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헌 박상진 의사 증손 박중훈씨 "울산에도 독립기념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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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냈던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활동 관련 문서가 최근 일본에서 다수 발굴됐다.
자료 발굴에는 박 의사 증손이자 추모사업회 학술자문위원인 박중훈(69)씨가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광복회 평안도지부장 조현균 애국지사 현손)과 힘을 모았다.
-- 최근 일본에서 박 의사 등과 관련한 600장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발굴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발굴하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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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중국서도 자료 발굴 계속…첫 발견 박 의사 동생 공적도 보훈부에 신청계획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냈던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활동 관련 문서가 최근 일본에서 다수 발굴됐다.
자료 발굴에는 박 의사 증손이자 추모사업회 학술자문위원인 박중훈(69)씨가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광복회 평안도지부장 조현균 애국지사 현손)과 힘을 모았다.
박중훈씨는 14일 박상진 의사 생가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게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건 명예밖에 없지 않냐"고 말했다.
박씨는 "우리나라의 암흑의 시대를 살아왔던 선인들의 행적을 길이 나타낼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아우르는 기념관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암흑의 시대를 살아왔던 선인들의 활동을 다채로운 방법으로 기념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 의사 서훈 등급 격상에 대해서는 "지난 5월에 보훈부의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 3번째 회의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말쯤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음은 박중훈씨와의 일문일답.
-- 2008년부터 박 의사 생가 지킴이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요즘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있는지.
▲ 휴가철이기도 하고, 워낙 더우니까 방문객이 많지는 않다. 계절마다 변동이 있지만 꾸준히 찾아주시는 시민들이 많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먹고살기에 바빴는데, 이제는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체면을 찾고, 그다음이 명예다. 국민 소득 수준과 함께 역사에 대한 수준도 높아지다 보니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인식도 보편화된 것 같다.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도 많은데 상당히 반갑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역사를 체감하고 받아들인다면, 교과 과정을 통해서만 배우는 역사와는 많이 다르게 다가오지 않겠나.
-- 최근 일본에서 박 의사 등과 관련한 600장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발굴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발굴하신 건가.
▲ 각 기관에 자료 청구를 해서, 현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심사를 거쳐 자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증조부의 순국 사실을 보도한 1921년 8월 13일 매일신보의 교도소장 인터뷰 기사를 보고 추적하게 됐다. 인터뷰 내용 중에 '박상진의 사형 때문에 각의가 서너 차례 열렸다'는 내용이 있다. 각의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회의 같은 건데, 각의가 열렸으면 분명 회의록이 있을 거고, 회의록이 있다면 거기에 따른 부속 서류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데 착안을 했다. 자료를 어디 있는지 정확히 몰라서, 일본 국회도서관을 포함해 여러 기관에서 자료를 찾았다. 결국 각의 회의록 자체는 확보를 못 했고, 이번에 확보한 서류 중 대부분이 각의에 올라가는 자료에 첨부되는 심사용 자료에 포함된 서류들이다. 일부 자료는 존재는 알고 있지만 기관 내부 심사에서 탈락해 공개되지 못했다. 저와 증조부의 관계, 증조부 구명 운동을 하셨던 생고조부와의 관계 등 혈연관계라는 점을 강력히 내세웠지만 공개가 안 됐다. 자료가 있는 데도 확인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
-- 어떤 이유에서 공개가 안 되는 건가.
▲ 그 이유에 대한 명확한 코멘트는 없다. 일부 공개된 자료에서도 검게 처리된 부분들이 있다. 당시의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일본으로서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 인터뷰 기사 한 줄만 보고 자료 발굴을 시작하셨다. 추적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환경이 굉장히 잘 돼 있는데, 일본은 아직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자료 신청도 우리나라는 홈페이지 회원 가입을 하고 서류를 작성해서 온라인으로 올리면 되는데, 일본은 서식을 다운받아 작성해서 팩스로 보내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두 번째로 심사 기간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자료 공개를 청구하면 대체로 어느 기한이 되면 끝이 난다. 일본에서 가장 자료가 많이 나온 기관 한 곳에서는 총 심사 기간이 6개월이 넘게 걸렸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에 한 달이 걸리고, 어떤 자료를 공개할지 결정하는 심사에 추가로 석 달이 더 걸리더라. 자료 찾는 일을 하다 보면 인내심이 강해진다.
-- 발굴한 자료들이 어떤 의미가 있나.
