에도 유효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통신사 외교가 작동하면서 조선과 일본은 260년 이상 평화를 유지했다. 세계사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끼리 이처럼 오랜 세월 전쟁 없이 평화롭게 교류한 예는 찾기 힘들다. 그는 "사람들은 임진왜란 7년 전쟁, 식민 지배 35년만을 강조한다"며 "왜 한일 간 평화의 역사를 기억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1811년 통신사 교류가 두절되면서 평화의 시대에 금이 갔다. 세계 정세가 바뀌면서 유럽이 일본과 빈번하게 교류하게 됐다. 중국 상인들이 일본을 찾는 일도 늘었다. 일본에 조선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국제 교역로에서 조선은 점점 밀려나게 됐다. 정 교수는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깨닫고 교류 중단을 필사적으로 막았다면 나라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 교수는 2025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오사카역사박물관과 함께 통신사 유물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다. 최근 재일동포 사학자 고(故) 신기수 씨의 딸인 신리화 씨로부터 아버지가 오사카역사박물관에 기증한 통신사 유물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신기수 씨는 사재를 털어 통신사 유물을 수집해 소개하고 역사 다큐멘터리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를 제작·상영해 통신사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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