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저지를까봐…" 자기 자녀 살해한 부모
서현역 유사 사건, 15년 전 도쿄에서 발생
경제 위기 → '처지 비관/사회적 고립'으로
은둔형 외톨이, 숨기는 분위기가 문제 키워
칼부림 방지하겠다며 부모가 자녀 살해까지
사회 시스템 바뀌어야 해결, 우리는 준비됐나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김민하 시사평론가
◇ 채선아> 우리보다 한발 앞서 여러 사회문제를 겪은 일본이라는 오답노트를 들춰보는 시간, 김민하 시사평론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민하> 안녕하세요.
◇ 채선아> 최근 우리 사회 문제로 떠오른 이른바 '묻지마 살인', 일본에서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다구요.
◆ 김민하> 그렇죠.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본 언론에서 많이 보던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지는구나' 이 생각이 먼저 들 만큼, 원래 일본 사람들이 여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도리마(通り魔)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거리의 악마라는 뜻이거든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에 길거리 무차별 살인이 상당히 크게 문제가 되기 시작해요. 악마가 사람을 해할 때는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무차별 살인이 벌어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나온 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범인이 트럭으로 행인들을 들이받고 거기서 내려서 흉기를 휘둘러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사건이 벌어졌거든요. 얼마 전에 벌어진 서현역 사건하고 거의 형식적으로 유사하지 않습니까?
◇ 채선아> 차로 먼저 행인들을 들이받고 그다음에 살인을 저지른 점에서 그렇네요.
◆ 김민하> 이 사건 외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DVD방에 불을 질러서 크게 문제가 된다든지, 또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일어난다든지, 또 한 2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도쿄 전철 안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방화를 시도한다든지, 이런 일들이 빈발하다보니 일본은 늘 이 범죄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찰청 자료를 보면 이런 형태의 무차별 범죄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따져서 한 해 평균 7건씩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서현역 사건, 신림역 사건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건들이 1년에 7개씩 일어난다는 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 거죠.
◇ 채선아> 그러니까요. 일본 같은 경우는 그런 사건이 2000년대 초부터 일어났다고 하니까 우리도 앞으로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많은 사건이 있었으면 일본에서는 관련 연구들도 쭉 진행됐겠어요.
◆ 김민하> 그렇습니다. 일본 법무성이 2013년에 진행한 연구를 보면 범인들을 인구통계학적으로 분류를 해서 범행 형태, 시간, 장소, 또 방법적인 특징 등을 다 꼼꼼하게 정리해놨습니다. 이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게, 어떤 동기에 의하여 범행을 했느냐는 부분인데 이렇게 분류해놨어요. 처지에 대한 불만, 특정인에 대한 불만, 자살 및 사형에 대한 소망, 감옥으로의 도피, 살인에 대한 관심 등등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처지에 불만을 가지든지, 또는 누군가가 미워서 범죄를 저지르든지, 또는 '내가 그만 살고 싶다, 사형을 당하고 싶다, 더 이상 살아봐야 좋은 일이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지든지. 이런 것들이 동기가 큰데 대다수의 연구 결론은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동기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에요. 신림역 사건 범인의 경우에는 '열심히 살아도 안 되더라. 남들도 나처럼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 채선아> 맞아요.
◆ 김민하> 이런 점에서 유사성이 있는 것인데, 이 이유들이 하나만 작용했다기 보다는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거겠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고, 내가 범행을 저지르고 사형을 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마음을 가지고 범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와 비슷한 논리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또 벌어질 수 있는 문제여서 이 부분에 좀 관심을 가져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 채선아> 정말 이런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대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자신의 처지를 왜 비관하는지 원인은 살펴봐야할 것 같아요.
◆ 김민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 이런 건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관적인 감정이죠. 전국의 사람들을 통계를 내서 내가 이 통계 마지막에 있다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도 살다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죠.
◇ 채선아> 있죠. 취업 준비할 때라든지, 아니면 남들과 비교할 때라든지. 그런다고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잖아요.
◆ 김민하> 그렇죠.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나누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면 살인을 저지를 수 없는 것이고, 또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이 주관적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으면 그런 경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어서 불행한데, 불행하기 때문에 또 사회적으로 고립이 돼있고, 사회적으로 더 고립되니까 또 불행해지고 이 악순환이 발생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자기 감정이 계속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강화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신과 사회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범행 예고하고 범행을 실제 저지르는 것밖에 안 남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고립에는 그럼 왜 빠지느냐, 그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경제적 빈곤이라는 게 그동안 일본의 연구 결과입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이런 사건으로 수감된 사람 중에 39세 이하가 70% 이상이었고, 이 중에 무직자가 80%였다라고 하는 결과가 일본 법무성 연구에 나와 있습니다.
◇ 채선아> 대다수가 무직자였던 거네요.
◆ 김민하> 특히 청년 실업 문제와도 연관이 되는 부분이죠. 일본에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 경기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부동산 가격도 추락하고,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생산성이 하락하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니까 이른바 NEET족 문제, 우리로 치면 청년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문제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실제로 앞서 말씀드린 아키하바라 사건 범인은 원래 도요타의 하청인 자동차 공업사에 다녔습니다. 근데 계약 해지가 됐어요. 비정규직인데 실직한 거죠. 그 뒤에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런 게 또 일부 범행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소위 '히키코모리'라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이 시기에 본격화되는데 이때 미디어는 또 경제가 좋을 때를 그리워하는 드라마 같은 걸 많이 만들어내요. 그런 걸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강화되고, 문제가 심각해진 거죠.
◇ 채선아> 미디어에는 다 좋은 모습만 나오는데 나의 삶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랬던 거네요. 그 청년층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텐데, 일본사회의 분위기도 이런 박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되진 않았을까요?
