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만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추진 한동훈 법무부
사형제 위헌 여부 결정 이후 방법 찾아야”
전문가들 “20년 사형제 논의 후퇴” 비판
흉악범죄 억지력 모호…엄벌주의 확대 우려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두고 전문가들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잇따른 흉악범죄로 시민 불안이 커지자 내놓은 대책이지만 범죄 예방 효과는 불분명하고 엄벌주의 경향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사형제 폐지와 맞물려 거론되어 온 맥락까지 고려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논의를 갑작스럽게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무부는 지난 14일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법원이 무기형을 선고할 때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정하도록 했다. 현행법은 종신형을 확정받더라도 20년 복역 시 가석방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법무부는 1997년 이후 현재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흉악범죄자에 대한 형 집행 공백이 발생했다고 법 개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헌재 결정 후 방법 찾아야 한다더니…보름 뒤 입법예고?
이번 개정안은 지난달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회에서 정말 용납할 수 없는 괴물의 경우 영원히 격리하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그 결정 이후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힌 뒤 약 보름 만에 입법예고됐다. 현재 헌재는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고, 피청구인인 법무부는 사형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것은 사형제 유지를 전제로 무기형과 사형 사이 한 단계 형벌을 추가로 만드는 셈이어서 종전 논의를 도리어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은 물론 상대적 종신형까지 사형 폐지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는 것이다.
16대 국회에선 사형을 폐지하면서 ‘최소한 15년까지는 가석방이나 사면 등을 금지하는 무기형’(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법안이 2001년 발의됐다. 17대 국회에선 과거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유인태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04년 가석방 없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대체 입법으로 하는 사형제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재적 과반인 여야 의원 157명이 서명해 통과 가능성이 컸으나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등 잔혹 범죄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자 논의가 흐지부지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형제 폐지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된 17대 국회 회의록(2005년 2월18일)을 보면 유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김승규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반드시 인간적·인도적이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한 대안이냐 하는 점에 의문이 있다”고 했다. 또 무기수 다수는 감형을 바라보고 수형생활에 적응하는데 이런 효과마저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위헌성 지적한 헌재…“위험한 발상” 전문가 우려도
헌법재판소는 두 번째로 사형제에 합헌 결정하면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위헌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헌재는 “사형에 비하면 인도적이라 할 수 있으나 절대적 종신형 역시 자연사할 때까지 수용자를 구금한다는 점에서 사형에 못지않은 형벌”이라며 “수형자와 공동체 연대성을 영원히 단절시킨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지난해 7월 세 번째로 사형제의 위헌성을 따지는 헌법소원 심판 사건의 공개 변론 때도 청구인 등에게 “사형제가 폐지되는 경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대체형벌이 될 수 있나”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한다고 볼 수 있나” 등 질문을 던졌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는 15일 “법무부는 여태까지 논의와 달리 사형은 논외로 하고 일단 형벌 하나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엄벌주의는 처음엔 살인 같은 흉악범죄에만 적용되겠지만, 나중엔 일반 범죄까지 확대될 수 있어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대부분의 주에서 마약범죄를 포함한 비살인 범죄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한다. 2022년 논문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의 대안으로 절대적 종신형 제도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유정화·이형석)을 보면 미국 8개 주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수형자 중 30%가 비살인 범죄자에 해당한다. 소년범의 비살인 범죄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해 연방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은 사형제 폐지 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했다가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지하는 길을 걸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78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자도 근본적으로 다시 자유를 찾을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특별사면 가능성 하나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선언했다. 유럽인권재판소도 2013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유럽인권보호협약에 어긋난다며 여러 나라에 개선을 권고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범죄 예방 효과를 놓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중 어떤 게 더 중한 형벌인지도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데다, 새 형벌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도 예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형제가 있어도 살인 범죄가 벌어지는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한다고 해서 흉악범죄에 대한 억지력이 커지겠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기징역의 가석방 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사형제도 폐지 및 대체형벌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인권 관점에서 보면 사형의 대체형벌로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가석방을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감 기간을 현행 유기징역의 상한선(원칙적으로 30년·가중사유 있는 경우 50년)으로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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