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아낌없이 주던 바다
지난했던 올여름도 끝나간다. 장마, 폭염, 태풍까지 일상도 자연도 엉망이 됐다. 그러나 해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거란 예측답게 지구촌 전체가 폭염으로 시달렸다. 어쩌면 역대 최고로 더운 여름이 아닌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도 모르겠다. 극단적 기후 재앙을 막아주던 바다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아낌없이 주던 바다가 그립다.
바다가 놀이터에서 탐구지로 바뀐 지 어언 30년이 되어 간다. 해양학과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은 "배는 언제 타니? 무슨 고기 잡아?"라고 물었다. 딱히 답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연구선도 타고 수산자원도 공부하니 말이다. 예전에 배 타고 그물 끌면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수산자원이 풍부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 반 쓰레기 반'일 정도로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됐다. 현재 인간이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일주일에 5g 정도로 신용카드 1장 분량이라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2100년쯤에는 김치보다 신용카드를 많이 먹게 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는 당연한 것에 익숙할 뿐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자연이 주는 물, 공기와 같이 생존에 직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 부모, 가족, 친구도 잃고 나서야 그 고마움을 깨닫는다. 바다도 마찬가지일 게다. 밥상의 해산물, 휴가철 해수욕장, 탄소 먹는 갯벌까지 모두 무한 리필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무지와 탐욕이 지금의 성난 바다를 만들었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좀 더 특별하고 고마운 바다를 가지고 있다. 삼면에 사색의 다채로운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 서해에는 풍요로운 생명을 간직한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이 있다. '쪽빛' 동해는 청정해역으로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면서 풍족한 어장을 만들어준다. '핑크빛' 다도해 남해는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수준의 해양생물다양성을 자랑한다. '푸른빛' 제주는 한국의 하와이라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고마운 바다를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독보적 해양생물다양성을 뽐내던 우리나라 바다의 운명이 위태롭다. 지난 반세기 개발과 오염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 바다를 되살려야 우리도 산다. 간척, 매립으로 사라진 갯벌도 복원해야 하고, 해양 쓰레기로 신음하는 수많은 바다생물도 구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마땅히 누려야 할 우리 바다의 온전한 생태계 서비스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선진국 문턱을 넘은 해양강국 대한민국의 저력만큼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바다가 힘들지만 아직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고, 그사이 우리는 잘 몰랐던 바다의 가치를 새롭게 찾아냈다. 바다가 망가지면서 잃어버린 가치도 하나둘 알게 됐고, 그만큼 고마움도 깨닫게 됐다. 이제 돌려줄 차례다. 지구상 가장 큰 공유지인 바다, 그 비극을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
[김종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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