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변제, 오염수 방류 용인에도… 기시다는 ‘야스쿠니 봉납’ 계속
전몰자추도식에선 반성 없는 추도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패전일(한국의 광복절)인 15일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또다시 공물을 봉납했다. 전몰자추도식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는 추도사를 내놨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외치며 각종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나, 기시다 내각의 뻣뻣한 태도는 이어지고 있다.
교도통신 등은 이날 기시다 총리를 대신해 신사를 방문한 고쿠바 고노스케 자민당 의원(중의원)을 인용해 총리가 자민당 총재 명의로 다마구시(玉串·비쭈기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 대금을 봉납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2021년 10월 총리에 취임한 뒤 신사를 직접 참배하진 않았으나, 이날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봉납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 각료와 국회의원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행위로 해석되면서 그간 한·일 관계에 있어 갈등 요인이 돼 왔다.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약 213만3000위의 사망자들을 추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따라 처형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기시다 총리의 이날 봉납은 최근의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 속에 이뤄져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전범기업들의 책임을 사실상 면제해 준 ‘제3자 변제안’을 내놨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이같은 접근에도 일본은 과거사 문제 등에 있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사 참배의 경우, 기시다 총리는 윤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참배 없는 봉헌’을 이어온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열린 전몰자추도식에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는 모습을 보였다. ‘평화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과거 일본이 침략 전쟁이나 식민지 침탈로 아시아 여러 국가에 피해를 준 점이나 이에 대한 반성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과거 일본 총리들은 패전일에 이웃 나라가 겪은 피해와 함께 이와 관련한 반성의 뜻을 표명했으나,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재집권 이후 이런 관행이 끊겼다.
기시다 총리 이외의 다른 현직 각료들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 지난해 패전일에 이어 올해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현직 각료의 참배가 2020년 이후 4년 연속 이어진 것이다. 이밖에 자민당의 당 4역 중 한 명인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이 신사를 찾았으며, 초당파 의원 모임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도 집단 참배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주요 인사들의 신사 참배와 관련해 지난해와 동일한 성명으로 대응했다. 외교부는 성명에서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부와 의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며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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