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마다 짐승같은 군인들이…” 8만명 성폭행 고발하고 떠난 이 작가 [나쁜 책]
[금서기행, 나쁜 책-6]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2004년 1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에서 동양계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권총 자살이었습니다.
여성의 죽음 소식은 즉시 전 세계 외신에 보도됐습니다. 사망자는 만 36세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Iris Chang)이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 저자였습니다.
한국에선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입니다. ‘난징의 강간’은 출간 당시 논쟁적이었고, 결국 저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어떤 책이었을까요.
아이리스 장의 부모는 딸에게 1937년 12월 난징에서 벌어진 비극을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난징에서 수십 만명이 죽은 끔찍한 이야기였지요. 아이리스 장은 도서관에서 난징대학살을 검색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건의 전모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를 졸업한 아이리스 장은 AP통신, 시카고트리뷴 기자가 됩니다. 그는 난징대학살 자료와 구체적인 증언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 책이 없다면, 바로 당신이 그 책을 써야 한다”(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는 유명한 말이 그 당시 아이리스 장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책 ‘난징의 강간’입니다.
이 책은 ‘일본제국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만행을 기록한 첫 번째 영문 보고서’로 평가받았습니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중국 공식 통계로 사망자 수는 30만명입니다. 살해당한 사람을 나란히 눕혀 손을 잡게 하면 난징에서 항저우까지 322km,기차에 모든 사망자 시체를 채우면 2500량,흘린 피의 총량은 부피로 1200톤으로 계산된다고 아이리스 장은 서술합니다.
난징에 주둔한 일본군이 난징을 함락 시킨 직후 벌인 대학살의 결과였습니다. 아이리스 장은 일본 종군 기자의 기사, 영미권 해외 특파원 기록, 일본군 개인이 남긴 일기를 참고해 다음과 같이 씁니다.
(※아래 인용한 내용은 충격적이고 또 역겨우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총살했지만 시체를 태워 없앨 기름 연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쯔강에 시체 수만 구를 유기합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죽일 총알도 부족해지자 일본군은 중국인 포로를 땅에 생매장합니다. 삽을 든 군인은 일본군이 아니었습니다. 포로 뒷줄의 (곧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다른 포로들이었습니다.
책은 기록합니다.
◎ “사람들이 시체를 끌어내려 양쯔강에 던지고 있다. 시체들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묵숨이 붙어 잇는 몇몇은 사지를 뒤틀며 신음하고 있다. 시체를 강에 던지는 사람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마치 팬터마임이라도 하듯이···.” (97쪽, 일본 종군 특파원 이마이 마사타케 기사)
◎ “살아 있는 것이라곤 시체를 실컷 파먹어 살이 오른 개들뿐이었다.” (86쪽, 영국 한 특파원 기록)
◎ “일본군은 시체에 휘발유를 붓고 태우려 했지만 불길이 시체를 재로 만들기 전에 연료가 바닥나곤 했다. 타나 남은 시체가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95쪽, 일본제국군 나카지마 하사 기록)
당시 강간 당한 여성은 8만명(최소로 잡아도 2만명)으로 집계됐다고 책은 기록합니다.
민가에서 잡혀온 여성들은 15~20인의 군인에게 할당돼 능욕을 당합니다. 노인부터 소녀까지 가리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이 몰리는 곳마다 짐승같은, 아니 짐승도 하지 않는 윤간이 벌어졌습니다. 비극은 성폭행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군법상 강간은 금기였는데, 그래서 병사들은 강간 피해자를 그 자리에서 살해합니다. 증거 인멸이 목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재미로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진술 등 믿기 어려운 사실이 쏟아집니다.
이 책에서 난징대학살 참극의 증언자는 중국인만이 아닙니다. 전쟁에 참여했던 전(前) 일본군이 증언한 기록까지 책은 담습니다.
사실 중국 난징대학살은 20세기 후반까지 거의 외면 당한 비극이었습니다. 왜일까요.
도시 난징은 중국 국민당의 수도였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은 중국 국민당을 몰아내고 대륙을 장악했습니다. 쫓겨난 국민당은 섬나라로 옮기는데 그 나라가 현 대만입니다. ① 대만은 일본에 난징대학살 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대신 일본에게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아 교역하기를 바랐습니다.②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난징대학살은 자신들의 일이기보다 경쟁자였던 중국 국민당이 경험했던 수치에 가깝기도 했습니다.③ 미국은 전쟁 이후의 안정을 위해 난징대학살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은 1970년대부터 난징대학살과 위안부 허구론을 펼칩니다. 난징의 참극은 그렇게 잊혀 갔습니다.
