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구조계산-도면작성 모두 따로…‘설계’부터 철근 빠졌다

최하얀 2023. 8.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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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빠진 아파트]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서울지역본부에서 최근 무량판 구조 공공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발표에 누락된 단지 5곳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29일 자정을 35분 앞둔 시각. 오는 10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던 인천 검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 202동과 203동 사이 지하 1층 슬래브(지붕층·1104㎡)가 먼저 주저앉았고,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하 2층 슬래브(185㎡)도 뒤이어 무너졌다.

붕괴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무량판 구조물의 핵심 재료인 ‘전단보강근’(철근) 누락이 지목됐다. 무량판 구조물은 보나 내력벽이 없는 터라 전단보강근 설치가 필수다. 콘크리트 기둥 안 가로세로 철근을 대각선으로 한번 더 묶어내는 전단보강근은 기둥이 슬래브를 뚫어버리는 ‘펀칭 현상’을 막는 구실을 한다.

무량판 구조물의 핵심 재료인 철근은 왜 누락된 걸까. 검단 단지 붕괴 뒤 엘에이치 전수조사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된 21개 단지 사례를 보면, 문제는 ‘설계-시공-감리’ 전 단계에 걸쳐 있었다. 특히 누락 원인이 파악된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에서 ‘설계 오류’가 확인됐다.

수주·구조계산·도면작성 따로따로…“LH는 도면도 못 봐”

국토교통부와 전문가들은 설계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애초 설계 도면이 엉터리라면, ‘도면대로 시공’됐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감리가 그 오류를 잡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업계 설명과 관련 법령을 종합하면, 6층 이상 건물의 구조 ‘설계 단계’에는 세 주체가 참여한다. 건축사사무소가 설계 용역 수주와 설계 총괄을 하고, 건축사 의뢰로 구조기술사 사무소가 건물의 여러 하중과 필요 재료를 결정하는 구조계산을 맡는다. 그런 뒤 제3의 영세 업체가 기술사사무소의 구조계산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조도면을 그리는 게 통상적이다. 설계 품질은 세 주체의 톱니바퀴가 긴밀하게 맞물릴 때 보장되는 구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건축사는 구조기술사의 구조계산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술사는 구조계산 결과가 구조도면에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검토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건축법 시행령은 건축사와 구조기술사가 구조도면에 공동 서명날인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공동 부여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령과 다르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건축사는 “구조·전기·통신·소방 등 여러 영역을 모아 단지 전반을 설계해야 하는 건축사로선 구조계산은 기술사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고 가게 되지, 구조계산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게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구조기술사가 제3의 업체가 그린 구조도면을 꼼꼼히 확인하고 싶어도, 건축사 쪽에서 ‘내일 도면을 납품해야 하니 오늘 저녁에 와서 서명을 하라’거나 심한 경우엔 ‘도장만 보내라’고 하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발주처인 엘에이치의 구조계산·구조도면 검증 역량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엘에이치가 건축사사무소가 제출한 설계도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오류를 잡아내야 하지만, 이런 최종 설계 승인 과정마저 부실하단 지적이다. 이한준 엘에이치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엘에이치의 구조견적단이 설계가 제대로 되는지 확인할 줄 알아야 하는데, (지난해 11월 취임해서 보니) 2009년 이래 도면도 못 보는 토목직이 구조견적단을 맡고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LH가 전관 있는 구조계산 업체 찍어주기도”

구조계산이 무량판 공법 경험이 적은 역량 없는 전관 업체에 맡겨지는 점도 설계 부실 가능성을 키운다. 엘에이치 일감을 수주한 경험이 있는 한 건축사는 “건축사들은 통상 손발을 맞춰본 구조기술사와 작업을 하고 싶어하지만, 엘에이치 사업 땐 발주처가 원하는 구조설계 업체에 일을 맡겨야 엘에이치가 괴롭히지 않는다고들 생각한다”며 “엘에이치 설계 공모 큰 건이 하나 뜨면, 일을 맡겨야 하는 구조설계 업체 목록도 암암리에 나돈다”고 말했다. 업계는 목록에 든 구조설계 업체 상당수에 엘에이치 전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설계 전 과정에 여러 주체가 참여하며 ‘휴먼 에러’(인간이 만드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구조계산과 설계 결과를 이중으로 점검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단 주문도 나온다. 붕괴 전 ‘전조 증상’이 길게 나타나지 않고, 한번 붕괴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것이 특징인 무량판 공법에선 이런 이중 검증이 더욱 절실하다. 김영민 부회장은 “국외 일부 국가에서 운용 중인 설계 ‘피어 리뷰’(동료 심사) 절차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어 리뷰는 구조계산서와 구조도면 작성 이후 또다른 구조기술사가 작업 결과물을 점검하는 것을 가리킨다.

최하얀 안태호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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