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고전은 힘이 세다"... 2023, 다시 온 ‘배비장’ 혹은 ‘애랑’
‘이 방에 들어가면 어떤 향기가 날까?’ 공연
구비문학 ‘배비장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국 춤·폴리사운드·모노드라마 융합 ‘총체극’
“이번에도 육지에서 못된 심보의 관료가 온다면 나 애랑이가 책임지고 정신머리를 싹 고쳐버리겠어! 팔도에 이름난 춤꾼들은 다 제주로 모이라 전하자! 그 황진이! 춘향이도 모두!”
제주에 새로 부임한 배비장을 위해 애랑이를 중심으로 전국의 전설적인 예기(藝妓)들이 한데 모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아는 이들이 각 지역의 춤을 선보일 준비를 한다는 소문에 섬이 들썩입니다.
조선시대 ‘배비장’이 2023년 ‘공무원 배 아무개 씨’로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섰습니다. 현대 지성인의 지혜롭게 변화된 모습을 보일지, 과거 ‘배비장’ 행보마냥 우스꽝스런 최후를 맞는 역사가 반복될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원래 판소리 열두 마당에 속한 ‘배비장 타령’을 소설화한 작자미상의 조선 후기 고전소설 ‘배비장전’이 출발점입니다.
따져보면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를 판소리 5바탕으로 전승될 뿐 나머지 ‘배비장전’을 비롯해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장끼타령’, ‘숙영낭자전’, ‘강릉매화타령’, ‘옹고집타령’은 5바탕에서도 빠져 열두 마당을 이룹니다. 5바탕보다 전승 우선순위에서도 밀렸는데도 ‘배비장전’은 여러 장르를 통해 대중들을 만났습니다.
사실 소설에서도 판소리 원형을 유추할 여러 장면이나 묘사가 적잖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음악적 구성을 통해 재연된다는 것만 봐도 태생적으로 뮤지컬 등 대중문화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고전문학으로 바라볼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
양반과 기생이란 어찌보면 대치되는 등장인물은 물론,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 내용 자체가 당시 위선적인 양반문화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적절하게 조화돼 있어 연극이나 마당놀이, 창극, 뮤지컬에 발레,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문화의 영역을 오갔습니다.
그만큼 주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 그때그때 감성에 녹아들어 갈 수 있도록 각색이 가능한 고전이 지닌 천변만화의 매력을 선보여 왔습니다.
이번엔 2023년, 현 시점의 제주란 일상으로 서사 무대를 옮기고 눈높이를 맞춘 ‘배비장전’입니다. 새로운 각색과 접근이 가져올 변화만으로도 궁금한데 더해 총체적 예술을 공언했습니다.
제주예술단체 ‘HOHO PLUS’가 제주 구비문학 ‘배비장전’을 재해석해 한국 춤과 폴리사운드, 모노드라마를 결합한 ‘총체적인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신(新) 배비장전, 이 방에 들어가면 어떤 향기가 날까?‘입니다.
당초 영상 속에서 더 어울리는 소리를 만드는 시도인 ‘폴리 사운드(Foley Sound)’의 영역을 무대로 확장하는데서 극의 생생함을 더하고, ‘모노 드라마(Monodrama)’를 통한 인물의 개개인의 심리적 변화와 묘사에 공을 들였습니다.
시각과 청각으로 얼마나 관객의 몰입감을 더 높여줄지 기대가 모입니다. 더구나 제목 자체가 후각을 이미 무대로 이끌어내면서, 한층 공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유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HOHO PLUS’가 기획 연출·프로덕션을 총괄하고 한국 전통춤 연구회 ‘단디 춤 연구회’, 제주 연극배우 ‘양승한’이 협업해 원작을 각색했습니다. 현대의 공무원 배 아무개 씨가 과거의 제주도로 회귀하면서 이야기의 문이 열립니다.
정신애 HOHO PLUS 대표는 “잊혀지는 제주 문화와 역사를 재조명하고 케이컬처(K-culture) 뿌리인 한국 춤과 문화를 소개하는 무대”라면서 “제주가 중심이 된 공연예술 콘텐츠로 발전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습니다.
유료 공연으로 인터넷 티켓 예매나, 현장 구매도 가능합니다. 만 19세 미만 학생들은 50% 할인 금액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공연은 17일 오후 7시 30분부터 1시간 20분 동안,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 무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전통과 무용, 신화와 설화, 의복 그리고 미술 등 다양한 전통문화 요소를 융복합해 현대적인 창작물로 재탄생시키는 ‘HOHO PLUS’는, 제주에서 ‘설문대할망 신화’를 기반으로 새롭게 구성한 ‘설문대 아리랑’ 시리즈를 비롯해 ‘배비장전’과 제주도민, 이주민, 예술인, 관광객 모두가 참여하는 ‘HOHO PLUS 정원예술 축제’ 등을 기획·진행하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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