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은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려 하네요” 주디스 버틀러 인터뷰

임아영 기자 2023. 8. 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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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무부 장관은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려고 하네요.”

세계 최하위인 합계출산율 0.78명은 한국이 직면한 ‘재생산(임신·출산·양육) 위기’를 보여주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상가족’에 대한 압력이 강력한 사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단위’만 ‘가족’으로 인정한 ‘건강가정기본법’을 정비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도록 권고했다. 18년이 지났음에도 건강가정기본법은 그대로이고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은 두 성인을 ‘가족관계’로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동반자법안’은 입법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동성혼 허용 문제 등을 들어 생활동반자법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주디스 버틀러 UC버클리대 비교문학과 석좌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이 발언에 대해 묻자 한국 정부가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려 한다”고 논평했다.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란 낙관이 깔린 답변이었다.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 대표 철학자인 버틀러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버틀러는 1990년 젠더 수행성 이론을 발전시킨 <젠더 트러블>을 발표하며 페미니즘 담론을 뒤흔들었고 퀴어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혐오발언>, <위태로운 삶>, <권력의 정신적 삶>,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등 많은 책이 번역돼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영향력 있는 학자다.

지난 6월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위한 제언을 담은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창비) 출간을 앞두고 학회 참석차 방한하려 했던 버틀러는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오지 못했다. 버틀러에게 한국 사회 현안, 젠더 이분법에 도전한 <젠더 트러블>, 팬데믹이 노출한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버틀러의 답변을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주디스 버틀러. ⓒDontrworry
“레즈비언 임신 ‘당황’?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Q.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4년 전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에서 대체입법 논의는 공전되고 있다. 유산유도제 ‘미프진’의 성분인 미페프리스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약물임에도 국내 도입이 무산됐다. 임신중지권에 대해 한국은 걸음마 수준이라면 미국은 나아갔다가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모두 모두 여성의 몸, 임신한 사람의 몸에 대한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출산은 권리이자 자율성의 표현이어야 한다. 임신중지에 대한 반대는 국가의 힘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 형태도 강화한다.

Q. 한국의 보수 세력은 젠더가 ‘트러블’이 되며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를 분열한다고 비난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한국에선 먼 일로 보인다.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국가의 질서를 옹호하는 것인지 자연의 질서를 옹호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자연은 다양성을 허용하며, 우리 모두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긍정해야 한다.(※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동성애 등을 반대하는 이유로 ‘자연의 질서’를 대지만 실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질서를 옹호한다는 의미다.)

Q. 서울시는 7월 서울퀴어축제에서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정치 세력이 차별을 용인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온라인이나 공공장소에서 시위를 벌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사를 분산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활동가들은 튀르키예의 활동가들과 연락해 좋은 저항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2000년대 초반에는 성소수자 차별이 비인간적이라고 말하던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동성애 반대’를 정치 프레임으로 활용하며 “성소수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표하고 있다.)

Q. 한국 국적의 레즈비언 김규진씨는 시험관 시술을 받아 출산을 앞두고 있다. 한국 병원에선 법적인 부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는 벨기에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그는 논란이 될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 동성 커플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고 한다. 레즈비언의 임신에 당황하는 한국인들에게, 또 김규진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김규진씨의 바람대로 살아가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 아마도 그의 결정에 ‘당황’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의 용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가정이 있고 많은 종류의 부모가 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다. 좋은 부모는 이성애 결혼 안에서도, 밖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결혼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다. 재생산으로부터 성별을, 이성애 결혼으로부터 재생산을, 이성 결혼이든 동성 결혼이든 결혼 제도로부터 좋은 양육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Q. 당신은 같은 대학 동료인 웬디 브라운과 가족으로 살고 있다. 아들 이삭 버틀러-브라운이 어릴 때 “여자 둘이 부부인 우리 가족이 이상하지 않냐”라는 질문에 “그건 저에게 이상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고요. 진짜 어려운 건 집안에 두 명의 학자가 있다는 거예요”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인상깊었다.

