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효석문학상] "소설은 영원히 필요한 질문…응답받은 만큼 10년 더 쓸게요"
올해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지난 7월 중순 열린 제1차 회의에서 유독 한 작품을 유심히 읽었다. 본심 진출작은 총 13개 작품. 이 가운데 단 한 작품을 가려야 하는 여정에서 심사위원들이 눈여겨본 작품은 안보윤 소설가의 '애도의 방식'이었다. "안보윤의 재발견이다. 그의 시대가 열릴 것" "요즘 들어 폭발적으로 잘 쓴다" 등 상찬이 끊이지 않았다. 13개 작품을 가려 6개로 압축하고, 몇 주 뒤 열린 제2차 회의(최종심) 시간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같은 생각을 하고 심사장에 왔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전원 만장일치'였다. 안보윤 작가를 지난 9일 서울 충무로 매일경제 본사에서 만났다.
소설 '애도의 방식'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 승규가 폐건물에서 추락사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날 현장엔 승규와 동주만 있었다. 동주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동주 부모는 승규의 학폭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한다. 아들 동주가 살인자로 몰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동주는 무혐의로 풀려난다. 이제 승규가 떨어진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동주뿐이다. 폭력과 의심에 지친 동주는 도시를 떠나려다가 동네 터미널 앞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로 취직한다. 그런 동주에게 승규 엄마가 매일 찾아온다. "승규가 떨어진 이유를 솔직히 말해달라"면서.
―왜 학폭이었나.
▷학폭은 오래된 주제다. 그러나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뉴스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무력감이 들었다.
―승규는 동전을 던진 뒤 앞·뒷면 결과도 보기 전에 동주의 뺨따귀를 갈기고 이를 즐긴다. 동주는 무력하다.
▷과거 학창 시절 보았던 학폭은 물리적 폭행보다 괴롭힘의 형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학폭 소식이 벌어질 때마다 예민하게 감각하게 된다. 학폭, 그리고 가해자의 죽음이란 주제는 제 안의 질문으로 쌓여 있었다.
―동주가 일하는 공간이 독특하다. 터미널 앞 레스토랑은 떠남을 예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떠나지 못하는 곳이다. 마치 동주의 기억처럼 말이다.
▷동주는 승규의 죽음이라는 너무 힘든 일을 겪었다. '너는 정말로 그 애를 죽이고 싶지 않았니?'라는 심리적 상태에 몰입하는 게 두렵다. 그래서 자기 안에 침잠하지 않으려 한다. 레스토랑의 소란한 상태를 동주가 받아들이는 건 무거운 감각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승규 엄마가 탁자 위 함박스테이크를 으깨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아이가 돌연히 죽었다. 그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처참하게 죽을 정당성을 획득하진 못한다. 그게 승규 엄마 마음이다. 그래서 시킨 함박스테이크를 먹지 않고 포크로 고깃덩어리를 으깨기만 한다. 승규 엄마를 보며 동주는 '으깨진 것을 또 한 번 으깨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동주의 마음도 그와 같다.
―심사위원이 격찬한 장면이었다.
▷함박스테이크가 놓인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승규 엄마와 동주의 시선이 교차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들여 쓴 장면이었다. 집중해 말하고자 했던 부분이 정확히 가닿아 제게 되돌아올 때 너무 기쁘다.
―소설 '애도의 방식' 첫 발표 시점은 작년 겨울(계간 '문학동네' 2022년 겨울호)이었다. 이후 드라마 '더 글로리'로 학폭과 사적 복수가 이슈가 됐다.
▷학폭에선 훨씬 더 강하게 되갚아주는 형태가 논의되곤 했다. 이번 제 소설의 경우 복수의 쾌감보다 답답증으로 발현된 형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했다. 그런 경우 가해 학생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 또 피해자는 주변에서 2차 피해를 입게 된다. 어떠한 방식으로 애도하고 폭력을 해결할지를 고민하다 나온 구성이었다.
―'안보윤 소설'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남은 자를 이야기한다.
▷살아남음, 즉 생존이란 키워드가 아무래도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뻔했던 사람,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 저는 집중하게 된다.
―안보윤 소설의 또 다른 인장은 현실 소재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의식적으로 현실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법한 소재를 찾는 건 아니다. 이야기와 소재는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현실에서 하는 질문들이 자꾸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실 독자로서는 현실에서 벗어난 작품을 즐겨 읽는다. 읽으면서 자주 부러워진다. 자기 세계에 오롯하게 몰입한 작가들을 향한 경이감 같은 감정 때문이다.
―올해 초 화제가 됐던 다른 단편 '어떤 진심'을 읽으면서는 넷플릭스 시리즈 '나는 신이다'를 떠올렸다.
