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수출 호조·관광수지 개선···'잃어버린 30년' 딛고 부활
반도체회복에 상반기 車수출 17%↑
日방문객 팬데믹 이전 70% 회복
GDP액수 560조엔 넘어 사상최고
완화적 통화정책 유지도 긍정적
내수부진·설비투자 정체는 숙제
일본이 2분기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연율 6.0%의 성장률을 기록한 데는 강력한 수출의 역할이 컸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회복에 따른 자동차 해외 판매 성장과 외국인 관광객 소비 효과가 일본 경제 회복 속도에 탄력을 더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엔저(円低) 현상의 장기화도 수출 호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25년 만에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잃어버린 30년’ 경제를 경험한 일본이 화려하게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5일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1.5% 증가했다. 연간 환산한 GDP 성장률은 6.0%로 니혼게이자이신문 퀵(QUICK) 민간 예상치(3.1%)와 블룸버그 전망치(2.9%)를 모두 큰 폭으로 웃돌았다. 특히 GDP 액수는 연 환산 560조 7000억 엔(약 5161조 5000억 원)으로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557조 4000억 엔)을 넘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 경제의 깜짝 성장을 이끈 것은 수출 호조다. 일본의 2분기 수출은 전 분기 대비 3.2% 증가하며 2개 분기 만에 플러스 전환했다. 일본의 자동차 해외 판매가 반도체 공급망 회복에 힘입어 선방한 영향이 컸다. 상반기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202만 대를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무역 자료에 따르면 2분기 (일본의) 수출은 미국·유럽으로의 자동차 선적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가 4월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조치를 해제한 이후 방일객 소비가 꾸준히 늘어난 점도 한몫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방일객 수는 6월 기준 팬데믹 이전 수준의 70% 이상을 회복했다. 수출이 확대된 반면 수입은 같은 기간 4.3% 감소,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순수출 확대에 따른 GDP 증가 압박을 더했다. 엔저에 따른 수출 호조와 해외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관광 수지 개선이 일본 경기 회복의 선봉장 역할을 한 셈이다.
올해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은 일본의 수출 경쟁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45.87엔으로 올해 최고(가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연초 대비 10% 넘게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BOJ)이 상당 기간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돼 향후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의 기본적인 통화정책이 당분간 완화에 방점을 찍을 만큼 저금리에 따른 엔저 효과 역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가 4.0%를 넘어서는 반면 일본의 장기 채권금리는 0.6% 수준에 불과해 엔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에 올해 일본 경제성장률이 25년 만에 한국을 역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은 올해 들어 이미 일본에 2개 분기 연속 경제성장률 추월을 허용한 상황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일본 성장률 전망치(1.4%)를 한국(1.1%)보다 높게 잡고 있다. 일본의 2분기 성장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한국을 앞지를 경우 이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8년(-5.1%) 이후 처음이다.
다만 일본에서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점은 부정적 요인으로 지적됐다. 일본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2분기 0.5% 감소하며 3개 분기 만에 마이너스 전환했다. 외식과 숙박 등 서비스 분야에서는 소비가 늘었지만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 등의 영향으로 식품과 가전 소비가 위축된 영향이다. 설비투자 역시 0.03% 증가하는 데 그치는 등 정체 상태다. 교도통신은 “일본 기업들이 내년 3월까지 투자 계획에 대해 의욕을 보인 이전 조사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가) 소폭 느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중국 등 해외 경기 침체 위험이 커지는 상황 역시 우려되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의 2분기 경제 성장에 대해 “수출 급증이 기업 투자와 민간소비의 부진을 상쇄한 결과”라며 “경제학자들은 미국·중국·유럽에 역풍이 닥칠 가능성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고토 시게유키 일본 경제재생담당상 역시 경제 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물가 상승의 영향이나 해외 경기 후퇴 리스크에 대한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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