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독일의 중국전략에서 읽는다
유럽 독자성·WTO 개혁 강조
미국 일방주의와 선 그어
중국과 협력 여지 남겨둔것
독일은 지난 6월과 7월 최초의 '국가안보전략'과 '중국전략'을 잇달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이미 올라프 숄츠 총리가 '시대전환(zeitenwende)'을 선언하면서 독일의 재무장을 포함한 대외정책 전환을 예고한 바 있다(2022년 2월 27일). 1년 이상의 준비를 마치고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직후라는 시점을 잡아 공개한 것이다. 일본도 작년 말 '3대 안보문서' 개정을 통해 유사한 전환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자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이 그 승전국인 러시아(소련)와 중국에 날을 세우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독일과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모두 제조업 강대국이다. 독일과 한국은 순서대로 세계 4위와 5위의 제조업 강대국이다. 수출에 주력하는 것도 같다. 2022년 GDP 대비 수출의 비중은 독일 50.3%, 한국 48.3%로 주요 20개국(G20) 중 각각 1위와 2위다. 중국(20.7%), 일본(18.2%), 미국(10.9%)에 비해 월등히 높다.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도 유사하다. 한국과 독일 모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는 중국이다. 독일 기업들은 2020년까지 중국에 900억유로가 넘게 투자했고 폭스바겐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외국 브랜드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다른 한편 양국 모두는 미국과 강력한 군사적 동맹관계다. 독일(3만6000명)과 한국(2만5000명)에는 일본(5만4000명) 다음으로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즉 양국 모두 미국과의 동맹, 보호주의 방지, 중국과의 협력이라는 목표 사이의 연립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독일은 우선 미국이 주창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가치동맹'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기반해 내용을 차별화하고 있다. 가령 유럽의 통합과 독자성, 유엔을 통한 대·중·소국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규범질서,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 WTO 개혁을 통한 공정한 무역질서 구축 등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일방주의적 접근과 선을 긋는다.
둘째, EU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즉 중국을 동반자이자 경쟁자이자 라이벌이라고 규정했던 2019년 EU의 중국전략을 출발점으로 삼고 중국에 대한 모든 행동은 EU와 보조를 맞추겠다고 밝히고 있다. 독자적 중국전략이 중국과의 양자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EU 공조를 통해 중국에 대한 협상력은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셋째, 중국 위험을 회피하기(de-risking)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존의 글로벌 무역규범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는 않는다. 가령 중국으로부터의 가치, 안보, 경제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투자보증 한도 부과, 경쟁법 개정, 외국인 투자심사, 수출 제한 등 조치를 활용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적용되는 조치들이다. 중국만을 타깃으로 하는 경제제재를 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르다.
넷째, 가장 많은 분량(10쪽)을 정부, 의회, 경제, 환경, 교육, 연구개발, 지속가능발전 등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할 과제와 원칙을 나열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또 결론의 절반 이상을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중국 전문가 집단을 육성하는 계획으로 채웠다. 우리도 작년 12월 28일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판 중국전략이자 대외전략이다. 독자적인 가치와 이익을 밝히고, 불필요한 갈등을 회피하고, 글로벌 규범을 존중하면서, 중국과의 협력 공간은 넓게 열어놓고 있다는 면에서 독일의 중국전략과도 상통한다. 시대전환을 끌고 갈 각국의 비전과 전략은 얼추 다 나왔다. 앞으로는 그 집행과 성과를 비교할 때다. 우리에게는 답답한 한중관계 개선이 그 출발점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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