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빛수원] 뼈 아픈 ‘위안부’ 피해 역사…평화·인권 위한 힘찬 날갯짓

김기현 기자 2023. 8. 15. 13: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이 지난 13일 장안공원에서 열린 제11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수원특례시 제공

 

광복절보다 하루 앞선 8월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날(1991년 8월14일)이기도 하다.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수원특례시도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남다른 노력을 펼쳐왔다. 수원에서 활동했던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평화인권활동가 고(故) 용담 안점순 할머니(1928~2018)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을 기록한 공간까지 마련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발자취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작품이 걸려 있다. 수원특례시 제공

■ 평화의 나비가 된 안점순 할머니

“제발 싸우지 말고들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딛고 평화와 인권을 설파한 안 할머니가 남긴 말이다. 수원시민이었던 안 할머니는 나비 같은 삶을 살았다. 일본군의 끔찍한 만행으로 유년시절을 짓밟힌 뒤 오랫동안 누에고치처럼 움츠려 지냈으나 말년에는 고통스러운 피해를 드러내며 역사를 증언하는 아름다운 날갯짓을 시작했다.

1928년 서울 마포구 복사골에서 태어난 안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의 효심 깊은 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밖으로 나간 14세 순이는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올라탔다. 끝내 울며 매달리던 어머니의 손을 놓쳐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간 순이는 일본군으로부터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지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년 동안 이어진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순이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나이는 19세.

그러나 나머지 삶 역시 순탄치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난생활을 하며 생계를 위한 빨래와 식당일 등을 전전했다. 남자가 싫어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후 환갑이 넘어 수원에 정착한 안 할머니는 조카의 도움으로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하긴 했으나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지냈다.

그런 그의 날갯짓은 75세였던 2002년부터 시작됐다. 피해자 인권캠프에서 피해자들과 아픔을 나눈 그는 수요집회 등에 참석하며 다시는 같은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국제기구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국제심포지엄에서 증언도 하며 활발한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다.

안 할머니의 노력에 감명 받은 수원시민들은 수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3월 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소녀상이 건립됐다. 이를 계기로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됐다. 안 할머니와 시, 수원평화나비는 피해자 인권회복과 평화운동을 위해 발을 맞추며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8년 3월30일 안점순 할머니는 고단했지만, 아름다웠던 삶을 마감했다.

김향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가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서 안 할머니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특례시 제공

■ 수원평화나비, 기억하는 시민이 만드는 미래

수원평화나비는 안 할머니 생전에 그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안 할머니가 “수원평화나비가 내 매니저야”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가 영면한 뒤에도 수원평화나비는 활발한 활동으로 안 할머니를 기억하는 일을 쉬지 않고 있다. 지자체 단위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수원수요문화제와 평화인권교육이 핵심이다.

수원수요문화제는 수원평화나비 활동의 중심이자 살아있는 역사다. 수요문화제는 2017년 5월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매월 첫 번째 수요일 정오에 열렸다. 지난 8월2일 76회를 기록했는데, 지역 단위 수요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수원이 유일하다. 주로 수원평화나비와 경기평화교육센터, 수원YWCA, 수원참교육학부모회, 수원여성회, 수원시의사회, 수원청소년성인권센터, 지역 내 교회 등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돌아가며 수요집회를 주관한다.

수원평화나비는 수원시민들에게 위안부 역사의 아픔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평화인권교육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18년부터 자체적으로 인권강사 양성과정 프로젝트를 시작, 위안부 피해자 인권에 특화된 강사를 양성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과 전쟁, 평화 등이 주 내용이다.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상징과 의미부터 피해자들의 이야기 등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평화나비는 청소년평화나비 활동 지원은 물론, 안 할머니를 비롯한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수원시민이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관람하고 있다. 수원특례시 제공

■ 수원이 기록한 역사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시는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을 딴 추모공간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안 할머니의 숭고한 발자취를 기록함으로써 후손들이 되새겨야 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오래도록 전수하기 위해서다.

기억의 방은 수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 안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 3년 만인 지난 2021년 8월 문을 열었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문화관 1층 미술실로 활용하던 48㎡ 남짓 공간에 안 할머니의 삶이 담겼다. 규모는 협소하지만, 품은 이야기는 광활하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순이의 이야기와 수십년 만에 세상에 나와 평화를 부르짖은 평화운동가 안점순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기억의 방 입구에선 안 할머니의 흉상(기림비)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소녀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안 할머니의 초상화와 생전에 사용하던 지팡이와 옷가지, 마작 등의 물건도 전시돼 있다.

왼쪽 벽면에는 안 할머니의 사진과 증언을 통해 기록된 생애가 짧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벽 끝에 놓여 있는 쌀자루 저울에 올라서면 프로젝터에서 영상이 시작된다. 쌀집 앞에서 영문도 모르고 강제로 연행된 14세 순이의 비극이 시작된 것을 재연하는 극적 장치다. 오른쪽 벽에는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순이의 경로가 표시된 지도도 마련됐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와 합당한 배상”이라며 “살아 계신 할머니들을 위해 하루빨리 역사가 바로 잡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fact@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