▷작년 3월 발표했던 작품인데 올해 1월 현대문학상을 받았고, 공교롭게 '나는 신이다'가 3월 공개되면서 다시 이야기된 것으로 안다. 사이비 교회에서 자란 주란이 무료과외를 미끼로 고교생 이서를 '열매'로 포섭하는 이야기다. 주란도 처음엔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게 타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걸 알게 된다. 주란은 엄마가 전 재산을 바친 이 교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심이 왜곡되는 순간에도 피해를 주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진심은 한심하다'란 문장은 그렇게 나왔다.
―시의적절한 소설이란 뭘까.
▷시의적절하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금세 익숙해져 버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시간이 지나도 도통 끝나지를 않는다. 지금 필요한 이야기는 늘 필요한 이야기다.
―소설가를 처음 결심했던 때로 돌아가보자.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썼다고 들었다.
▷촌스러운 로맨스 소설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던 시기라 누군가 죽는 장면부터 나오는 글이었다(웃음). 그런데 당시 선생님이 반친구들 앞에서 그 글을 낭독해주셨다. 반응이 좋았다.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제 자리에 와서는 '어느 부분이 좋았다'고 말하고 갔다. 그건 제게 굉장한 기억이었다. 그 친구가 최초의 독자였기 때문이다. 또 소설을 낭독해주신 덕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실시간으로 독자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전공은 사학이었다.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는 길을 택했다. 지나고 보니 그건 '죽은' 꿈이었다. 하고 싶은 걸 떠올려보니 너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다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원대한 포부를 갖고 그 이야기를 써야지 했던 건 아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조금씩 행복해지고 싶었다.
―올해 등단 18년. 지금까지 11권의 책을 냈다.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한 편을 다 쓰고 나면, 이 이야기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그 작품 안에서 따라나온다. 하나의 소설로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더라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단번에 끝날 리가 없다. 인간에 대해 한 면을 이야기했다면 다른 면을 쓰고 싶어진다. 그런 식으로 한 편씩 쓰다보니 지금까지 왔다.
―작가로서 집필 과정에서 징크스 같은 건 없는지.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오후 3시 A카페에서 잘 써졌다 하면 매일 그 시간에 계속 그곳으로 간다(웃음). 이 정도의 소음과 이 정도의 톤과 이 정도의 분위기가 맞아야 한다고 느낀다. '애도의 방식'은 작년 가을에 썼는데 새벽에 집에서 썼다. 두 달쯤 그 시간에 깨어 있었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는지.
▷마음이 너무 빼곡해져서 어두워지면 조르주 페레크의 책을 펼쳤다. '미술 애호가의 밤' '꿈꾸는 남자'를 읽곤 했다. 최미래, 김유나, 정선임, 예소연 등 신진 작가의 작품도 많이 읽는다.
―올해는 대단한 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문학상을 2개나 휩쓸었다. 올해는 어떤 해로 기억될까.
▷다작했다고 말씀을 주셨지만 사실 책을 발간한 것에 비해서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는 모습을 확인할 길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 제 이야기를 읽고 고민을 시작했다는 느낌을 적극적으로 받진 못했어서 조금 허무해지는 지점도 있었다. 뭔가 잘못 쓰고 있나, 나만의 독백으로 멈춘다면 과연 소설로 완성될 수 있나 싶었다. 작년에 크게 혼란스러웠고 고민도 많았는데 마치 그 응답을 주시듯이 올해 상을 받게 됐다. 이런 마음이라면 5년, 10년을 더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너무 특별하고, 또 그만큼 두려운 한 해였다.
―작가 안보윤의 '골방의 풍경'을 묻는다. 물리적 공간인 장소가 아닌 쓰는 순간 그 공간에서 보게 되는 것. 그 골방엔 누가 살고 무엇이 지나가는지 궁금하다.
▷소설을 쓰는 순간 내가 보는 건 누군가의 뒤통수다. 나는 그 사람의 뒤통수를 보거나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끼는 것을 가까스로 훔쳐본다. 어떤 때는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 그걸 함께 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 순간이 제게는 문장이 나오는 순간이다. 작가인 제가 그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지 않고 그가 처한 풍경을 자꾸 문장으로 씌워주는 것이다. 그의 빈 공간을 자꾸만 채워주고 싶다.
안보윤 소설가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나 명지대에서 사학과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2005년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으며 데뷔했으며, 장편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을, 단편 '완전한 사과'로 2021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어떤 진심'으로 202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소년7의 고백'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중편소설 '알마의 숲', 장편소설 '여진' '밤의 행방' '사소한 문제들' '모르는 척' 등을 출간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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