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용지 64쪽' 손으로 작성하던 변시 끝…"악필 걱정·손목통증 해방"

한병찬 기자 2023. 8. 1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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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T 방식 첫 전국 변시 모의고사 시행…로스쿨생 "시험에만 집중" 환영
사법시험부터 60년간 이어진 수기 시험 끝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 2021년도 제10회 변호사시험 고사장이 마련돼 있다. 2020.1.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A4용지 64쪽을 수기로 작성했었는데 이제 손목 아플 일은 없겠네요."

14일 오전 8시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3학년 신모씨(29)가 웃으며 말했다. 이날 제2차 모의변호사시험을 치르러 가는 신씨는 "컴퓨터를 이용해 치르는 첫 시험인데 글씨체나 손목 통증 같은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날부터 18일까지 5일간(16일 휴식) 전국 25개 로스쿨에서 일제히 컴퓨터 작성 방식(CBT)을 이용한 모의시험이 진행된다. 지난 6월 제1차 모의시험에서 2개 로스쿨 200여명을 대상으로 CBT 시험 시행한 이후 전국 로스쿨에서 CBT를 이용해 일제히 시험을 치르는 것은 처음이다.

법무부는 내년 1월 시행될 제13회 변호사시험부터 논술형(기록형·사례형) 필기시험을 CBT로 치를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CBT 변호사시험 도입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독자제공)

◇ 사법시험부터 60년간 이어진 '수기' 공식 깨져…로스쿨생 "CBT 변호사 첫 세대"

1963년 첫 사법시험부터 이어지던 '수기 시험'이 바뀌는데 대해 대부분의 로스쿨생들은 "시대에 발맞춘 변화"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CBT 도입 전 로스쿨생들은 시험 동안 A4용지 64면을 수기로 작성해야 했다. 첫째, 둘째 날은 각 4시간씩, 셋째 날은 3시간30분, 넷째 날은 무려 5시간30분 동안 볼펜으로 답안을 써야 한다.

로스쿨생들에게 시험 기간 필수품은 파스와 손목 보호대였다. 이들 사이에선 "합격을 위해선 강한 손목이 우선"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 6월 모의고사 때 손목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시험을 봤다는 신씨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도 아니고 며칠 동안 손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컴퓨터로 변호사시험을 보는 첫 세대가 됐다"고 말했다.

로스쿨생 안모씨(31)는 "글씨체가 채점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 때문에 응시생들은 공부하기도 바쁜데 악필 교정도 해야 했었다"며 "컴퓨터로 시험을 보게 되면 글씨체나 수정된 부분 등을 제외하고 진짜 실력으로만 평가하게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는 오탈자를 수정할수록 시험지가 지저분해졌는데 이제는 손쉽게 틀린 부분을 고칠 수 있다"며 "타자로 치는 만큼 시간적 여유도 더 생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존에는 응시자가 답안지를 교체해야 하면 답안지 전체를 교체해 내용을 옮겨적어야 했다. 채점자들도 악필 답안지의 글씨를 식별하지 못해 채점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시험을 본 선배 변호사 송모씨도 "12회 변호사시험에서 손목 부상을 입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며 "3시간 넘게 서술형으로 진행하는 과목의 경우 1시간 정도 문제를 고민하고 남은 시간은 정리한 내용을 옮겨 적는 데 할애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많이 알지만 시간이 부족해 일부만 쓸 수밖에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며 "수기 작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많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법무부 'CBT 프로그램 튜토리얼' 갈무리)

◇법무부 'CBT 튜토리얼' 서비스…"1명의 응시생도 억울하지 않게"

법무부는 CBT가 처음 적용되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일괄적으로 시험에 사용될 답안 작성 프로그램, 키보드 방식 등 노트북 기본사양을 공개하는 등 응시자들에게 충분한 적응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는 법무부 홈페이지와 변호사시험 원서접수 홈페이지에서 '변호사시험 CBT 프로그램 튜토리얼' 서비스를 제공해 처음 시험을 맞이할 수험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CBT 프로그램 로그인부터 답안지 제출까지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이번 모의시험과 10월 모의시험을 통해 현장 적응력을 시험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13회 시험을 시작으로 CBT 적용 과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모든 과목에 CBT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지난해 1월 의사 국가시험을 CBT로 실시했다. 올해에는 치과, 한의사, 요양보호사 등으로 CBT를 확대할 예정이다.

로스쿨 제도의 원조 격인 미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CBT로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첫 도입인 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1년에 한 번 있는 변호사시험인 만큼 기술적 결함 등으로 억울한 응시생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김민배 인하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컴퓨터 기반 시험으로 변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내년 1월 시행이 안정적인가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에서야 대학들이 급하게 시험장을 마련하는 등 수험장마다 유선망 상태 등 편차가 존재할 수도 있다"며 "2번의 모의시험만으로 바로 도입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봉기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모든 답안지가 정형화되고 채점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기로 치는 것 또한 종합적 평가 기준 중 하나인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수험장마다 응시자를 몇 명 배치할지, 노트북은 예비로 몇 대를 준비할지 등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 법문서적에서 고시생들이 책을 보고 있다. 2016.9.29/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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