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갇혀 있다 사살될 때까지…사순이의 서글픈 삶

김지숙 2023. 8. 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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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고령군 암사자 사살…환경청 “적법한 사육시설”
현행법 시행 이전 수입된 개체로 추정
관광농원 이전 운영자는 인근 야영장의 방문객들에게 암사자 ‘사순이’를 공개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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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북 고령군 한 관광농원에서 암사자가 탈출해 사살됐다.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인 사자가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장기간 사육됐음에도 정부는 해당 개체가 언제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관리 체계의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사자 존재 알고 있었나

15일 애니멀피플의 취재를 종합하면, 고령군 관광농원에서 키우던 암사자는 2008년 경북 봉화군에서 다른 수사자 한 마리와 함께 현재의 농장으로 옮겨졌다.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는 “해당 농원은 환경청에 2015년 전시 사육시설로 등록을 마친 곳으로 적법하게 사육을 해왔다. 법적인 사항으로 보자면 현행법에 저촉되는 사항은 없으나, 농장주의 관리 미흡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멸종위기종 사육 시설은 1년에 1회 이상 정기 점검을 나가고 있으며, 해당 시설도 지난해 9월 현장 조사와 점검을 마쳤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아침 경북 고령군 한 관광농원에서 암사자가 탈출해 1시간 10여분 만에 사살됐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나이가 20살가량으로 추정되는 암사자는 농원이나 인근 캠핑장에서 ‘사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사순이는 지난 14일 오전 관리인이 급여와 청소를 하던 중 문틈으로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경북소방본부와 경찰은 아침 7시24분 사자 탈출 신고를 받고 합동 수색 1시간여 만에 목장 인근 4~5m 지점 풀숲에서 사자를 발견해 사살했다. 마취를 통해 포획하는 방법도 있지만 경찰 등은 안전을 고려해 사살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14일 아침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한 사설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가 살았던 우리 모습. 연합뉴스

왜 민간시설에서 장기간 사육됐나

탈출 1시간 만에 총을 맞아 사망한 사순이의 소식이 전해지자 멸종위기 종인 사자가 어떻게 동물원이 아닌 민간 시설에서 장기간 사육됐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사이테스)이 정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인도 사자는 멸종위기Ⅰ등급에 해당하고 나머지 사자들은 멸종위기 Ⅱ등급으로 정해져 있어 국가 간 거래나 수입·수출이 엄격히 규제된다. 우리나라 야생생물법에서도 사이테스 종인 포유류 및 조류(앵무새 제외)는 사육이나 양도·양수 때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며 개인 사육을 금지하고 있다.

사순이는 어떻게 관광농원에서 15년 이상 사육될 수 있었을까. 대구지역환경청은 암사자가 현행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수입된 개체로 보고 있다. 사자 등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법령인 야생동식물보호법(현행 야생생물법)은 2005년 시행됐고, 야생동물의 보호·서식 환경 등을 정하는 동물원수족관법은 2017년 시행됐다. 사순이가 2005년 이전 국내에 유입되었다면 현행법의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아 지금껏 환경청의 현장 조사 외에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개체 정보나 수입 이력은 전산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아 현재 환경청이 서류를 검토 중이다.

14일 아침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한 사설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가 살았던 우리 모습. 연합뉴스

또한 현행법의 맹수 사육장은 방사장과 합해 한 마리당 14㎡(약 4평) 면적과 2.5m 높이의 펜스만 갖추면 사육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사순이의 사육장 또한 사육시설 기준에 부합해 그동안 별다른 조처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종에 따른 사육기준이 포함된 야생생물법과 동물원수족관법이 지난해 개정되었으나 법 시행은 올해 12월부터다.

사살 이전에 관리 할 수 없었나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가 정부 관리 미흡의 변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실한 체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물의 본능을 고려하지 않은 사육 시설에서 20년 넘게 사자를 길러왔으나 이를 알고도 환경부와 지역 환경청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또다시 언제 어디서든 이런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단순한 사살이 목적이 아닌 포획 방안 마련과 전국적인 야생동물 보유·실태현황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순이가 아무런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으나 급하게 사살된 점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시각도 있다. 관광농원 인근 야영장 운영자는 네이버 카페에 이전 농장주의 허락으로 암사자를 만났던 경험을 전하며 “사람들이 관리를 잘못해서 우리를 벗어나게 되고 그래서 사순이가 사살되었다는 소식이 마음이 아프다. 푸바오처럼 인기 있는 동물은 좋은 환경에서 잘 지내는데, 어느 기관 하나 돌봐주지 않고 죽은 사순이가 불쌍하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등에서도 2018년 9월 대전시 중구에 있는 동물원에서 퓨마 뽀롱이가 탈출했다 사살된 일을 언급하며 ‘평생 갇혀 살다 사살됐다’ ‘마취할 수 없었나’등의 반응이 나온다.

지난 14일 아침 경북 고령군 한 관광농원에서 암사자가 탈출해 1시간 10여분 만에 사살됐다. 사자는 탈출한 사육장에서 4~5m 숲 속에서 발견됐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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