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에 취한 안동의 술 4가지…사색에 빠진 안동의 혼 4가지[투어테인먼트]

강석봉 기자 2023. 8. 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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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종택 가양주에 꽃향기가 난다
칵테일과 바람난 안동소주, 어쩌나~
건강 담은 미래 맥주, 대마불사 따로 없다
육사의 청포도, 달콤한 와인에 담겨
왕과 비, 안동에서 환생하다?
6만 유교책판, 500 편액…안동이었기에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 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편액. 사진|강석봉 기자


반듯한 선비의 고장은 안동이다. 유서 깊은 서원과 고지식한 전통의례를 고집하는 하회마을 어르신의 팔자걸음이 뇌리에 새겨진 덕이다. 오죽했으면 유네스코에서 이들의 고집을 인정해, 유교책판이며 편액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했을라고…안동산(産)은 실제 유네스코 단골 손님이다.

이 유서 깊은 고장에 술이 익어 간다. 또다른 단골이 늘게 생겼다. 안동은 유교의 고장으로 집집마다 제사를 위해 고두밥을 쪄 누룩과 버무려 청주를 빚었다. 이 청주를 증류한 것이 소주다.

세계인이 누룩취를 품은 안동소주의 맛에 취했고 그 향에 반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으로 건너가 만찬장을 빛낸 것도 안동소주다.

안동의 술. 사진 왼쪽부터 안동소주, 안동헴프맥주, 일엽편주, 칵테일 병산서원, 칵테일 도산서원. 사진|강석봉 기자


안동소주는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현재 안동의 9개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다. 술에 취해도 갈지(之)자로 걷지 않으려면, 안동 술 예절에 주목!

일엽편주, 만경창파에 띄워…도낏자루 썩든 말든~


농암종택과 이 집의 가양주 일엽편주. 사진|강석봉 기자


농암종택의 ‘일엽편주’는 감미료 없이 쌀·물·누룩만으로 생산하는 알코올 도수 15%의 청주다. 이 술은 소량 생산하기 때문에 사전 예약만으로 판매한다. 품격 높은 종가의 품질 좋은 술이다.

농암은 이리 술 빚을 줄 이미 아셨는 지, 어울리는 권주가(?)도 한 자락 남겼다.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 두고/인간세상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 알리오”

이현보의 ‘농암집’ 어부가 첫 소절이다. 농암종택의 가양주 ‘일엽편주’는 ‘나뭇잎처럼 작은 조각배’라는 뜻으로 그 이름에 술맛이 돈다. 이곳 종택의 ‘일엽편주’ 레이블은 퇴계 이황이 농암에게 직접 써준 글씨를 목각해 일일이 탁본을 떠 만들었다. 알코올 도수 12%의 탁주 ‘꽃술’ 레이블 역시 인쇄가 아닌 수제 탁본이다. 말린 개망초꽃에 물감을 칠한 후 한지로 일일이 눌러 제작했다. 레이블만 수제가 아니다. 누룩 발효 역시 철저히 손으로 한단다.

현재 농암종택은 한옥 스테이로도 유명하다.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은 집들은 농암의 17대손 이성원 씨가 30년 넘게 공들여 재건한 한옥으로 고택이 지닌 고즈넉한 분위기는 덤이다.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 잡아, 그 기세 역시 무시하지 못할 수 없다. 본채에 잇대어 지은 분강서원과 강각·애일당까지 둘러보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술잔 비운 선비님~


안동소주와 칵테일 병산서원. 사진|강석봉 기자


걸판지게 한잔하던 술이 혼술 등으로 그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고 있다. 후래자삼배‘라떼’의 술 문화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이런 트렌드 속에 안동소주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상남자가 그만 칵테일의 유혹에 홀딱 빠졌으니 말이다. 무지개길을 걷는 안동소주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알코올 도수는 45%의 안동소주는, 주식회사 ‘더이음’에서 선보이는 칵테일 ‘병산서원’을 통해 석류 시럽과 블루스를 즐긴다. 그 색조가 병산서원 안팎으로 자리 잡은 배롱나무꽃의 붉은 빛을 닮았다.

