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깼다···미국 청소년들 기후 소송 ‘역사적 첫 승리’
몬태나주 법원, 소송 제기 3년 만에 원고 승소 판결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 행동 촉구하는 소송 물결 전망
미국의 청소년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리하며 헌법상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인정받았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들의 기후 소송이 이어지는 가운데, 향후 이와 유사한 기후변화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14일(현지시간) 주 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화석연료 정책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며 청소년들이 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몬태나 주에서 화석연료 정책을 승인할 때 기후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NYT는 “앞으로 주 정부가 관련 프로젝트를 승인할 때 잠재적인 기후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020년 소송 당시 만 5세에서 18세까지 어린이 및 청소년으로 구성된 원고 16명은 주 정부가 석탄 및 천연가스 생산과 같은 프로젝트를 허용함으로써 기후 위기를 악화시켰다며 주를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주 헌법에 “주와 개인은 미래 세대를 위해 몬태나의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유지·개선해야 한다”고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 정부가 화석 연료를 지원하면서 이 책무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제기한 청소년들은 재판에서 기후변화가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원고 중 한명인 리키 헬드는 “주 동부에 있는 가족 목장이 가뭄과 산불, 폭염과 홍수 등 기상 이변으로 위협을 받았다”며 “가뭄으로 인해 목장의 소들이 비쩍 마르거나 죽었고, 산불로 인해 하늘에서 재가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기후 변화가 세계적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몬태나주도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천식을 앓고 있다는 또 다른 원고는 “산불 연기가 극심한 기간 동안 집 안에 고립돼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소송 제기 3년여 만에 재판부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건의 담당 캐시 시엘리 판사는 “주 정부의 지속적인 화석 연료 개발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주 헌법의 조항을 위반했다”며 “주의 온실가스 배출이 어린 원고들에게 해를 끼치는 기후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당한 요인’으로 입증됐다”고 판시했다.
몬태나주는 미국 내 석탄, 석유 및 가스의 주요 생산지로 연료 운송에 필요한 파이프라인 및 기타 기반 시설을 대거 갖추고 있다. 몬태나주 법무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 정부 측은 그동안 “몬태나주의 탄소 배출량은 극히 적고, 기후 변화는 세계적 문제로 몬태나주의 역할은 미미하다”며 소송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동안 미국의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됐으나, 실제 재판까지 진행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신들은 이번 판결이 미래 세대들의 기후변화 관련 ‘역사적 승리’라며, 다른 기후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리처드 라자러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판결에 대해 “미국 법원이 기후변화에 근거한 헌법상의 권리를 주 정부가 침해했다고 판결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원고들의 명백하고 획기적인 승리”라고 평했다.
하지만 당장 주 정책을 변화시키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나왔다. AP통신은 주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은 주 의회에 달려있는데, 공화당이 몬태나주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 화석연료 정책에 즉각적인 변화를 줄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송에 참여한 클레어 블라스는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며 “몬태나주 의원들이 주 헌법을 존중하고 법원의 결정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BBC는 “대법원까지 판결이 확정되면 주 정부와 의회는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화석연료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환경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소송 물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예측했다. 컬럼비아대 로스쿨의 기후변화법센터 소장인 마이클 제라드는 “기후 변화에 대해 법원이 내린 가장 강력한 결정”이라며 “이번 결과가 비슷한 헌법 조항을 가진 주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송을 지원한 비영리단체 ‘우리 아이들의 신뢰’는 “오늘 몬태나주 판결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 혼란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젊은 세대의 노력에 전환점을 마련한 획기적인 판결”이라며 “이런 판결이 앞으로도 또 나올 것”이라고 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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