-그는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Q. 당신이 언급한 ‘다양성을 품은 자유’는 추상적인 표현이어서 현실에서 더 구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추상적이지 않다. 만약 보수적인 부모에게 퀴어나 트랜스젠더 자녀가 있다면 그들은 간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낙인을 찍고 내쫓을 것인가. 기독교의 사랑은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폭력이나 배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 숨 쉬고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남성을 이기는 세레나 윌리엄스, 어떻게 생각하는가”

2020 도쿄 올림픽 역도 경기에 출전한 뉴질랜드 여자 역도 대표팀 선수, 로렐 허버드. 그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2012년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기준(※대회 직전 12개월 동안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혈액 1리터당 10나노몰 이하여야 한다)을 맞춰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메달 획득엔 실패한다. 반면 미국 수영선수 리아 토마스는 성확정 후 2021년 전미대학체육협회가 주관한 대회 여성부에 참여해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이들의 출전은 스포츠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도 성확정 수술을 한 나화린씨가 지난 6월 강원도민체전 사이클 부문 2관왕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가 여성 종목으로 나와서 우승한 경우는 최초다. 나씨는 키 180cm, 몸무게 72kg, 골격근량 32.7kg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확정 수술을 했다. 그는 “논란이 되고 싶어서” 출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남성 축구대표팀’과 ‘여성 축구대표팀’처럼 스포츠는 다른 분야와 달리 생물학적 성(性)으로 구분돼 있다. 트랜스젠더는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가 신체적 이점을 가지고 스포츠 공정성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과 트랜스젠더의 신체적 이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가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은 대치 중이다. 성확정 이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남성일 때에 비해 근육과 골밀도에 영향을 미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 결과가 많지 않다. 여성의 근력의 차이는 다양한데 차이를 고려한 논의가 원천 차단되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도 있다.

Q. 3월 세계육상연맹은 성전환자(성확정자) 여자부 출전을 금지했다. 국제수영연맹(FINA)은 성전환자 중 12세 전 수술받은 때에만 여자부에 나서도록 규정을 고치면서 사실상 성전환자의 출전을 금지했다. 당신은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현재 협회마다 기준이 다르고 트랜스젠더가 여성으로 출전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없다. IOC는 2021년 트랜스젠더 여성과 인터섹스(intersex·간성) 여성에게 12개월 동안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리터랑 10 나노몰 미만으로 낮추도록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당시 올림픽위원회는 여성과 남성 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겹칠 수 있고 많은 여성들이 이미 남성들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2015년에는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리터당 10 나노몰이 가장 낮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엘리트 스포츠를 하는 남성의 경우에도 리터당 7 나노몰까지 낮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IOC 의료·과학 책임자인 리처드 버짓 박사는 “과학은 발전해 왔다”고 했는데 이는 스포츠 수행 능력은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지역·종목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남성 사춘기라는 요인은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될 순 있지만 유일하거나 결정적인 요소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호르몬 구성으로 인해 경기장에서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환경과 호르몬의 상호작용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남성 사춘기를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훌륭한 운동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최초의 성확정(성전환) 사이클 선수 나화린씨가 강원 철원군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Q. 나화린씨는 해외 성확정 선수들이 여성부로 출전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걸 직접 출전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스포츠 대회 부문을 ‘남성부’ ‘여성부’ 그리고 ‘성전환부’로 나누는 것이 공정하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전성기 시절 세레나 윌리엄스는 테니스 서킷에서 대부분의 남성을 이길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트랜스젠더가 여성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 쪽에선 대회 부문을 나누자는 주장에 대해 인종 차별이 있었던 미국을 예로 든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에선 흑인과 라틴계로 구성된 별도 리그가 있었다. 이렇게 다수 집단에서 소수자를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인구가 1% 미만인데 단독 리그를 구성할 수 있느냐는 현실론도 있다.

