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가족드라마 《남남》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3. 8. 15. 12: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 깨고 새로운 관점 제시해 호평
‘포스트 우영우’로 주목받으며 시청률도 매회 상승세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가족드라마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실제로 가족드라마라는 장르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옛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가족드라마가 설 자리가 없다고 해서, 우리 시대에 가족이 없는 걸까. 지니TV 《남남》이 그리는 가족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ENA라는 신규 채널이 1% 시청률 내는 것도 쉽지 않던 상황에서 무려 17.5%(닐슨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후 '포스트 우영우'라 말할 만큼 시청률을 내는 후속작들이 ENA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다시 1%대로 돌아간 상황. 그래서인지 최근 방영되고 있는 《남남》의 시청률은 예사롭지 않다. 첫 회 1.2%로 시작하더니 3회 만에 2%대에 진입했고 7회를 마친 현재 4%대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물론 타 방송사의 시청률과 비교해 보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ENA 채널 사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다음으로 높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그것도 매회 상승하는 추세다. 

ⓒKT스튜디오지니 제공

가족드라마의 퇴행 되돌아 보게 만들어 

하지만 《남남》을 감히 포스트 우영우라고 말하는 건 단지 시청률 때문만이 아니다. 그건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도발적인 문제의식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영우(박은빈)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적인 변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소외시키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변했다면, 《남남》은 지금껏 클리셰에 가깝게 반복되는 가족 관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가족과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둘 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식이 남다른 작품들이라 평가할 수 있다. 

《남남》은 먼저 은미(전혜진)와 진희(수영)의 독특한 모녀 관계에서 시작한다. 첫 등장부터 해변가에서 구릿빛 남성들의 몸을 바라보며 딸에게 클럽에 가자고 말하는 엄마 은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이 욕망에 솔직한 엄마는 그래서 '엄마'라는 통상적인 역할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게다가 딸 진희는 직업이 경찰로 오히려 이런 엄마의 자유분방함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해댄다. 역시 드라마에서 늘상 봐왔던 딸의 모습에서는 벗어나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서 모녀 관계라기보다는 함께 해변가에 놀러 온 친구나 자매 같다. 

《남남》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엄마의 이미지를 깨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건, 엄마가 자위하는 걸 딸이 목격하는 장면에서다. 이 장면에서 은미는 엄마가 아니라 그저 똑같은 욕망을 가진 여성이고, 그걸 목격한 딸은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또 이를 쿨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에 은미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미정(김혜은)은 《남남》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가족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존재다. 혈연으로는 하나도 엮인 게 없는 남이지만 미정은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당하는 은미와 그의 딸 진희를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지낸다. 그래서 미정은 진희에 대해 은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저귀를 갈아가면서 키웠는데 당연하지. 너만 아니었으면 진희 걔 내 딸이야." 남보다 못한 가족이 있는 반면, 남이지만 진짜 가족 같은 이들도 있다. 혈연보다는 어떤 관계와 경험들을 공유하는가가 진짜 가족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남남》이 툭툭 건드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족과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퇴행을 반복하다 공감을 얻지 못하고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가족드라마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알다시피 가족드라마라는 장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미니시리즈가 편성된 시간대에 가족드라마는 거의 사라졌고, 저녁에 방영되던 일일드라마도 어느 순간부터 '가족 복수극'으로 변모했다. 가족드라마를 배경으로 하지만 막장에 가까운 치정과 배신, 복수가 벌어지는 자극적인 드라마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가족드라마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건 KBS 주말드라마 정도다. 그런데 KBS 주말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가족은 과연 지금의 시청자들을 공감시키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출생의 비밀 코드 하나로 수십 주를 이어갔던 《삼남매가 용감하게》에 이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진짜가 나타났다》에서도 틀에 박힌, 누가 진짜 아빠인가를 두고 벌이는 서사가 지루하게 반복된다. 시대착오라고 여겨지는 신데렐라 서사도 빠지지 않고, 여지없이 현대판 왕자님도 등장한다. 이러니 KBS 주말드라마는 현재의 가족 양태를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옛 가족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건드리는 드라마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공영방송으로서 이러한 추억과 향수가 버거운 삶에 위로가 되는 독거노인분들이나 시골의 어르신들에게 이 드라마의 효용가치는 분명할 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KBS 주말드라마라는 가족드라마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가 유지되는 건 어딘지 아쉬운 지점이 있다. 

물론 KBS 주말드라마도 《황금빛 내 인생》 같은 가족보다는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 현시대에 공감을 줬던 가족드라마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 tvN에서 방영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같은 드라마 역시 '가족 같은 타인, 타인 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 가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가뭄에 콩 나듯이 존재하는 몇몇 작품을 빼놓고 보면, 현재 그나마 방영되는 가족드라마들이 과연 지금의 달라진 가족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담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드라마 《남남》의 한 장면 ⓒKT스튜디오지니 제공

달라져도 가족은 여전하다 

《남남》은 그래서 이것이 가족드라마의 퇴행일 뿐, 시대에 따라 달라졌어도 가족은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남편 없이 모녀가 사는 싱글맘 가족인 은미와 진희가 자매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고 해서 그들이 가족이 아닌 건 아니다. 또 미정 같은 타인이지만 은미, 진희와 가족이나 다름없는 남남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건 진홍(안재욱)이라는 진희의 생물학적 아빠에 대한 관점이다. 만일 여타의 가족드라마였다면 '출생의 비밀' 코드로 질깃질깃하게 뽑아먹었을 이 관계가, 《남남》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쿨하게 그려진다. 진희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진홍이 딸에게 신경을 쓰자, 은미는 "내 딸 오빠랑 상관없다"며 선을 긋는다. 그런데 그건 뒤늦게 나타나 '아빠입네' 하는 진홍의 모습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진홍이 그런 딸에 대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과 연애하고 사랑하는 걸 원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쿨한 모습은 우리가 그간 생각해 왔던 가족에 대한 틀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남녀가 만나 먼저 사랑하고 관계를 축적해 가는 그 과정들이 우선돼야 하고, 오롯이 거기에 집중돼야 하지만 우리는 늘 그 이후의 결말로 결혼이나 가족 같은 관계를 상정하곤 했다. 그래서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의무가 오히려 개인의 사랑보다 앞서는 역전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남남》은 가족은 어떤 관계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지, 정답이거나 목적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개개인에게 집중하는 관계가 더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돼야 가족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새로운 관점은 지금의 퇴행적인 가족드라마들이 한 번쯤 숙고해 봐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