▲ 자료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구명운동 관계 서류, 두 번째는 공주지방법원 1심 판결문, 세 번째는 박하진 판결문, 마지막 네 번째는 증조부 사형 소식을 듣고 일본 아나키스트 여류 시인 다카무레 이쓰에가 정부를 비판하며 쓴 시다. 이 중 공주지법 1심 판결문은 증조부가 받으신 6번의 재판 중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았던 판결문이었다. 예심 1번을 제외한 나머지 5번의 사실심 중 가장 많은 24명이 회부된 재판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활동 사항이 모두 판결문에 등장한다. 내용이 상당히 풍부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카무레 씨의 시를 통해서는 증조부가 당시 일본 지식인층에 미친 반향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증조부 순국이 중국과 인도 사회에 알려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카무레의 시를 통해 이걸 알 수 있게 됐다. 그다음으로 증조부의 동생인 박하진 선생이 실제 옥살이를 했다는 점이다. 박하진 선생은 증조부 활동 중 1923년 경북 의용단 군자금 사건에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때까지는 수형 사실이 없어서 공적 심사 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 서훈 등급 상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보나.
▲ 다카무레 씨의 시가 발견됨으로써 일본 지식인층에 일으킨 반향을 소위 국위 선양이라는 시각에서 참조할 수는 있겠다. 다만 나머지는 증조부가 체포되고 재판받은 이후의 과정이고 직접적인 활동 사항이 추가로 발견된 건 아니기 때문에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동생인 박하진 선생 업적 발견된 건 처음인데, 집안에서도 몰랐다고.
▲ 맞다. 집안에서는 증조부의 동생들이 증조부 심부름을 하면서 만주로 다녔다고 하는 이야기는 전해져왔다. 그런데 감옥살이를 했다는 얘기는 처음 접했다.
-- 옥살이했는데 전해 들은 이야기도 전혀 없었던 게 의아하다.
▲ 우리는 지금 크게 근심 걱정이 없는 세월에 살고 있다. 적어도 이런 말 저런 말 한다고 해서 붙잡아 가지는 않는다. 근데 그 당시에서 보면, 우리 집안은 일본의 감시를 좀 받는 집안이었고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또 집안이 1920년대 들어서 경제적으로 몰락했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형제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살았을 테지만, 각자도생해야 하니까 뿔뿔이 흩어져 사는 거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만날 수도 없고, 현실이 피폐해지니 그런 이야기들이 화제에 오르기가 힘들었을 걸로 추정한다.
-- 향후 박하진 선생 공적 관련해서 활동 계획은.
▲ 공적 신청을 할 예정이다. 주 죄목이 뇌물공여죄다. 증조부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를 매수해서 필기구를 제공하고, 증조부는 그 필기구를 이용해서 동지들과 연락했다. 그게 들통나서 박하진 선생은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것도 독립운동의 일환이라고 본다. 앞으로 서류를 갖춰 보훈부에 공적 신청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 집이랑 지금 연락이 안 된다. 최근 발굴한 자료로 기자회견을 했고 기사도 몇 개 나왔는데 그걸 보고 조만간 연락이 될지 기대하고 있다.
-- 앞으로도 해외 자료 계속 발굴하실 계획인가.
▲ 계속할 거다.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나라마다 체제가 다르고 시스템이 달라서 자료에 접근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 그래도 이번에 찾은 것처럼, 찾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자료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생고조부가 증조부 종상에 쓴 제문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증조부 순국과 관련한 영자신문이 있고, 중국에서도 숙친왕의 아들 근원이라는 사람이 상에 찾아왔다고 한다. 일단 인도는 1920년대 발행됐던 영자신문 종류와 데이터베이스화돼 있는 신문을 알면 노크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 경우 땅덩어리도 넓고 지역 신문사도 워낙 많은데 그게 자료화가 다 돼 있지 않으니 녹록지 않을 것 같지만 한번 시도해볼 예정이다.
-- 박상진 의사의 예우가 공적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 있다. 서훈등급 격상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나.
▲ 공감위원회에서 공감위원들 회의가 여러 차례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증조부를 포함해 일곱 분을 대상으로 심사 중인데, 일곱 분을 각각 대리하는 자문위원이 한 분씩 선정돼 있다. 증조부님의 자문위원은 고려대 교수를 지내신 이명훈 교수가 맡고 계시는데, 지난 5월에 이 교수를 비롯한 자문위원들까지 참석하셔서 세 번째 회의가 열렸다고 알고 있다.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다. 연말쯤 되면 결정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 독립유공자나 유가족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지원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어른들의 행적을 길이 나타낼 수 있는, 명예를 부각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울산은 독립기념관이 없다. 증조부 단독 기념관은 바라지도 않지만,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아우르는 기념관은 필요하다고 본다. 암흑의 시대를 살아왔던 선인들의 활동을 다채로운 방법으로 기념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게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건 명예밖에 없지 않냐.
-- 이번에 발굴한 자료로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 있나.
▲ 있다. 자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찾은 자료를 모아서 학계의 필요한 분들에게 제공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자료가 빛을 발하는 거지, 그게 안 되면 일본 도서관에 처박혀있는 거나 제가 발굴한 거나 차이가 없다. 다만 재정 상황이 문제다. 제 돈을 쓰고 제 손으로 하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한계가 있다.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있기를 개인적으로는 바라고 있다.
jjang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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