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패전일 맞아 재무장·핵억지론 두고 ‘갑론을박’
일본 사회가 태평양전쟁 패전일(종전기념일)인 15일을 맞아 재무장과 핵억지론 등 주요 안보 사안을 둔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핵 문제가 부상하고, 안보문서 개정 등 정부의 재무장 속에 패전일을 맞으면서 사회 내부의 엇갈린 여론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재무장에 관한 일본 내 이견은 이날 주요 정당들이 발표한 성명에서 드러났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경우, 러시아의 핵 위협과 중국의 군사력 강화 등 엄중해진 안보환경을 강조하며 ‘의연한 안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해 일본에게 큰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는 이보다 더 강경한 주장을 냈다. 유신회는 “(현행 헌법으로) 사실상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주의를 홀로 주창하는 것만으로는 다른 국가의 침공 야심을 깨뜨릴 수 없는 시대”라며 “적극적인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중대한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개헌이나 방위력 강화 등에 대해 향후 국회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나 일본공산당 등은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를 강조했다. 민주당은 “한때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의 길을 걸어 각국 사람들에게 심대한 고난을 가져왔다”며 “(당은) 헌법의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일본과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공산당은 “지금해야 할 일은 전쟁 준비가 아니라 평화 준비”라며 기시다 내각의 ‘전쟁 가능 국가 만들기’와 정면 대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언론에서도 정부의 재무장 움직임을 두고 쓴소리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방위비 증액이 내용 검토도 미흡한 채 진행되고 있다”며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다는 상투적인 문구가, 우리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있진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나라를 지키는 대비는 중요하지만, 그렇기에 철저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진지한 자세도 여기에 빼놓을 수 없다”고 일침했다.
일본 내에서는 지난 6일 원폭 78주기 이후 ‘핵억지론’에 대한 논쟁도 불거졌다. 당시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 시장은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옹호한 핵 억지론을 강하게 비판하며 핵무기 폐기를 촉구했는데, 이것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앞서 G7 지도자들은 지난 5월 히로시마 회의에서 “핵무기는 존재하는 한 방어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히로시마 비전’ 문서를 발표해 논란이 됐다. 핵폐기론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를 핵억지론에 기초해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라 비판했다.
마쓰이 시장의 비판 이후 언론들은 핵억지론에 대한 엇갈린 시선을 보였다. NHK나 아사히, 마이니치신문 등에선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여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산케이신문의 경우, 핵폐기를 원하는 목소리에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핵을 보유한 국가들이 동시에 핵폐기 절차를 밟아도, 어딘가의 국가가 핵무장하면 의미가 없게 된다”라며 “자국이나 동맹국이 핵무기를 전력화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이 세계의 엄격한 구도”라고 지적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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