최초의 공개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는 책 <모두의 운동장>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들은 계속 ‘너희들끼리만 있어라’라는 요구를 받는다”며 “독립 리그도 그런 의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거칠게 표현하면 ‘치워 버리는’ 느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디스 버틀러. ⓒDontrworry
“아무도 증오에 홀로 맞서 싸울 수 없다”

1990년 출간된 <젠더 트러블>은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구분을 허물어 기존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킨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이다. 버틀러는 책에서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섹스’와 문화적으로 구성된 ‘젠더’라는 구분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구분이 섹스가 젠더의 근본 바탕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섹스 또한 젠더처럼 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여성성을 강조하면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은 해체할 수 없기에 버틀러에게 젠더는 ‘무한히 변화하여 자유롭게 떠도는 인공물’이고 성·계급·인종·민족·지역이 뒤얽힌 개념이다.

버틀러에게 젠더는 ‘수행(performance)’의 개념이며 반복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의 해체를 시도한다. 버틀러가 강조하는 것은 성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주체다. 그의 이론은 자연스럽게 퀴어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버틀러는 성소수자 권리 운동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버틀러의 책 <젠더 트러블>

Q. <젠더 트러블>이 나온지 33년이 됐다. 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얼마나 이루었는가?

-책에는 책만의 삶이 있다.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가 책을 쓸 때 의도했던 것들은 책이 수용되는 과정과 번역 과정에서 바뀌었다. 확실한 건, 젠더의 자유를 위한 주장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젠더를 좁은 의미로 생각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약이 되고 고통을 줄 수 있다.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젠더에 대해 글을 쓸 때 얼마나 자주 이성애를 가정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랐다. 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젠더 규범을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길 바랐다.

Q. 젠더가 반복된 수행(performance)의 결과라면 생물학적 차이는 왜 있는 것이냐고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한다.

-생물학은 성별의 모든 상황에서 분명히 하나의 요소다. 저는 생물학과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물학에 의해서도, 문화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 그 둘이 상호작용하는 현장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성별은 부과된 것이기도 하고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수행성은 우리가 사회적 규범을 구체화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생물학은 그 구체화의 일부이지만, 생물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생물학, 유전학, 역사, 문화가 역동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는 역사적 세계 안에, 우리의 행동 안에 있다.

Q. 최근 미국 워싱턴대 카라 월-셰플러(Cara Wall-Scheffler) 교수 연구진은 지난 150년 동안 전세계 수렵채집사회 1400여개를 조사했다. 사냥에 대한 기록은 63곳에 나왔는데 그중 50곳(79%)에서 여성이 사냥하는 모습이 묘사된 것을 확인했다. 흔히 남성이 사냥에 나가고 여성은 과일을 채집하는 성별 분업 고정관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수행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수행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제시한 예시가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종종 성별과 성적 차이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편견은 일부 과학 및 인류학 연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학자들이 연구하는 가설에서 편견이나 환상을 식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근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우리의 기본 가정에 도전하는 증거를 놓칠 수 있다. 사냥하는 사람과 채집하는 사람이라는 틀에 의존해서는 디지털 유목민과 시간강사들에게 성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Q. 당신은 젠더의 자유가 의미하는 바가 맥락에 따라 다르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말했다. 비영어권에 있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을까.

-성별과 섹슈얼리티, 개성과 구체화, 평등과 같은 표현은 다국어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영어가 전세계에 대해 일반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실수인데다, 문화제국주의의 한 형태다. 젠더가 중요하다는 사고를 위한 프레임워크(틀)로서 번역은 매우 장려되어야 한다.

Q. 나와 당신은 서로 다른 언어로 젠더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 둘다 상대방 언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울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

Q. 당신은 “페미니스트라면 ‘젠더’에 의해 누군가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해야 한다”며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페미니즘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아마도 페미니스트들은 그 양면성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와 파시즘이 여성, 트랜스젠더, 게이와 레즈비언, 이주민, 소수자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시기에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반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Q. 6월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출간을 앞두고 한국에 오려다가 오지 못했다. 당시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당신이 오는 걸 반대했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하는 등 백래시 현상, 혐오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여성과 소수자들은 이런 움직임에 따른 무력감을 토로한다.

-지지를 위한 지역 네트워크와 연대를 위한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모두를 구축해야 한다. 아무도 무지와 증오에 홀로 맞서 싸울 수 없다.

