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복잡하다, 거짓과 연민 때문에 [기자의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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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추리소설의 미덕은 스피드다.
뇌를 가동하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추리소설을 읽다가 책장 귀퉁이를 접으며 '다음에 이 장면을 꼭 다시 읽어야지' '인물들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페니의 책은 그런 책이다.
독자가 범인 찾는 걸 방해하는 것도 복잡한 살인 수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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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페니 지음 유혜영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펴냄
여름, 추리소설의 미덕은 스피드다. 뇌를 가동하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를 쓰면 열이 난다. 그러니 최대한 뇌를 절전 모드로 해두고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좋다. 거기에 서늘한 복수나 참신한 트릭이 더해지면 덥다는 생각도 잠시 물러난다. 자신이 명탐정이 된 것 같은 맹렬한 몰입 혹은 신들린 빙의. 결국 범인이 잡혔을 때의 짜릿한 쾌감. 그래, 이 맛에 추리소설 읽는다.
하지만 루이즈 페니의 글은 이런 미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추리소설을 읽다가 책장 귀퉁이를 접으며 ‘다음에 이 장면을 꼭 다시 읽어야지’ ‘인물들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페니의 책은 그런 책이다. 독자가 범인 찾는 걸 방해하는 것도 복잡한 살인 수법이 아니다. 그 죽음에 얽힌 용의자들의 두려움과 진솔함이다. 이 익숙한 마음들은 질투로, 거짓말로, 다감한 연민으로, 신중한 침묵으로 ‘사건’을 만든다. 이 사건들은 캐나다 퀘벡 경찰청 살인수사반장 가마슈 경감을 통해 ‘이야기’가 된다. 〈빛의 눈속임〉은 루이즈 페니의 일곱 번째 가마슈 경감 시리즈다.
오랫동안 무명으로 활동해오던 화가 클라라 모로가 마침내 몬트리올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다. 클라라의 집에서 축하 파티가 열린 다음 날, 그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죽은 이는 지독한 악평으로 화가들의 미래를 짓밟은 평론가, 어린 시절 클라라를 휘두른 감정 뱀파이어, 알코올의존자 모임에 나가며 과거를 반성 중이던 가난한 화가 릴리언 다이슨이다. 이날 파티에는 아트 딜러부터 갤러리 소유주,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가 가득했다. 이들 중 누가 범인일까?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질문은 ‘릴리언 다이슨은 누구인가?’이다. 그는 악랄한 마녀인가, 외로운 중독자인가. 단서는 클라라 모로가 그린 분노에 찬, 늙고 지친 여자의 그림에 있다. 희망일 수도, 혹은 그저 빛의 눈속임일 수도 있는 늙은 여인의 눈 속에 있는 하얀 점.
루이즈 페니의 ‘살인’은 가위로 종이를 자른 것처럼 매끈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울퉁불퉁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 거친 단면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더듬는 행위는 책장을 넘기는 행위와 닮아 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어려운 노력이다. 작가 자신의 알코올의존 경험이 투영된 〈빛의 눈속임〉의 진짜 매력은 여기에 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십자고상이나 성경도 없이, 성직자나 교회의 가르침 없이” 희망을 놓지 않는 “친애하는 삶을 그렸다”. 마치 그가 독자와 나누고 싶은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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