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 자랑" 김준한, '보호자' 감독 정우성이 알아본 빌런(종합) [N인터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차갑고 이지적이었다가 어느 순간 비열하고 비굴한 얼굴을 드러낸다. 선과 악을 오가는 배우 김준한(40)이 스크린에 나올 때, 그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선과 악이 5대 5라고요? 하하하. 그렇게 봐주셔서 너무 좋아요. 사실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 측면으로 봐주셔서 제가 그런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감사함도 있고요. 많은 배우들의 고민이긴 하겠지만 너무 비슷한 역할들을 했을 때 대중이 나를 지루해하지 않을까, 이거 봤던건데?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늘 있거든요. 그런데 여러가지 시도할 수 있고 새로움을 보여드릴 수 있는 점이 장점인 것 같아요."
김준한은 영화 '보호자'에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조직의 2인자 성준을 연기했다. '보호자'는 10년 만에 출소해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혁과 그를 노리는 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감독 정우성의 첫번째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출연 제안은 감독으로부터 먼저 받았다. 정우성 감독과의 인연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시작됐다. 영화의 뒷풀이를 하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았었다고.
"뒷풀이 때 (제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 넌지시 말씀해주셨었어요. 사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연락처를 달라고 하셔서 드렸었어요. 한동안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 기억이 나요. '정우성 선배 연락처를 받았다'고요. 그렇다고 그 이후에 제가 정우성이라는 선배에게 먼저 연락할 순 없었죠. 선배이기 이전에 시대의 아이콘 같은 분이시잖아요. 불편하실 수도 있고. 그저 어릴 때부터 너무 팬이었기 때문에 이분에게 연락처를 드린 이상 연락처를 절대 바꾸지 말아야지, 언제 연락이 올까 했었는데, 이렇게 연락을 주실 줄이야."
'보호자'에서 김준한의 캐릭터는 수혁(정우성 분)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그를 제거할 기회만을 노리는 빌런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하기도 전에 받은 제안이었어요. 이렇게 좋은 역을 제게 제안 주신 것에 놀랐고, 궁금했어요. 저를 왜 이렇게 매력적인 역할에 캐스팅해주실까? 감사한 마음으로 했어요."
존경하는 선배 배우이자 감독이었지만, 극 초반 그의 캐릭터 성준은 정우성이 연기한 수혁에게 직접 폭력을 가하며 적의를 드러낸다. 아무리 프로페셔널한 배우라도 조금 불편하거나 어려운 장면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작품을 떠나서요.(웃음) 평소의 액션 장면 찍을 때 서로의 합이 중요하고 다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데, 이번에는 특별히 더 중요했어요. 우리나라의 국보와 같은 얼굴에 손상을 입히면 안 되잖아요. 보통은 10cm 거리를 두고 연기했다면 이번에는 12cm, 13cm 거리를 두고 조심했습니다.(웃음)"
직접 목도한 베테랑 정우성의 액션 연기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저건 나는 못 한다"는 생각까지 했단다. 특히 김준한은 기억에 남는 신으로 자신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구경을 하러 갔다가 보기됐던 플래시 액션 신을 꼽았다.
"그 액션을 소화하시는 걸 보면 보통 '너무 멋있다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저건 안 된다, 난 저거 안 된다, 이번 생은 글렀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빨리 그 생각을 했어요. 나는 다른 길을 가야겠다고. 액션을 해도 저쪽은 아니고 다른 쪽으로 가야겠다. 실제로 그걸 목도 하니까 '와 이건 클래스가 다르구나' 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 선배님이 노력해오신 게 있어요. 그게 저렇게 응축된 결과물로 빚어지는 게 너무 놀라웠고 자극이 많이 됐어요."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번 영화를 위해서 김준한 역시 여러 노력을 했고, 노력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얼핏 단순한 캐릭터지만, 주인공 수혁의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안타고니스트로서 관객들을 설득할만한 연기력을 보여줘야 했다.
"이야기 안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이라는 점에 끌렸어요. 사건의 중심이 돼서 사고를 쳐볼 수 있는 게 배우들에게 재밌는 지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친구가 단순히 사고만 치는 평면적인 모습만 비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어떤 외로움이랄까, 그런 뭔가 개인의 사연을 짐작해볼 수 있을만한 장면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담아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래서일까. 김준한이 연기한 성준은 악인이면서도 묘하게 공감 혹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어떤 존재를 향한 동경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끼며 끝없이 비범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인물. 여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지점이 있었다.
"저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 정제된 어떤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각자 다 알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 이면에 어설픈 모습이 있다는 것을요. 그런 게 작품 안에서도 보일 때 훨씬 생동감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을 반영하려고 했어요. 찌질한 구석이 드러나는 것,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들, 그런 것들을 찾아보려고 했고 대본을 읽으면 그게 보이기도 했어요."
비주얼도 여러 노력 중 하나였다. 온몸에 새겨진 타투와 근육질의 몸매 등 '조직폭력배'처럼 보이기 위해 외적으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면 하는 게 있어서 증량도 있었어요. 한 5kg 정도를 찌웠는데 박성웅 선배님과 같이 슛에 들어가기 전에 푸시업을 했던 기억이 나요. 열심히 푸시업을 했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그게 되게 재밌었고 선배님과 인간적으로도 많이 친해졌었죠. 문신은 타투이스트분들이 직접 오셔서 네시간 이상 다섯 명이 붙어서 실제 그림을 그려주신 거였어요. 그분들이 문신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에너지가 생기고 자신감이 넘치더라고요. 사진도 찍어놨어요. '어 좋은데?' 하면서.(웃음)"
보통 배우들에게 제안이 가는 캐릭터들은 전작들이 가졌던 이미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김준한 역시 그랬다. 그를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만들어준 작품은 '봄밤'이나 '안나' 같은 드라마 작품들인데, 두 작품에서 모두 그는 다소 비열한 면을 보여주는 인물을 연기했다. 그 덕에 요즘도 빌런 역할을 많이 받는다. "'보호자' 이후에 찌질한 역할이 많이 들어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김준한은 "찌질한 걸 좋아한다"며 웃었다. 뭘 해도 해볼만한 연기파 배우의 여유로운 미소였다.
"찌질한데 나쁜 놈일 수 있겠지만 찌질한데 재밌는 애라든지, 찌질한데 마음이 가는 착한 애들도 있을 수 있고요. '찌질함'이라는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지점을 하나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대가 되고 말씀드린 것들 중 어떤 찌질한 것들을 주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보호자'는 15일 개봉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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