칵테일 도산서원. 사진|강석봉 기자


칵테일 ‘도산서원’엔 선비의 푸른 도포 자락이 오버랩된다. 안동소주 베이스에 블루 큐라소와 우유를 넣어 만들었다. 칵테일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안동 시내 카페 ‘주방’에서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45% 안동소주 스트레이트를 4000원에, 35%를 3000원에 제공한다.

서원에 숨어든 칵테일의 불손한 도발이, 취중진담을 남길까, 취중진땀을 뿌릴까. 따지고 보면 벨기에 수도원에서 빚은 에일맥주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천년 후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의 장서각에 비밀의 레시피가 전래될지도 모를 일이다.

주사는 가라…‘대마불사’ 헴프맥주


안동 헴프맥주. 사진|강석봉 기자


안동은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삼 삼기 대회를 열었을 정도로 삼베의 역사를 채워왔다. 삼베의 원료 식물이 바로 대마다. 대마는 환각 성분인 THC의 함유량을 기준으로 0.3% 이상을 마리화나로, 그 이하를 헴프로 구분한다.

헴프는 현재 의료용·산업용으로만 유통이 가능하다. 대마에 든 CBD라는 성분은 뇌전증·파킨슨·치매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헴프의 착한 성품에 주목한 김영민 햄프앤알바이오 대표가 맥주병에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이 성분을 채워 넣었다. 대마불사가 바둑판을 뛰쳐나온 술판에 자리한 셈이다.

최근 안동에서 오랜 연구를 거쳐 헴프맥주 생산에 들어갔다. 직접 헴프맥주 맛을 보니 일반 라거와 유사하면서 탄산이 적고 고소한 맛이 강했다.

‘안동헴프맥주’는 헴프씨드 특유의 고소한 향이 있다. 대마유의 원료인 헴프씨드는 오메가3·6·9의 비율이 완벽에 가까워, 가장 이상적인 식물성기름으로 통한다. 헴프맥주를 마셔 보면 다음 날 숙취가 덜하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청포도 농익은 육사의 고향…와인에 빠진 ‘詩LOVE’


안동 264와인. 사진|강석봉 기자


264 청포도와인은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의 시 ‘청포도’를 모티프로 탄생했다. 해당 와인은 국산 품종 ‘청수’로 제조하는데 전량 이육사의 고향 도산면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다.

레이블은 절정·광야·꽃 세 가지로 구분된다. ‘절정’은 미디엄드라이 당도에 알코올 함량은 13.5%이다. 12.5%의 ‘광야’는 맛이 드라이하며, 11.5% ‘꽃’은 미디엄스위트 당도를 지닌다. 이육사 와인은 750㎖ 기준 1명에 3만 원이다.

타임머신이 따로 있나…왕과 비의 시간 여행


선성현문화단지 한옥체험관. 사진제공|트래블팀


낮술 한 잔으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면 그 기세를 몰아 한복 체험에 나서보자. 안동 도산면 서부리에 조성된 선성현 문화단지는 예끼마을·선성수상길과 연계해 안동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결혼식에서 폐백 의례가 사라지면서 요즘 신랑 신부는 선성현문화단지 한옥체험관에서 숙박을 하고, 한복 체험 사진을 기념으로 남긴다. 한옥체험관의 객실은 총 10개로 2~8인까지 다양한 인원이 묵을 수 있다. 외관은 멋들어진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되어 있어 자고 씻는 데 따른 불편함은 거의 없다.

한복 체험의 경우 선성현문화단지 내 장관청에서 진행된다. 잠깐이나마 조선 시대 왕과 중전·아씨·수령·유생·호위무사가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경험뿐인가. 멀리 안동호를 배경으로 들어앉은 전통 한옥이 사진의 완성도를 더한다.

돌아보면 문화유산…마주하면 기록유산


안동 종택 등에서 기탁한 한국의 편액들. 진본이다. 사진|강석봉 기자


안동에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재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중 ‘팔만대장경’급의 ‘한국의 유교책판’이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자그마치 718종 6만4226장의 목판이다. 이외에도, 2016년에는 189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550점의 ‘한국의 편액’이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한국의 유교책판’과 ‘한국의 편액’이 전시된 안동 소재 한국국학진흥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 유산을 마주하면 가슴이 저절로 뭉클해진다. 이곳에서는 이와더불어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만인의 청원, 만인소’ 등도 볼 수 있다.

이러니 안동 여행에 마음이 안동할 수가 없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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