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료행위를 독점하려 할까[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2023. 8.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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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되나 의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을 늘리는 것과 함께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김 교수가 앞으로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 News1 DB

(서울=뉴스1) = 우리나라에서 암 환자를 가장 많이 보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골수 검사를 한 것을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일반 간호사가 아니라 암 환자 진료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종양 전문간호사'가 검사를 했는데도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병원을 고발한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속한 대한의사협회는 "불법 의료행위가 벌어질 경우 앞으로도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판결을 적극 환영했다.

골수 검사란 백혈병 같은 혈액암을 진단하기 위해 주삿바늘로 골반뼈를 찔러 골수 혈액과 조직을 채취하는 검사다. 이 사건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종양 전문간호사가 할 수 있는 골수천자를 우리나라에서는 왜 못하게 하는 것일까? 종양 전문간호사가 골수천자 검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게 환자에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미국과 유럽에서는 당연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불법이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법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의료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여러 쪽에 걸쳐 법에 자세하게 정해놨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료인 직종별 업무를 단 한 줄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 제2조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는,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의료법 조항은 1962년 개정 이후 60년 넘게 방치돼 있다.

법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최근 '간호법 갈등'처럼 의료인들 사이에 업무 범위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의료인 직종 중에서 힘이 제일 센 의사가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자기만 할 수 있고 다른 직종은 그 일을 못 하게 만들어 놓았다.

2019년엔 서울시의사회가 서울시 돌봄SOS센터 간호사들을 상대로 돌봄이 필요한 주민을 방문해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지 못하도록 한 일도 있다. 당시 의사회는 "의사 지도 없이 독자적으로 건강측정 등의 진료 보조 행위를 할 경우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성명서를 냈고 서울시는 간호사들에게 혈압과 혈당 측정을 중단하도록 했다. 의사가 의료행위를 독점하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봐야 할 간호사들의 손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키팩약국에서 한 여성이 화이자 부스터샷 백신을 맞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다른 나라에서는 약사와 간호사를 포함해 다양한 의료인들이 할 수 있는 많은 의료행위가 우리나라에서 의사만 할 수 있거나 의사 지도·감독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약국에서도 백신을 접종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병의원에 가야만 받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다양한 직종의 의료인들이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하지도 않으면서 의사가 아니면 못 하게 만든 '문신'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의사 이외 의료인의 업무 범위가 가장 좁은 나라일 것이다.

이렇게 의사들이 의료행위를 독점하면 환자에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전문성이 높은 의사가 의료행위를 독점하면 환자는 더 안전하고 질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의사가 부족하니 환자들은 서비스받기 어렵게 된다. 의료기관에 소속된 간호사 아니면 혈압·혈당도 못 재고 욕창 처치도 못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왕진을 하는 의원은 전체 의원의 약 1%에 불과하다.

의사가 부족하니 실제로는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인력이 의사 업무를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거치지 않고 수술 부위 봉합 같은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1만 명에 달한다. 몸값이 비싼 의사가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면 당연히 의료비가 더 많이 든다. 교육받고 준비된 의료인이 하면 의료의 질도 의사가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거나 심지어 의사가 하는 것보다 질이 더 좋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의사들이 의료행위를 독점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 추구(rent-seeking)'의 전형적인 예이다. 지대 추구란 가게 매출은 늘지 않았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는 것처럼 토지나 건물처럼 한정된 자원을 독점해서 자기 몫을 부당하게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의사들이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의사가 아니면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 놓고, 이 같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일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무엇보다 의료계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의학과 의료의 발전도 저해한다. 의료행위를 독점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연구해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 경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막히고 열심히 노력해도 적절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다른 의료인들도 노력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지대추구가 만연하면 나라는 결국 망한다"고 하는 이유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료관리학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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