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보닛 위에서 두발로 ‘쾅쾅’…헌재 “기소유예 처분 취소”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3. 8. 1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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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전경 [이승환 기자]
헌법재판소가 모르는 사람의 자동차 보닛(엔진 덮개)을 발로 밟아 찌그러뜨린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0일 자폐성 장애인 A씨(27)가 낸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서울남부지검의 기소유예 처분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취소했다.

장애인인 A씨가 사건 당시 차를 훼손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그는 2020년 7월 길을 걷다가 서울의 한 아파트 앞에 주차된 차량을 보고 보닛 위에 올라가 오른발로 두차례 차량을 밟았다. 차 주인은 다음날 오전 찌그러진 차량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A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폐성장애인 1급인 그는 관련 진단기준에 따르면 ‘주위의 전적인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A씨 어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최근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A씨가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행동을 한 건 처음”이라며 “그 이유도 전혀 모르겠다”고 대신 진술했다. 조사는 약 13분 만에 끝났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의 재물손괴 혐의를 인정해 같은해 8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피의자의 연령 및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 처벌은 면할 수 있지만, 죄는 성립된다. 따라서 민사 책임은 여전히 져야 한다. 수사경력 자료도 5∼10년 동안 보존된다.

그러나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사건 당시 A씨가 재물손괴의 고의와 책임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재물손괴죄가 인정되려면 A씨가 당시 이 차량을 훼손시키겠다는 인식을 미필적으로나마 가지고,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의사를 결정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면서 “검사는 A씨의 자폐성 장애의 정도 등을 확인하지 않는 등 수사가 미진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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