주디스 버틀러. ⓒDontrworry
“왜 권력은 사람보다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가”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에서 버틀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비극을 진단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개발도상국, 유색인종, 저소득층 등 취약 집단을 가장 먼저 공격하면서 세계의 불공정성을 폭력적으로 드러냈다.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는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할 여력이 있는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 특히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극심했다. 미국에서는 백인 대비 유색인종의 감염 확률은 3배, 사망 확률은 2배라는 통계가 집계됐다. 버틀러는 막스 셸러를 인용해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란, 대체 어떤 세계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버틀러의 책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바이러스는 ‘경제우선주의’를 말하는 정치권력의 폭력성도 드러냈다. 트럼프 정권은 “그냥 바이러스를 빨리 돌게 하라”고 했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취약계층이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포즈를 보였다. 완전한 면역이 불가능한데도 많은 정부들은 방역 조치를 완화해 경제를 활성화하려 했다. 버틀러는 이러한 ‘경제 우선주의’를 어느 정도의 인구는 희생 가능하고,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발상에서 나온 폭력적인 조치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을 아실 음벰베를 인용하여 ‘죽음의 정치’라고 표현한다.

버틀러는 애도가 어떻게 차별적인지도 분석한다. 미국 시민이며 백인이고 재산이 있고 기혼인 이들의 죽음은 미등록 이주자이며 유색인종이고 가난하고 퀴어인 이들의 죽음보다 더 슬프게 애도된다. 전자의 죽음은 신문의 부고란에 올라오고 후자의 죽음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책과 삶] 팬데믹이 보여준 불평등…팬데믹에서 연대 가능성을 찾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06092043005

Q. 바이러스는 취약집단을 가장 먼저 공격했다. 어떤 장면이 기억나는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노동자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같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집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 심각한 불평등은 지역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였다.

Q. 어떤 죽음은 애도 가능하고 어떤 죽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팬데믹 상황은 새롭고 대안적인 공동체를 실험할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우리의 거리에는 도움이 필요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 “집으로 피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형성해야 했다. 종종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일부가 아닌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우리가 공유했던 공통적인 취약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버틀러는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 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혐오 범죄가 폭증한 것에 대해서는 책에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옮긴이 김응산 워싱턴대 아시아언어문학과 교수는 “팬데믹 상황 하에서 미국 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혐오 범죄가 폭증한 것에 대해 버틀러가 이 책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뷰 답변에서 버틀러는 코로나 이후 미국 정치세력이 반아시아 혐오를 조성하려고 했고 참을 수 없는 형태의 인종차별을 낳았다며 정면 비판했다.

Q. 팬데믹 이후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심화됐다. 이를 책에 언급하지 않았는데 중국이 언급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나.

-거론했다(버틀러는 본문에 ‘중국’을, 각주에 ‘중국 바이러스(the China virus)’를 언급한다). 그 바이러스는 처음에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렸고 트럼프는 이를 통해 반아시아 혐오를 조성하려고 했다. 그는 중국이 다른 나라에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때로는 고의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암시했다. 아시아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보균자라는 공포는 비이성적인 믿음이 되어 참을 수 없는 형태의 인종차별을 낳았다.

국경과 면역체계를 넘나들며 전파되는 바이러스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버틀러는 자신의 ‘상호의존성’ 개념과 메를로퐁티의 ‘상호 엮임’ 개념을 연결지어 이 행성에 함께 사는 유기체로서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절망적이지만 불평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팬데믹 상황은 대안적인 공동체를 실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버틀러는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미국의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Ni Una Menos·아르헨티나의 여성 혐오 범죄 반대 운동) 등 비폭력적인 저항이 희망의 씨앗”으로 “연대의 네트워크는 결코 한번에 이루어질 수 없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만 하기에 (…) 모든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한다.

Q. 그럼에도 팬데믹 시기 인간에게 상호의존성이라는 희망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우리가 온라인에서 함께 노래할 때, 온라인에서 함께 애도할 때,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좀더 큰 정의와 평등을 외쳤을 때 그랬다. 비록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멀리 떨어져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모였을 때 우리는 서로를 배려했고 지금도 그 배려가 사회를 다시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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