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기행에 900개 주석 단 이수은 작가 “나만의 이탈리아’ 발견하는 여정에 도움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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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은 고대 이집트부터 18세기까지 2500여년, 회화·건축은 르네상스부터 바로크까지 300여년의 시간을 아우른다.
"문학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읽어갈 수 있지만 '이탈리아 기행'은 편지와 일기로 엮인 논픽션이고 18세기 풍속사의 귀한 자료라 배경지식 없이는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울 거라 봤어요. 주석을 작품 몰입을 방해하는 사족으로 여기는 독자들도 있지만 만약 내가 250여년 전 기록문학을 부가 지식 없이 읽어야 한다면 스스로의 이해나 판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새롭게 알아가며 읽는다면 더 풍요로운 시선으로 음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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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은 고대 이집트부터 18세기까지 2500여년, 회화·건축은 르네상스부터 바로크까지 300여년의 시간을 아우른다. 등장 인물만 400명이다.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얘기다. 이 책이 최근 900개의 주석본을 달고 새로 펴나왔다.
정교한 주석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여정과 내면의 성장, 작품세계, 18세기 풍속사에 새롭게 눈 뜨게 한 이는 이수은(사진) 편집자 겸 작가다. 당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리뉴얼을 위해 책 편집을 맡은 그는 불분명한 지명·인물 정보 등이 나올 때마다 ‘팩트체크’에 나섰다.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이탈리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를 만들겠다는 호의로 시작된 작업이 아예 편집자 주석본으로 탄생했다.
그는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등으로 고전의 현대적 가치를 신선한 감각으로 일깨운 작가이기도 하다. 왜 주석본이 절실하다고 판단했을까.
“문학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읽어갈 수 있지만 ‘이탈리아 기행’은 편지와 일기로 엮인 논픽션이고 18세기 풍속사의 귀한 자료라 배경지식 없이는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울 거라 봤어요. 주석을 작품 몰입을 방해하는 사족으로 여기는 독자들도 있지만 만약 내가 250여년 전 기록문학을 부가 지식 없이 읽어야 한다면 스스로의 이해나 판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새롭게 알아가며 읽는다면 더 풍요로운 시선으로 음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5월부터 올 6월까지 1년여간 주석 작업에 몰두했다. 많게는 하루 18시간씩 ‘검색과의 싸움’에 매달렸다. 도서관·박물관 홈페이지, 학회 논문, 구글 맵 등을 두루 뒤진 그는 “원문의 고유명사를 하나씩 점검하며 삽시간에 거대한 개미지옥으로 빨려드는 맥없는 곤충 신세가 됐다”는 말로 작업의 방대함을 짐작케 했다.
‘맥락의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해설’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이렇게 단 주석은 200자 원고지 800~900매에 이르렀다. 작가는 “작업을 하다 보니 주석이 1000개를 넘길 정도로, 1년 더 하라면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충해야 할 설명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괴테가 언급한 실존 인물 400여명 가운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각양각색 인물들을 소개한 주석은 극적인 이력, 당대 사회·문화와 맞물려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구글 위성 지도를 숱하게 살펴 옛 지명이 현재 어디인지 밝히며 펼쳐놓은 지명의 유래나 변천사도 정밀하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괴테의 작품들도 속속들이 주석으로 안내해 독자들은 ‘파우스트’가 어떻게 지금의 1,2부로 구상됐는지 등 대문호의 주요작들이 이 여행과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 작가는 “현대인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괴테의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이 작품”이라고 짚었다. “‘파우스트’는 웅대한 규모 속 낭만주의적 감정 폭발이, 다른 희곡들은 장광설이 많아 독자들이 읽기 어려운 반면 ‘이탈리아 기행’은 설명을 조금만 덧대면 ‘요즘 사람’ 같은 괴테와 교감할 수 있는 요소가 즐비해요. 독자들이 자신만의 이탈리아를 발견하며 이 책 내용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짓게 된다면 기쁠 겁니다.”
정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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