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배송센터·브랜드까지 구축한 전통시장? [디지털 풍랑 속 생존기]

이정후 기자 2023. 8.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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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수유전통시장, 온라인 판로 열리자 매출 대폭 증가
7월 온라인 배달 플랫폼 매출 6397만원…전년比 63.5% ↑

[편집자주] 전통시장이 외면 받고 있다. 예전에는 마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기라도 했지만 e커머스 등장에 값에서도 밀리고 있다. 주차장, 화장실, 쾌적한 실내 환경 등 편의성도 제공하지 못한다. 이에 정부가 떠올린 해답은 '디지털화'다. 쪼그라드는 오프라인을 넘어서 온라인을 통해 전통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복안이지만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로그아웃 위기에 있는 전통시장 디지털화를 들여다본다.

서울 강북구 수유전통시장 내에 마련된 배송센터. 시장 상인들은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물품을 포장해 비치된 바구니에 넣어 둔다.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저희는 전통시장에 있는 가게지만 온라인 매출이 전체의 30%를 차지해요. 지난달엔 온라인 주문만 100건 넘게 들어왔어요."

서울 강북구 수유전통시장에서 '꼼장네해물'을 운영하는 안종수씨(54)는 3년째 운영 중인 온라인 판매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지난 4일 시장 내 배송센터에서 만난 그는 이날도 온라인으로 접수된 배달 상품을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안씨가 배달 상품을 포장하는 사이 80여개의 배송 바구니들은 다른 점포들의 상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접수된 주문을 시장 상인들이 직접 포장해 가져다 두면 라이더들이 구매자들에게 배달하는 구조다. 현재는 온라인 매출 비중이 높지만 처음에는 그도 의구심이 들었다. 오프라인 판매가 대부분인 전통시장 특성상 '디지털 전환'은 멀게 느껴져서다.

점심시간을 맞아 분주한 건 시장의 배송센터뿐만이 아니었다. 약 30m 길이의 먹거리 골목에도 배달 라이더를 기다리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 전집을 운영하는 A씨는 "가게 손님들을 챙기다 보면 바빠서 배달 주문이 벅찰 때가 있다"면서도 "하루 평균 주문이 들쭉날쭉할 때도 있지만 매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수유전통시장의 정육점 '가족사랑축산물'은 이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하루 11건의 주문 접수를 받았다. /이정후 기자

수유전통시장 상인들이 네이버, 쿠팡이츠 등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건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4월이었다. 전통시장 손님이 뚝 끊긴 게 발단이 됐다.

상인회 회원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주축이 돼 온라인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전통시장 특화 플랫폼 '놀러와요 시장'에 처음 입점했다. 이듬해에는 '쿠팡이츠'와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에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시장 상인들과 구매자 모두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부분 50~60대 이상의 중년들이라 직접 물건을 사고파는 게 더 익숙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노력과 민간기업의 도움으로 시장 상인들은 온라인 플랫폼 이용 방법을 익혔다.

홍성순(72·여) 행복축산 사장은 "체감상 오프라인 판매만 했을 때보다 한 달 매출이 1.5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씨는 배달 앱에 등록된 자신의 가게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구매를 해주고 좋은 댓글도 길게 달아준다"고 기뻐했다.

윤희명(75) 대광식품 사장은 "전통시장이 살아남으려면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배민B마트에도 입점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3시까지 8건의 배달 주문을 받은 윤씨는 "지난달에는 온라인 매출로만 100만원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며 흡족해했다.

수유전통시장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은 입소문에 의존했던 홍보 방법을 바꾸는 결과도 가져왔다.

정육점 '가족사랑축산물'에서 온라인 마케팅을 담당하는 B씨는 "점포 전용 카카오톡 채널이 없었을 때는 행사를 알리기가 마땅치 않았다"며 "이제는 할인 행사 안내 카톡을 보고 손님들이 찾아온다. 조금 전에도 행사 카톡을 보고 오신 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유전통시장 내에 위치한 밀키트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디지털전통시장 사업에 참여하며 새로 구축했다. 제품의 신선도를 위해 주문 제작 방식을 도입 중이다.

온라인 사업을 미리 경험한 수유전통시장은 지난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추진하는 '디지털전통시장'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 전국의 시장들이 온라인 판로를 개척해 자립할 수 있도록 초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협동조합은 수유전통시장만의 특화 상품 개발에 힘썼다. 상인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냉장 밀키트 5종'을 만들었고 이를 판매하기 위해 밀키트몰을 구축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시장에서 식재료를 조달해 만드는 시스템이다. 기자가 시장을 찾은 이날도 온라인 주문이 들어와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당당한셰프'라는 자체 브랜드도 만들었다. 냉장 밀키트로 시작한 '당당한셰프' 시리즈는 중소기업과 계약을 맺고 OEM·ODM 방식으로 쿠키, 누룽지 등 상품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진호 수유전통시장협동조합 이사장은 "디지털전통시장 사업에 참여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다"며 "전통시장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수유전통시장의 지난달 온라인 배달 플랫폼 매출은 6397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디지털전통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전년 동기(3912만원) 대비 63.5% 증가한 수치다.

최 이사장은 "시장 근처의 도봉구·노원구·성북구와 멀리 있는 강남구의 매출 비율은 모두 약 10%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다"며 "전통시장이 경쟁력만 갖추면 오프라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수유전통시장의 상점가 모습

온라인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현재 온라인을 통한 높은 매출은 국가 지원비로 이뤄지는 할인 프로모션의 영향이 커 지속성이 문제점으로 꼽히며, 디지털전통시장이 먹거리 위주의 상품으로만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약점을 거론된다.

전통시장에는 여러 업종이 있는데 비인기 점포는 시장 활성화의 과실을 나누기 어렵다는 얘기다. 제수용품을 판매하는 C씨(50)는 "온라인 판매를 위해 점포 등록은 했지만 매출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판매 상품 특성상) 구매자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활성화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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