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세계 8위 반도체 기업이라고?[양철민의 아알못]
TI·인피니온과 엇비슷한 수준
애플 전용칩만으로 거둔 성과
한때 삼성AP 사용했던 애플
이제 인텔·퀄컴 압도 "격세지감"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14일 기준 2조7796억 달러)은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 업체이자 글로벌 톱10 안에 드는 반도체 기업이다. 이 같은 이야기에 “애플이 반도체 기업이라고?”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여럿일테다. 실제 애플은 저전력 반도체 설계역량을 놓고 보면 여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를 압도하는 실력을 갖고 있다.
15일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올 1분기 애플은 반도체 부문에서만 42억9100만달러의 매출을 거둬, 매출 기준 반도체 업계 8위를 차지했다. 대부분 반도체 기업들이 1년새 매출이 감소한 반면, 애플은 반도체 매출이 5.5% 상승하며 관련 순위도 1년새 11위에서 8위로 세계단 껑충 뛰었다.
실제 반도체 업계 순위를 보면 서버와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압도적 1위 사업자인 인텔이 111억3900만 달러의 매출로 1위를 기록 중이며, 낸드플래시와 D램 부문에서 압도적 1위사업자이자 이미지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삼성전자가 89억2900만 달러의 매출로 2위를 기록 중이다. 모바일 CPU와 통신칩 시장의 강자인 퀄컴(79억4200만달러)이 3위, 삼성전자를 상대로 ‘갑질’을 일삼을 정도로 네트워크용 반도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자랑하는 브로드컴(66억6500만달러)이 4위를 기록중이다.
이외에도 애플보다 순위가 높은 반도체 기업은 CPU 시장에서 인텔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는 AMD(52억9900만 달러),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얼마전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선 엔비디아(52억7800만달러), 차량 및 전력 반도체 시장 1등 업체 독일의 인피니언(43억8100만달러) 등이다. 소리 등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화해주는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 텍사스인스트루먼트(42억7000만달러)는 애플보다 반도체 매출이 적어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애플이 이 같이 반도체 시장에서 톱10 기업에 드는 이유는 ‘외계인을 고문한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칩 설계 경쟁력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되는 ‘A’ 시리즈를 비롯해 노트북 맥에 탑재되는 ‘M’ 시리즈의 높은 성능으로 이른바 ‘애플 생태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애플은 비교적 적은 수의 명령어를 기반으로 높은 전력대성능비(전성비)를 자랑하는 ARM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10년 가량 반도체 기술을 업그레이드 했다. 애플은 iOS와 맥OS 등 소프트웨어도 직접 설계하는 만큼 반도체 성능 최적화 측면에서도 안드로이드(구글)나 윈도(MS)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여타 업체 단말기 성능을 압도한다. 애플은 아이폰과 같은 자사 기기에만 탑재한 자체설계 칩 매출만으로, 글로벌 톱8 반도체 기업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애플 칩의 우수한 성능은 TSMC 덕분에 날개를 달았다. 애플은 이들 반도체를 직접 설계한 후 제품 전량을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를 통해 위탁생산한다. 애플은 2012년 모바일용 칩 'A6’ 시리즈 까지는 삼성 파운드리에 제조를 맡겼지만, 이후 TSMC 비중을 늘리다가 2016년 ‘A10’ 시리즈부터는 TSMC에 물량 전량을 맡긴다. 특히 TSMC는 극자외선노광장비(EUV)를 활용한 5나노 이하의 선단공정 설비 대부분을 애플칩 생산에 할당할 정도로 이들 간의 관계는 공고하다.
애플과 TSMC의 밀월은 애플 반도체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릴 요인이다. TSMC가 삼성과의 선단공정 및 수율 경쟁에서 반걸음씩 꾸준히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가 애플의 A 시리즈 대비 성능이 낮은 이유 중 하나가, 엑시노스는 자사 파운드리를 활용해 제작된 반면 애플 A 시리즈는 TSMC에서 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독점적 지위 때문에, 가격협상력 부문에서 불리한 점을 제외하면 TSMC와 애플의 밀월은 애플에게 이점이 많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 같은 애플의 반도체 부문 성장세에 대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저절로 내뱉을 것 같다. 15년전 까지만 해도 애플의 반도체 설계 역량은 삼성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2009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3GS’에 ARM의 명령어집합체(ISA)를 기반으로 자체 생산한 AP ‘허밍버드(엑시노스3110)’를 공급할 정도로 애플 대비 기술력이 앞섰다. 당시 삼성전자 AP는 모바일 칩 시장의 절대강자 퀄컴 보다도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반면 애플은 2008년 2억7800만달러를 들여 팹리스 업체 PA세미를 인수한데 이어 2010년에는 1억2100만달러를 들여 팹리스 인트린시티까지 인수하며 AP 기술 강화에 공을 들였다. 인트린시티는 2009년 삼성전자와 1㎓ 속도의 AP를 공동 개발했던 업체로, 당시 삼성전자는 인트린시티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높았다. 애플은 이후 ‘아이폰8’부터 자체설계한 GPU를 AP에 탑재하고 인텔 칩이 아닌 자체 설계 칩(M1) 기반의 맥북까지 내놓으며 반도체 시장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알린다.
애플의 우수한 반도체 설계능력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아이폰15 프로’에 탑재될 AP ‘A17 바이오닉’의 성능은 말 그대로 여타 AP 성능을 압도한다. 실제 전자기기 성능 프로그램 ‘긱벤치(Geekbench)’ 점수를 보면 ‘아이폰15 프로’의 성능점수는 7666점으로 전작 아이폰 14프로 대비 20% 가량 높으며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Z 폴드5’의 점수(5083점) 또한 크게 넘어선다.
IT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20% 가량의 안정적 점유율을 자랑하는데다 맥북 시리즈 이용자도 늘고 있어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반도체 시장에서 애플의 활약은, PC와 서버 시장에서의 경쟁력만 믿고 있다가 모바일 혁명 이후 ‘도태된 공룡’ 취급을 받고 있는 인텔의 행보와도 대비된다”고 밝혔다.
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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