그러던 중 고작 서른 살에 불과한 동양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 30세 여성이 중일전쟁의 만행, 중국 공산당의 망각, 미국의 외면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걸작 논픽션을 출간한 겁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망각됐던 비극의 기억을 역류시켰습니다.
아이리스 장은 인간 악행에 저항하는 선한 인간의 본성을 함께 발굴합니다.
책에서 언급된 대표 인물이 독일인 고(故) 욘 라베(1882~1950)였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난징의 살아 있는 부처’ ‘중국의 오스카 쉰들러’로 추앙 받는 인물입니다.
욘 라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욘 라베가 살려낸 인간만 수십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욘 라베는 히틀러 나치의 당원이었습니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요.
나치 당원의 눈으로 봐도, 당시 일본제국군 악행은 상상 이상이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욘 라베는 도저히 참다 못해 아돌프 히틀러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난징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을 위해 중립 지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총통(히틀러)께서 힘을 써주십시오”(1937년 11월 25일)라고 읍소했습니다. 다만 히틀러는 그가 편지를 보낸 걸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리스 장은 그런 욘 라베의 과거를 세계인에게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책 출간 이후 욘 라베의 생애는 영화로도 제작됩니다.
일단 미국에선 “중국 옛 수도 난징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대한 최초의 광범위한 연구”(월스트리트 저널), “소름끼치는 대학살에 관학 역작”(뉴욕타임스) 등의 찬사가 쏟아집니다.
반면, 일본 우익집단은 “난징대학살은 날조”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일단 30만명이라는 수치도 허구이고, 책 인용도 부실하다고 공격합니다. 특히 책에선 중국 여성과 한국 여성의 위안부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데, 일본은 이 책을 두고 여성들이 강간당했다는 증거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 방송은 아이리스 장과 주미 일본대사와 설전까지 방영했습니다.
아이리스 장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아시아 학계에선 민간인 학살 연구의 잔상이 그녀의 우울증에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KCI에 등재된 ‘난징대학살의 기록자, 아이리스 장의 죽음에 대한 한 연구’에서 유강하 강원대학교 교수는 아이리스 장의 죽음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아이리스 장이 그 사건을 연구하고, 그 사건에 몰입했던 시간은 그녀를 난징대학살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했지만, 비극의 잔상들은 피해자들과 그녀와의 거리를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고통과 우울은 공감의 그늘 아래서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가 추구한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었겠지만, 대상과의 거리가 무너지면서 감정의 전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강하 논문, 286쪽)
타인의 고통이 씨앗처럼 이식되어 아이리스 장 내부의 고통으로 발아된 것이었겠지요.
그 씨앗이 자라 맺은 결말의 이름은 ‘죽음’이었습니다.
“정신대로 끌려온 한국 여성은 성적 노예가 아닌 ‘공인된 창녀들’이었으며 일본은 붕괴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나가노 시게토, 법무대신 지명 직후),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한 데는 조선의 잘못도 있다. 조선은 기꺼이 식민지가 되었다”(일본 문부성 장관 후지오 마사유키),
“일본군의 위안부였거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강압에 의한 성적 노예가 아니라 자발적인 매춘부였을 뿐”(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청장) 등의 발언을 자세히 소개한 아이리스 장은 이 주장을 반박합니다.
중국은 난징대학살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이곳에 아이리스 장의 동상도 함깨 세웁니다. 책 ‘난징의 강간’을 손에 쥔 동상입니다.
2019년 난징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념관에 잠시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반일 감정의 확산을 위해 이 기사를 준비한 건 아닙니다. 동아시아 한중일은 서로의 서로에 대한 혐오의 감정으로 20세기를 건너왔고, 지금도 반일, 반중, 혐한의 시선 속에 우리는 갇혀 살아갑니다.
책 ‘난징의 강간’은 한 제국주의 시대의 끔찍한 기록의 재생이 아닌 (저자가 책의 첫 문장에 적은 것처럼) 인류 악행의 연대기로 읽어내는 것이 좀 더 희망적인 독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난징의 강간’은 인류가 다시는 반복하거나 재현해서는 안 될 악에 대한 경계, 인류가 현실의 함수 때문에 의도적으로 잊었던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서가 아닐까요.
망각에 저항하려 했던 아이리스 장의 죽음도 점점 망각되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그녀는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두고 권총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 글이 20세기 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위대한 작가’ 아이리스 장을 추념할 또 다른 애도의 서로 남을 수 있을까요.
※ 다음주에는 래이 브래드버리 소설《화씨 451》을 다룹니다. 책 읽기가 금지된 세상을 풍자한 SF소설입니다. 화씨 451도(섭씨 233도)는 “종이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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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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