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시행한 저출산 대책은 왜 효과 없었나
(시사저널=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기획재정부는 7월27일 202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9월초 국회에 제출되는 2024년 정부예산안과 함께 내년 이후 재정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자료로 경제 활력 제고, 민생경제 회복, 미래 대비, 납세편의 및 형평 제고 등 네 가지 키워드를 담고 있다. 논란거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봐야 하는지 살펴봤다.
3억원까지 혼인증여 공제 가능
논란거리는 미래 대비를 위한 결혼·출산·양육 지원 중 '혼인에 대한 증여재산 공제 신설'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조문을 신설해 직계존속에 한해 혼인신고일 이전 2년과 이후 2년 이내 총 4년간 최대 1억원까지 증여 추정·의제 등에 해당하는 경우 증여재산에서 공제한다는 것이다. 양가에 기존의 직계존속 공제 5000만원을 더하면 3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해지게 된다.
혼인 후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기 위해 자녀장려금 지급 대상을 현행 총소득 기준금액 4000만원 미만에서 7000만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지급액도 자녀 1인당 최대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높인다. 사용자가 지급하는 출산·양육 지원금도 손비로 인정되며, 근로자가 수령하는 출산과 6세 이하 보육수당에 대한 비과세 한도는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확대된다. 영유아 의료비에 대한 세제 지원도 강화된다. 산후조리원에 지급하는 비용은 최대 200만원까지 세액공제(공제율 15%)되는데, 총급여액 7000만원 이하인 공제 요건이 사라져 모든 근로자로 확대된다. 또한 6세 이하 부양가족 의료비에 적용되던 세액공제 한도(700만원)도 없어진다. 현재 본인이나 65세 이상 부양가족 의료비에 대해서는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요약하면, 혼인가구는 비혼가구에 비해 혼인 시 양가로부터 2억원까지 증여세가 비과세되는 재산을 지원받고, 소득 7000만원 미만 가구는 출산 시 최대 100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으며, 소득에 관계없이 산후조리원 비용의 15%는 세액공제로 돌려받는다. 또 사용자로부터 받는 출산·양육수당은 월 20만원(연 240만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비혼과 저출산이 얼마나 심각하길래 이런 정책이 나왔을까. 실상부터 살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혼인 건수는 22만 건으로 1996년 정점(43만 건) 대비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인 조혼인율의 경우 2022년 3.7건으로 1980년 정점(10.6건)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절대적으로 혼인 건수가 줄었고, 무엇보다 인구 대비 혼인율이 확 줄어들었다.
합계출산율과 출생아 수는 1971년 4.53%, 102만 명에서 2022년 0.78%, 25만 명까지 떨어졌다. 비교 기간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혼과 저출산이 경제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됐다. 그동안 이에 대한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출산 대책에 착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었다. 2006년 합계출산율 1.5명을 목표로 5년 단위의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고, 지금은 제4차 계획(2021~25년)이 시행 중이다. 원인 파악이 중요한데, 제4차 계획에서 제시된 저출산의 사회경제적 원인은 양질 일자리 제한과 교육 경쟁 심화, 높은 주택 가격, 성차별적 노동시장, 돌봄 공백 등이다. 맞는 말이지만, 저출산이 심화되기 전부터 존재하던 문제들도 있다.
한마디로, 결혼과 출산의 주체인 청년층의 경제적 좌절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주력을 형성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나 X세대의 20, 30대 때와는 다른 경제 불안이 비혼과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성장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기에 접어든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는 측면에서 대책과 시스템에 분명 문제가 있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에 걸쳐 시행된 저출산 대책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않자, 2021년 정부는 출산 장려에서 모든 세대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계층·세대 간 통합과 연대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나온 증여재산 공제도 비혼과 저출산을 세대 관점에서 접근한 조세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정책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에 빠진 일본이 시도한 정책이다. 일본은 세대 간 자금 선순환과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30세 미만 손자녀에게 교육자금 신탁 1인당 최대 1500만 엔, 18~49세 손자녀에게 결혼과 양육 지원신탁 최대 1000만 엔의 비과세 증여를 허용하고 있다. 2013년 4월과 2015년 4월에 각각 도입됐다.
일본에서는 이 세대 간 비과세 증여정책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당연히 우리와 유사한 논란, 즉 세대 간 재산 이전을 통한 경제활동 촉진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불평등의 세대 간 확산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다. 이러한 논란에도 각각 2026년과 2025년까지 특례조치가 이어질 만큼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속성이 확보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정책 모방했지만 성과는 전무
모방에 뛰어난 우리도 2017년 일본 사례를 도입하려고 시도했었다. 금융위 주도로 세대 간 재산 이전 목적이 포함된 신탁업 개선 관계부처 TF가 만들어졌고, 신탁업법 별도 제정을 추진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조세정책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신탁제도 개편이라는 좀 더 큰 틀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혼인증여 비과세 정책은 무엇보다 세대 간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증여할 수 있으면 부자고, 부자 비과세는 안 된다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청년층의 경제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세대 간 재산 이전 필요성을 공감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무엇인지, 나머지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재정정책에는 민간 소득에서 세금을 징수해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지출에 충당하는 적극적 방식과 민간 세금을 면제하거나 경감함으로써 정책 목적이 달성되도록 유도하는 소극적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비혼과 저출산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책이 전자라면, 혼인증여 비과세 정책은 후자에 해당한다. 17년 동안 효과가 없었다면, 당연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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