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장 성폭력, 5년째 든든하게 막는 ‘든든’이 있다

김은형 2023. 8. 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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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5주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진행하는 성폭력예방교육 현장.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15일 개봉한 영화 ‘보호자’의 출연진과 제작진은 2020년 초 촬영을 앞두고 시나리오 리딩 현장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들었다. 연출, 촬영 등 주요 스태프뿐 아니라 정우성 감독, 김남길 등 주인공과 조·단역 배우들까지 꼬박 앉아 강의를 경청했다. 여미정 와이낫필름 대표가 이날 강사로 나섰다. 그는 연출부 출신 영화 제작자로 촬영 현장의 특수성을 잘 알고 있다. 2018년 3월 개소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이 일군 변화다. 든든은 2016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확산을 계기로 여성영화인모임이 만들었다.

든든이 공개를 앞둔 ‘5주년 성과 보고’를 보면, 2018년 2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폭력 상담 건수는 258건이고, 이 가운데 82건은 피해자 소송 지원까지 이뤄졌다. 영화계 전문가뿐 아니라 법조인·의료인 등이 촘촘하게 동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로 든든 운영위원을 맡은 김선아 단국대 공연영화학과 교수는 “피해 상담 사례에는 상업영화 현장뿐 아니라 성인물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피해도 있다. 지속적 지원을 통해 영상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의미한 판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든든은 주요 피해 사례들과 지원 내용, 결과 등에서 피해자 신원보호를 위해 일부 내용을 바꾼 각색집을 이달 말 내놓는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성폭력예방교육 후기 모음. 든든 누리집 갈무리

피해자 지원과 함께 든든이 힘을 쏟는 사업은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교육을 시작한 2018년 1803명이었던 이수자가 지난해 4755명까지 늘었다. 든든의 성폭력 예방교육은 여 대표처럼 영화 현장 출신을 강사로 길러내 부문별 직군별로 차별성 있게 이뤄진다. 여 대표는 “촬영 현장, 영화학과, 영화제 등 일의 특성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 사례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영화제에서는 20대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관객에게 당하는 피해가 적지 않은데 정식 스태프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처를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작가 등 창작자들이 많은 팀에서는 콘텐츠에 성 평등을 제대로 구현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제작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거나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간과하기 쉽다. 이처럼 각자 처한 상황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한계도 있다. 여 대표가 진행했던 영화 ‘보호자’ 교육 현장은 감독과 제작자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작 가해자가 되기 쉽고 성폭력 예방 관리 의무가 있는 책임자급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촬영현장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는 작품들이다 보니 독립영화가 많다. 더 많은 스태프가 모이고 위계가 더 강한 만큼 교육이 더 필요한 상업영화의 경우 투자 배급사인 대기업들이 노무사를 고용해 법률적 문제만 짚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장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영화 제작현장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스태프들이 최근 오티티 등 드라마 현장으로 옮겨가면서 “왜 여기서는 예방 교육을 받지 않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넷플릭스는 든든에 요청해 지난해 성희롱·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이달 말 든든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현장의 성폭력 예방 교육도 시범적으로 시작한다. 든든은 이 사업이 정착되면 오티티뿐 아니라 공중파, 케이블 드라마와 예능 등 영상산업 현장 전체로 성폭력 예방교육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든든은 영화산업의 성 평등 실현이라는 5년 간의 활동 방향을 한국영화의 다양성 강화라는 좀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17~19일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행사다. 든든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한국영화의 다양성·포용 지표개발 및 정책 방안 연구’에서 정한 한국 영화의 7대 포용 지표인 ‘성별’ ‘인종’ ‘연령’ ‘지역’ ‘계급’ ‘장애’ ‘성 정체성’을 기준으로 선정한 6편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든든 5주년 보고회 ‘미투 운동 이후 5년’ 등의 포럼을 연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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