◆ 김민하> 일본 사회가 굉장히 안정지향적입니다. 남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좋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데, '아, 저 사람은 뭔가 남과 달라' 그렇게 생각하면 괴롭힘이 발생하고, 그 괴롭힘이 문제의 발단이 되지 않습니까? 아키하바라 사건의 범인 같은 경우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자기가 해고되니까 우리로 따지면 커뮤니티 같은 인터넷 게시판에 '너무 힘들다. 해고는 부당하다. 내가 비정규직인데 이렇게 쉽게 잘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사회냐'는 취지의 글을 여러 차례 씁니다.
이 사람이 게시글을 거의 천 개 가까이 썼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 참 안 됐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천 개를 쓰면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넌 맨날 와서 여기다 우는 소리만 하고, 니 얘기는 결국 징징거리는 것밖에 안 돼'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고, 소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범인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면서 '여기서조차도 내가 고립이 되는구나' 이런 감각을 갖게 되고, 그럼 더 심각한 걸 저지름으로써 사회와의 관계를 내 방식대로 복구해야겠다는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게 범행 예고로 이어진 건데, 범행 예고를 하니까 또 비웃죠.
◇ 채선아> 온라인에 범행 예고를 했는데 그걸 비웃었어요?
◆ 김민하> 댓글에 '니가 그럴 용기가 있는지 어디 보자' 이런 걸 썼다는 거죠. 그것도 하나의 방아쇠가 되어서 이런 범행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립된 사람들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이 사람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려는 노력들이 전제가 돼야하는데, 일본 사회의 경우에는 이 사람들이 사회로 복귀하도록 하는 노력도 물론 있긴 하지만, 숨기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죠.
◇ 채선아> 만약 내 오빠나 언니가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하면, 가족들이 그걸 도와주거나 밖으로 연결시켜주지 않고 숨기고 방치하는 건가요?
◆ 김민하> 처음엔 노력을 하겠죠. 그런데 개선이 잘 안되면 주변에서 어떤 분위기가 생기느냐. '저 집 자식은 저 아들은 10년째 밖으로 안 나온대. 저 집은 왜 그럴까, 이상한 집이야'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손가락질을 당하니까 감춥니다. 만약 은둔형 외톨이가 20대일 때 취업에 좌절했다고 하면, 그 20대가 40대가 되도록 쭉 감춰져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부모의 나이는 이 사람이 20대일 땐 40대에서 50대였는데, 20년이 흐르면 고령층이 되는 거에요.
◇ 채선아> 은퇴할 나이네요.
◆ 김민하> 그러면 지금까지는 부모가 은둔형 외톨이인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서 경제활동을 해왔을 텐데, 고령이 됐으니까 부양을 못하잖아요. 이게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까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앞서 초등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을 말씀드렸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 은둔형 외톨이였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어떤 부모가, 자기 자녀가 40대의 은둔형 외톨이 성향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자녀가 어떤 공격성을 보이니까 '최근에 은둔형 외톨이가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는데 우리 자녀가 가해자가 될 수 있겠다'면서 이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2019년 6월)
◇ 채선아> 자기 자녀가 살인마가 될까봐 부모가 직접 자기 손으로 살해했다고요?
◆ 김민하> 그렇죠. 그런데 보통 그럴 것 같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끝까지 숨기고 자기 선에서 뭔가 처리하려고 한 거에요. 이런 일본의 폐쇄적인 분위기, 안정지향적인 사회 성격이 고립 문제를 심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봐야겠죠.
◇ 채선아> 정말 비극적이네요. 부모도 자녀도 불행한 사회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본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았나요?
◆ 김민하> 2021년에 고독 고립 대책 담당 부서를 설치하고 고독 문제를 24시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전화를 시범 운영한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또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모의 대응 훈련을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을 설치한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는데, 근본적인 대책은 안되는 거죠.
일본도 사실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고, 이걸 해결하려면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좀 바꿔야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회안전망 강화해서 각각의 개인들을 사회하고 연결시켜줘야 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일본도 여러모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채선아> 이런 일본의 사례로부터 우리는 뭘 배울 수 있을까요?
◆ 김민하> 우리가 배워야 될 가장 큰 교훈은, 일본이 겪은 문제가 앞으로 남의 일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지금까지 답을 못 내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답을 못 내리라는 법은 없는 거고, 일본이 오답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정답을 만들어낼 것이냐가 중요한데요. 지금 우리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보니까 엄벌주의, 단기 대책 위주로 가는 것 같아요. 문제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일을 벌이는 범인들이 자기가 처벌 받거나 사형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거거든요.
◇ 채선아> 그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 김민하> 그렇다면 엄벌주의가 답은 아닌 것이고, 오히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사회의 연결을 다시 복원하는 일을 해야 되는 거죠. 또 엄벌주의가 필요한 요소도 있을 텐데, 예를 들면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해야 된다든지, 법원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한다든지, 이런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 채선아> 정신병원 병상도 없다고 하죠.
◆ 김민하> 그렇죠. 또 법관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지식과 명확한 절차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돼 있기 때문에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구조를 만들어야 되고, 정신질환자 치료 역시 개인들이, 그 가족들이 의무를 지는 게 아니라 사회가 같이 책임지면서 그 지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지역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이건 의료계가 동의해야 되고, 여러 가지 큰 줄기가 바뀌어야 하는 일인데 얼마나 갈 길이 멀고 힘들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짐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된다는 점을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 채선아> 저는 고립이라는 단어를 오답 노트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벌주의나 강경 대책이 고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가 고립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일본과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까지 김민하 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민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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