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자랑해도 될 한일교류 역사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3. 8. 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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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한일관계사라고 하는 건 만날 임진왜란 7년 전쟁, 식민 지배 35년, 그런 게 다 아닌가요? 260년이 넘는 평화의 시대도 있었는데 말이죠."

지난 13일 인터뷰한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선통신사 외교를 통해 조선과 일본은 260년 넘는 평화를 유지했다. 기원전 1500년부터 서기 1860년까지 평화를 전제로 체결된 8000여 건의 평화조약 효력이 평균 2년에 불과하다고 체념했던 건 에리히 프롬이다. 이 말과 견줘보면 세계에 자랑해도 될 만한 역사다.

조선통신사의 걸음이 가벼웠던 건 아니다. 조선이 1636년 다시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했던 건 왜란을 겪은 지 불과 38년이 됐을 때다. 어쩔 수 없는 국교 재개였지만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에 큰 도움이 됐다.

자랑할 만한 역사는 하나 더 있다. 한국의 재단법인인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의 비영리법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는 2017년 10월 양국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 중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놓인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이끈 건 드물다. 요미우리신문 등은 당시 한 면을 할애해 이를 자랑했지만, 한국에선 반일 분위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1일 부산에서 출항한 조선통신사 재현선이 일본 쓰시마에서 펼친 행렬도 자랑의 역사가 될 것 같다. 통신사가 지나는 과거 10여 개 번이 뭉쳐 만든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에 속한 10여 개 지방자치단체는 1990년대부터 해마다 번갈아 가며 조선통신사 축제를 연다. 기념관을 만들고 유물을 전시하고 행렬을 재현한다. 통신사가 묵은 사찰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이를 본 부산에서 2000년대부터 비슷한 행사를 시작했다. 이번 행렬은 두 지역의 합작품이다.

역사를 꼭 패배와 굴욕에서 배울 필요는 없다. 한일 간엔 성공과 평화의 역사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국왕의 호칭, 예물의 교환, 여정의 설계 등에서 상대방이 난처한 처지에 몰리지 않도록 서로 배려했던 기억이 있다. 세계 어디에 자랑해도 되는 역사다.

[이효석 오피니언부 기자] thehy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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