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에서 가장 공 느린 최고 선발 투수, ‘구속 혁명’의 시대, 고영표는 상식을 깨뜨린다
이른바 ‘구속 혁명’의 시대다. KBO도 한화 문동주가 시속 160㎞의 벽을 넘어섰다. 키움 안우진은 평균 구속 153.3㎞를 던진다. 이들이 아니라도 시속 150㎞가 더는 드물지 않다. 한 경기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 숫자다.
KT 고영표는 이런 흐름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리그 평균 구속은 갈수록 빨라지는 데 고영표만큼은 반대로 움직인다. 2021년 137.2㎞였던 직구 평균 구속이 2022년 136.2㎞로 내려갔고, 올해는 134.1㎞로 더 느려졌다. 규정이닝 기준 유일한 평균 구속 130㎞ 투수가 고영표다. 고영표 다음으로 구속이 낮은 LG 임찬규도 141.5㎞를 평균으로 던진다.
고영표도 구속을 의식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겨울 미국 플로리다 개인 훈련 때도 구속 올릴 고민을 했다. 그러나 고영표는 “구속 욕심에 잃는 게 오히려 더 많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지난 1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취재진과 만난 그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는데,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면서 “가진 장점을 살려야 마운드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영표가 잘 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딱 하나 구속만큼은 아니라는 얘기다.
구속은 느리지만, 구위는 리그 최상급이다. 고영표 스스로 자신의 장점으로 “무브먼트가 1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교한 제구도 제구지만, 그 이전에 공 움직임이 좋아야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영표가 구속 욕심을 버린 것도 구위 때문이다.
고영표는 “팔 각도를 올리면 공은 빨라지지만, 타자가 맞히기는 더 쉬워지더라”면서 “나 같은 사이드암 투수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공이 돼야 타자도 부담을 느끼고, 체인지업도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몇 ㎞ 구속이 오른다 한들, 공 움직임이 죽으면 평범한 투수가 되고 만다는 게 고영표의 자체 진단이다. 사이드암 투수가 구속 욕심에 어설프게 팔을 들어 올렸다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건 ‘레전드 잠수함’ 출신인 이강철 KT 감독의 지론이기도 하다.
구속 욕심을 완전히 지운 올해, 고영표는 ‘역대급’ 성적을 남기고 있다. 평균자책점 2.51에 10승(5패)를 기록 중인 그는 21차례 선발 등판해서 퀄리티스타트플러스(QS+·7이닝 3자책 이하) 피칭만 15번을 했다. 132.2 이닝 동안 11볼넷으로 9이닝당 볼넷(BB/9) 0.75다. 경기 당 볼넷 하나를 내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즌 최다 QS+ 기록은 2010년 한화 류현진의 22차례다. 0점대 BB/9는 KBO 역사상 한 차례도 없었다.
고영표는 류현진의 22차례 QS+ 기록에 “나도 QS+ 20개 정도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22개 기록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올 시즌 고영표 역시 류현진에 준하는 페이스로 QS+ 도장을 찍고 있다.
0점대 BB/9 기록 욕심은 분명하다. 고영표는 “일단 기회가 왔으니까, 끝까지 0점대를 지켜서 KBO 역사에 남는 기록을 새기고 싶다”고 말했다.
고영표는 지난 12일 수원 NC전 7이닝 3실점으로 QS+를 하나 더 적립했고, 13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간 쉴 틈 없이 달려온 만큼, 한 차례 선발 등판을 거르면서 숨을 고르라는 취지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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